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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을 가진 한 방화범의 사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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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을 가진 한 방화범의 사연 1▶ http://goo.gl/H7lb3R


영화 <디스터비아>
 
* 이 이야기는 성심리상당소를 운영하는 여성 치료사의 관점에서 서술한 '소설'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내담자의 이야기는 허구일수도 사실일수도 있습니다.

“자, 영진 씨, 이제 제게 말해줄 수 있나요? 당신이 그 사건을 벌일 당시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요.”
 
영진 씨는 머뭇거렸다.
 
“지금 말하기 좀 불편하시면 다음번에 얘기해주셔도 됩니다. 앞으로 저랑 총 세 번 만날 거니까요. 오늘은 영진 씨 살아온 얘기나 들어볼까요? 아무런 조언이나 간섭하지 않고 그저 들어만 드릴 테니까요. 마음 놓고 편하게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운을 띄우자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보이던 유영진 씨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할 말이 아주 많았던 듯, 살아온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하나씩 내 앞에서 풀기 시작했다.
 
영진 씨는 올해 52세이며, 3남 중 차남으로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영진 씨 어머니는 그저 큰 아들밖에 몰랐다. 막내는 막내라서 예뻐했지만서도, 영진 씨는 늘 부모님과 형제들에겐 소외의 대상이었다. 이것이 차남, 차녀의 대부분 공감 가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영진 씨 집은 유달리 더 심한 차남소외현상이 있었던 집이었던 것 같다. 그 반증으로 ,영진 씨가 군 생활하는 동안 부모님이나 형제들은 단 한 번도 면회온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형이나 동생이 군대를 가면 어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식구들에 친척들까지 대동해 면회 가기 바빴다.
 
영진 씨가 실수라도 하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부모님은 늘 대노하셨다. 형과 동생까지 영진 씨를 싸잡아 공격하고 채근하며 닦달했다. 그러나 동생이나 형이 실수하면 부모님들은 사뭇 다른 태도였다. 늘 동생과 형에겐 관대하였고 이해해주시는 눈치였다. 집안 내 왕따... 그것이 바로 영진 씨의 모습이었다. 이런 불공평한 가정환경 하에 영진 씨는 심하게 남의 눈치를 보는 성격으로 자라왔고, 또한 가정에서 받은 소외감과 상처를 학교에서 해소하려 하였다.
 
학교에서 나쁜 일을 저지르거나 친구를 괴롭히면 그나마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 영진 씨의 일탈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것이 좋은 주목이든 나쁜 주목이든 영진 씨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일단 집안에서 형과 동생에게 편중된 관심을 학교에서라도 받아보고 싶어 더욱더 친구를 괴롭혀 본인에게 복종케 하고 아부하게끔 했다. 그러자 말썽을 일으켜 교무실에 불려다니는 일이 반복되었다. 결국은 어머니까지 학교에 불려오시게 되자, 그 후론 집에 가면 영진 씨에 대한 아버지의 구타가 늘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던 어느 겨울날 하루는 가족들이 연탄을 피워놓고 잠들었는데, 자다가 연탄가스가 새어나오는 걸 감지한 영진 씨 부모님이 영진 씨의 형, 영진 씨의 동생을 한 명씩 껴안고 방에서 탈출해 나오는 사건이 생겼다. 영진 씨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가 산소 부족이 심해짐에 따라 호흡곤란을 느끼고 본인 스스로 뒤늦게야 엉금엉금 기어 겨우 방 밖으로 탈출해 나왔다. 일산화탄소 중독증으로 응급실에 간 영진 씨는 몇 분만 늦었으면 생명이 위험해 졌을 정도였다. 그 때 뇌에 경미한 손상을 입어서 말투가 이렇게 어눌해졌다고 한다.
 
부모님이 영진 씨의 구출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형과 동생만 데리고 나오는 바람에 본인 혼자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생각했고, 영진 씨는 이 일을 계기로 더욱 더 가족들에게 마음을 닫아버리고 분노의 싹을 키우게 되었다.
 
사회에 나와서 영진 씨는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영진 씨도 이제서야 행복해지는가 했지만, 그 행복도 잠시,아내는 옆집 남자와 바람이 나서 영진 씨와 아들 하나만을 달랑 남겨두고 그 남자와 야반도주를 했다. 허탈했던 영진 씨는 매일 밤낮을 술로 마음을 달래며 살았다. 어린 아들은 술 앞에 뒷전이었다. 그렇게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소주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영진 씨는 옆집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하고 섹시한 신음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똑똑똑
 
"무슨 일이죠?
 
"선생님, 죄송하지만 상담 시간이 끝나서요. 다음에 마저 하시죠."
 
경찰이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약속한 시간보다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미 입을 떼기 시작함과 동시에 마음의 문까지 어느 정도 오픈한 그를 적절한 시점에 중단시켜야 다음날 재방문 시에도 다시 오픈 시키기가 훨씬 수월하다. 마음을 열고 상담사와 라포(신뢰감)형성이 막 되어가고 있는 중요한 찰나에 이야기를 확 끊어버리면 그는 다시는 마음을 열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게 바로 고도의 심리전이자 상담 기술인 것이다.


> 다음 화에서 계속
문지영 소장
섹스트러블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국내최초 성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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