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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당신 손에 쥔 떡 - 리틀 칠드런(little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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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little children]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운동회 때 나는 고적대의 리코더 연주자였다. 다른 학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에서 리코더는 고적대원들 중 가장 키가 작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맨 앞줄에 서야 했으니까. 리코더는 악기 가격도 가장 저가였을 뿐더러 심벌즈나 큰 북처럼 박자를 놓치면 금방 들통 나는 역할도 아니었다. 리코더 연주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음정보다 오히려 발맞추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한마디로 거의 존재감이 없는 역할이었다.
 
고작 리코더 연주자가 된 것이 내심 분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작은 키를 원망하며 앞줄에 서서 잠자코 피리나 불 수 밖에...
 
운동회 전날 선생님은 딱 한 가지만을 강조하셨다. 악기를 잃어버리지 말고 잘 챙길 것! 그런데 나는 운동회 당일 리코더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반 대항 달리기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오니 가방에서 리코더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잠시 뒤 이어진 퍼레이드에서 고적대는 빠진 앞니처럼 앞줄 한 자리를 비어 놓은 채 운동장을 돌고 돌았다. (시골 학교라 그랬나? 여벌 리코더 하나 없었다.) 나무 뒤에 숨어 고적대의 합주 소리를 들으며 나는 훌쩍훌쩍 울었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존재감 없었던 리코더 연주자의 자리가 내게 얼마나 절실한 자리였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 [little children]
 
영화 리틀칠드런 – 우리는 작은 아이들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한 중산층 가정의 유부녀 새라(케이트 윈슬렛)와 유부남 브래드(패트릭 윌슨)가 놀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처음부터 사랑 따위를 운운한 것은 아니고 그저 무료하게 이어지는 일상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서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녀가 일단 자극을 주고받기로 마음먹으면, 그것은 그저 신선한 자극 따위에서 끝나기가 쉽지 않다. 스킨십에는 후퇴가 없는 것처럼 남녀의 불꽃은 일단 점화되면 소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대낮에 과감한 정사를 벌이는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여자는 야동을 보며 자위를 하는 남편과 무료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남자는 자신을 주눅 들게 하는 아내와 두 번이나 떨어진 변호사 시험의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남는 것이라곤 시간뿐인 두 사람은 각자의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수영장을 드나들며 조심스레 가까워지고 어느 폭우 내리던 오후에 서로의 열망을 들켜 결국 섹스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흔한 불륜 스토리의 여정이다. 그런데 감독은 불륜의 여정을 따라가는데 필름을 모두 쓰지 않았다. 영화의 외피는 그들이 어떻게 눈이 맞고 배가 맞는지, 그리고 그 나른한 로맨스가 어떤 국면을 맞게 되느냐로 싸여 있지만 딱 한 껍질만 벗기고 들어가면 그 안에는 좀 더 다른 속살,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 다른 이야기를 끌어가는 축에는 성도착증 환자인 로니가 있다. 그는 아이들 앞에서 고요히 성기를 꺼내고 스스로 흥분하는 성도착증으로 감옥에 갔다가 얼마 전 형량을 마치고 노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친절한 중산층 주민들이 그를 곱게 환영할 리가 없었다. ‘아이를 염려하는 부모모임’에서는 그의 사진이 실린 포스터를 제작해 동네 구석구석에 배포하였고 수시로 그의 집 앞을 찾아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겁을 준다.
 
특히 전직 경찰관 래리는 집요하다고 할 만큼 로니를 괴롭히는 사람이다. 풋볼 연습이 끝난 밤이면 땀에 전 셔츠를 입은 채 바로 로니의 집 앞으로 찾아가 경적을 울리고 고함을 친다. 그러나 그도 알고 보면 총기사건으로 한 소년을 죽인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지 못해 경찰복을 벗어야 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거기다 아내마저 며칠 전 집을 나가 버렸다. 어느새 래리에게는 동네북인 로니를 괴롭히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의미가 되어 버렸다.
 
영화는 이렇게 오십 보 백보 인 두 명의 사내와 눈이 맞은 유부남과 유부녀를 모두 한 줄에 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이들은 모두 ‘작은 아이들’일 뿐이라고.
 

영화 [little children]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놓치지마
 
이 영화는 19세 관람등급을 받은 영화다. 그래서 어른들 만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영화를 보는 어른들은 결국 작은 아이들에 불과하다. 생각해 보면 몸이 자라고 몸이 늙어가는 속도를 마음이 따라잡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내내 아이들인 채로 살다가 갈 수 밖에 없다. 내 자식들에게는 외피 속에 감춰진 내 꼬마를 숨긴 채 어서어서 자라라고 거짓말을 하지만 결국은 그 아이들도 어른이 된 어느 날 자기 안에 어린 꼬마가 감춰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는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야 한다. 욕망을 쉽게 감추지도 않고 욕망의 질주를 멈추려 하지도 않는다. 감옥에 다녀온 뒤에도 본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로니나 그런 로니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래니나, 어느 날 밤 즉흥적으로 함께 도주를 결심하는 새라와 브래드의 모습은 그들이 작은 아이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무조건 욕망을 자제하고 다스리는 것만이 어른의 몫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아이에 불과한 네 사람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어른은 이래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욕망을 향해 질주하든 안정을 향해 질주하든 한 가지 진실만은 놓치지 말라고 할 뿐이다. 그 말을 영화에서 들려주는 역할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로니의 노모다. 그녀는 성도착증 환자인 아들에게 진심으로 충고한다.
 
“로니,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아.”
 
이 말은 영화 중반에 잠깐 언급대고 말지만 영화의 말미에 이르면 주인공들의 마음에 새 비늘처럼 돋아난다.
 

영화 [little children]
 
아이에서 어른으로
 
브래드와 야반도주하기로 한 날 밤, 새라는 어린 딸을 데리고 브래드와 만나기로 한 놀이터로 간다. 그런데 그네에 앉아 울고 있는 로니에게 잠시 정신을 파는 사이 어린 딸이 사라져 버린다. 수십 초에 불과했지만 새라는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딸을 찾는다. 사라진 딸은 공원 앞 가로등 불빛에 몰린 하루살이들을 구경하며 오도카니 서 있었다. 새라는 딸을 차에 태우며 간신히 한 마디 할 뿐이다.
 
“집에 가자.”
 
아이가 사라진 짧은 찰나 그녀는 느꼈던 것 같다.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들이 깨어지는 순간의 두려움을 말이다.
 
브래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야반도주를 하러 가는 길임을 망각한 채 스케이트보드 타는 소년들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지난 몇 달 동안 앞에 서서 구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에게 한번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나기로 한 바로 그 날 밤, 소년들은 브래드를 불러 세웠고 자신들의 보드를 기꺼이 빌려 주었다.
 
보드판 위에서 발을 구르는 순간, 브래드는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도망치려고 했던 것은 아내와 가정이 아니라 아무것으로도 규정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위치라는 것을. 그에게는 스케이트보드로 날 수 있을 만큼의 아주 조금의 자유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한 듯 바닥에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직후 그는 새라가 아니라 아내를 불러달라고 말한다.
 
변태남 로니는 어떤가?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야 자신의 삶에서 어머니가 가장 소중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남기신 ‘착한 아이가 되라’는 한 줄의 편지를 읽고 오랜 세월 자신을 괴롭혔던 성도착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칼로 자신의 성기를 자른다. 마지막으로 래니는 그토록 괴롭혔던 로니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남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내는 일이었다는 것을.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네 사람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순식간에 점프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작은 아이로 돌아와 새로운 비행이나 범죄, 타인을 괴롭히고 장악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릴 것이다. 어차피 그렇게 살다 갈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만 찰나라도 성숙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ㅡ 

5학년 가을 운동회 때 리코더를 잃은 이후에도 나는 수없이 많은 ‘의미 있는 것들’을 잃어왔다. 그것은 책가방이기도 했고, 적금통장이기도 했고, 사랑하는 남자이기도 했고, 가족이기도 했다. 때로는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 뒤에 서서 오래오래 울기도 했다.
 
영화의 결론만을 본다면, 이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이 어머니(로니), 아내(브래드), 아이(새라)뿐이라는, 그야말로 가족주의가 세상의 최고 가치인양 오해될 수도 있겠지만 감독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고 본다. 새라가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 것과 브래드가 애인과의 약속장소로 달려가는 길에 스케이트보드를 탄 것은 그들의 감정이 딱 그만큼에 불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은 그들에게 그저 생각할 시간을 잠시 주었을 뿐이다.
 
사랑의 형태, 연애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우리가 그것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은 비슷할 것이다. 우리가 완전한 인간이었다면, 우리는 사랑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라 필연적으로 사랑을 원한다. 그런데 그 사랑에 관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부모와 이 사회까지 모두 오케이를 외치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못해 누구는 불륜자가 되고, 누구는 성 매매자가 되고, 누구는 인형 체험방 단골이 된다.
 
내 주위에는 기혼자들과 연애하는 사람도 있고, 그들과 연애했다가 아프게 헤어진 사람도 있고, 바람 난 배우자 때문에 이혼한 사람도 있고, 이혼은 안 해도 상처받으며 사는 사람도 있다.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이따금 성매매를 하러 다니는 사람도 있고, 한때 성매매로 먹고 산 사람도 있다. 꽃뱀이나 제비족이 아닌 이상 연애와 섹스의 형태로 사람을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남녀관계에는 저마다 은밀한 비밀들이 있고 그것이 결국은 관계의 본질을 좌우한다고 본다. (물론 여기에 아이가 개입되고 보편적 가치들이 합세하면 자신의 냉철한 객관성이 비양심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모든 관계에 있어 이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인가 아닌가, 세상의 보편적 도덕과 정의에 부합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 보다는 그것이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인가, 의미 있는 것인가를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가정일수도 있고, 누군가에는 목숨 바치고픈 새로운 사랑일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보드랍고 말랑한 단백질 인형일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는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야 하지만 그렇게 얻은 것을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천진난만하게도 이것을 놓으면 또 다른 것을 바로 쥘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 이상 등급을 판정받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신중하게 결정하고 결정한 것에 관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옛날엔 남의 손의 떡이 커 보였지만 지금은 내 손에 쥔 떡이 제일 커 보인다. 이거 하나 먹는 것도 큰 복이구나 싶다. 하지만 살다보면 이 떡을 놓치고 다른 떡을 쥐어야 하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또 그 떡을 제일 큰 떡이라 믿으며 살았으면 싶다. 떡을 몇 개 쥐었느냐가 아니라 내 손에 들어온 떡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느냐가 삶과 관계의 평점을 매겨줄 것이라 믿는다.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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