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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치마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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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를 몇 개 돌려 가며 입고 있다. 몇 번 돌려 입다 보니 치마가 너무 적은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새 치마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는 싫고, 직접 보면서 사고 싶었다. 그래서 옷 가게가 많이 있는 동네로 갔다. 가서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데, 밖에서 구경하다가 막상 들어가려니 망설여졌다. 옷 살 때 버릇 중 하나가 밖에서 대충 보고 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인데, 가게들이 너무 작아서 들어가기 꺼려졌다. 안 사고 나오면 좀 안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점원이 좀 나이 있어 보여 불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치마를 살까?
 
그렇게 며칠 망설이다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날, 맥주가 마시고 싶어 단골 가게로 가다가 옷 가게에 들어갈 용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어떤 치마를 살까 고민을 해봤다. 가진 것과 다른 것을 입고 싶어 어떤 치마가 있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처음에 샀던 무릎길이의 까만색 랩스커트와 한쪽은 무릎 아래, 한쪽은 무릎 위로 올라오는 까만색 비대칭 랩스커트가 있다. 그다음에 샀던 것이 발목까지 오는 와인색 롱스커트. 그다음이 바지 위에 입는 펑퍼짐한 빨간색 니트 원피스. 그리고 여자친구가 골라준 무릎 조금 위로 올라오는 녹색 체크무늬의 A라인(플레어) 스커트까지. 이렇게 다섯 종류였다. 니트 원피스는 치마로 보이지도 않긴 하지만, 어쨌든 치마는 치마다.
 
짧은 치마, H라인 치마가 없었다. 무릎 위로 많이 올라오는 짧은 치마 그것도 H라인으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 가게에 혼자 가서 직접 치마를 사는 것은 처음이라 두근거렸다. 입고 있는 치마도 직접 사긴 했지만, 여자친구랑 같이 가면서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혼자 가려니 정말 많이 두근거렸다.
 
어쩔까 하다가 전에 혼자 니트 사러 갔던 데에 갔다. 같은 점원이 있으면 얼굴이 익어서 좀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그 점원이 있었다. 치마를 보러 왔다고 하자 안내를 해주었다.
 
“어떤 치마 보시겠어요?”
 
“짧은 치마 보려고요.”
 
그 순간 체크무늬 짧은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따뜻해 보이는 색에 H라인, 무엇보다 예뻤다! 두 가지 색이 있었는데,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무엇으로 살까 망설이면서 마음에 드는 색을 먼저 대보았다.
 
“언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저 남잔데요.”
 
“미안해요. 버릇이 돼서.”
 
“아니에요.”
 
옷을 확인해보고 싶어 거울을 찾아 두리번거렸더니 거울 있는 곳을 안내해줬다.
 
“거울 여기 있어요. 언니, 아… 죄송합니다.”
 
확실히 버릇은 쉽게 고치기 힘들다. 그렇다고 나보고 아저씨나 오빠라 부르기도 그럴 테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고객이라는 다른 호칭도 당장은 쉽게 안 떠오를 테고.
 
“입어보실래요?”
 
“네.”
 
“사이즈는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S, M? M이 맞겠죠?”
 
“네 M으로 주세요.”
 
“저쪽에 탈의실 있어요.”
 
“네.”
 
탈의실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감촉도 그렇고 쏙 마음에 들었다. 다 입고 나왔더니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지퍼가 옆이 아니라 주머니 있는 쪽이 앞에 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돌렸더니 지퍼가 허리 뒤 한가운데로 왔다. 그리고 거울로 가서 봤다. 예뻤다. 어울렸다.
 
“언니 어울리시네요. 아, 죄송… 배 좀 조이실 거에요. 나중에 늘어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안 조이는데요. 편안한데요.”
 
“아, 그러면 뭐…”
 
“저 코트도 볼래요.”
 
“네, 저기로 안내해드릴게요.”
 
코트까지 고르고, 코트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옷 그대로 입고 가겠다고 입은 채로 계산하고 입고 왔던 옷을 챙기고 나왔다.
             
 
짧은 치마는 예쁘지만 불편하다
 
같은 치마를 두 번 정도 입고 나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짧은 치마가 예쁘긴 예뻤다. 내 다리 모양이 어떻든 더 예뻐 보이고 바지 입을 때보다도 다리가 더 길어 보였다. H라인이라 걸을 때 약간 걸리는 느낌이 들지만, 팔자걸음일 때 문제라 걸음걸이를 바꾸니 불편함이 사라졌다. H라인이라서 그런 것인지, 짧은 치마라서 그런 것인지 날씬해 보였다. 난 마른 편인데, 마른 게 아니라 날씬해 보였다.
 
그런데 굉장히 조심해야 했다. 치마가 허벅지 중간쯤인데, 선 채로 허리만 굽히면 올라와서 속이 보일 정도였다. 또 의자에 앉으면 치마가 먼저 닿는 게 아니라 치마가 약간 올라가 엉덩이가 의자에 닿았다. 조금 신경 써서 앉으면 치마가 약간 닿긴 하지만, 그래도 엉덩이 밑부분이 의자에 닿았다. 플레어스커트를 입을 때 퍼져서 닿은 건 겪었지만, 이 정도로 엉덩이가 많이 드러날 줄은 몰랐다.
 
다른 문제도 있었다. 랩스커트처럼 붙어있는 천이 있어서 가려지다 보니 잘 몰랐는데, 혹시나 해서 올려 보니 치마가 올라와서 치마 속이 보일 것 같았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치마를 좀 내렸지만, 무릎을 계속 모으지 않으면 치마가 계속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만약 이게 천이 더 없었다면?
 
갑자기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무릎 위로 코트나 무릎 담요를 덮는 것이 생각났다. 그냥 덮는 게 아니었다. 속이 노출될 우려 때문에 덮는 것이었다. 짧은 A라인이 아니라 H라인이라서 계단을 올라갈 때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허리만 꼿꼿하게 펴면 보일 염려가 없을 것 같았다(실험해보기는 민망하다). 하지만 앉으면 속이 그대로 노출되기 쉬웠다. 계속 누를 것 아니면 덮는 것이 원하지 않는 노출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쁘게 입는다고 내가 노출을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에서 엉덩이 뒤를 가방으로 가리는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몰카나 엿보는 사람을 대비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예비 가해자로 보고 뒤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부분이 노출되면 부끄럽기 때문이 먼저였다.
 
치마를 입지 않는 남성들은 여성들이 계단 등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뒤를 가린다고 불쾌할 필요 없는 것이다. 예쁜 치마를 입고 싶었고, 입으면 본인도 예뻐 보여서 입는데, 원하지 않는 부분이 노출되면 예쁘지 않다. 노출을 원하지 않는 부분을 가리는 것은 남성, 여성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하는 일이다.
 
 
그래도 새로 치마를 산다면 짧은 치마로
 
이제 짧은 치마가 예쁜 것을 알게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짧은 치마를 더 사야겠다. 새 치마는 다른 모양으로 해도 나랑 어울릴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끝에 프릴이 있어도 좋을 것 같고 아니면 A라인으로 나온 것도 좋을 것 같다. 거기서 불편함을 발견한다면 여성의 삶에 대해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될 테니 그것대로 좋은 것일 거고, 아니면 아닌 대로 예쁘고 내 마음에 들어서 좋은 것일 테니까.
상큼한 김선생
차별과 혐오는 상큼하지 않아요. 상큼하게 살아요.
http://freshteache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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