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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민속학] 이 똥이 누구 똥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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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민속학] 이란?
학교 역사 시간에는 절대 배울 수 없었던 조금 야한 조상님들의 사생활 이야기

 

남성평균 / 경덕왕/ 지증왕
 
신라 '지대로 왕'의 신부 찾아 삼만리
 
옛날 옛날 아주 머언 옛날~ 신라시대에 한 사신이, 전국 방방 곳곳을 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어요. 그렇게 전국을 누비며 다니던 어느 날, 모량부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였어요. 두 마리의 개가 마치 북만큼이나 큰 똥! 덩어리를 양쪽에서 먹고 있어서 그 사신은 생각했답니다.
 
‘아 저 정도 크기의 변을 누는 사람이 처자라면, 우리 왕과 꼬옥 맞는 한 짝이 될 터인데…’
 
하여 동네 사람에게 그 똥!의 주인을 수소문했답니다. 그랬더니 한 소녀가 모량부 상공의 한 외동딸이 그 똥!의 주인이라고 일러주었답니다. 그녀의 신장은 칠 척이 넘어 웬만한 남자보다 훨씬 덩치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 그녀는 지증왕의 부인 우리가 국사 시간에 ‘왕!권!강!화!’로 열심히 외우는 법흥왕의 어머니라고 해요.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왜 커다란 똥 덩이를 보고 신붓감을 고른 걸까요?
그건 바로 지나치게 커다란 옥경(왕의 성기를 높여 이르는 말)로 인해 60대에 이를 때까지 결혼을 못한 우리의 지증왕, 당시 기록으로는 지대로왕, 지철로왕으로 불렸던 왕을 감당할 수 있는(?) 짝을 찾아주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당시의 왕은 반드시 결혼을 해야 했는데 왕비로 간택된 처녀들이 첫날밤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울며불며 나오니 신들까지 신붓감 찾기에 나섰던 게죠.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지증왕의 거시기는 1자 5치, 현재의 개량법으로 따져보면 45cm… 설화이기 때문에 과장되었겠지만 당시에 강력한 왕권의 상징을 강력한 정력과 커다란 성기로 나타냈기 때문에 삼국유사에 이런 기록이 남게 된 것일 거라고 역사학자들은 분석하곤 한답니다. 그치만 우리의 지증왕이 정력왕이었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큰 똥의 주인인 박씨 연제부인을 만나 64세의 나이에 법흥왕을 얻었으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유난히 신라시대에 ‘커다란 옥경’으로 유명한 왕들이 몇몇 기록되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불국사를 창건한 것으로 유명한 경덕왕 역시 ‘옥경’으로 유명세를 떨쳤다고 해요. 경덕왕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고 하니 바로 후사를 이을 왕자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 이유가 참 기구합니다. 역사서에 따르면 그의 음경은 8치, 약 24cm 정도인데요. 45cm에 비하면 비교적 현실적인 수치이지만 요즘 한국 남성의 평균 성기 크기가 11cm 정도로 알려져 있는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하죠. 이로 인해 조강지처 삼모부인의 출산이 원활하지 못했고 결국 새로 만월부인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당시 해는 남자, 달은 여자를 의미해 음기가 강해야 출산에 능한 것으로 보았는데, 만월(보름달)이라고 하니 그녀의 출산 능력을 짐작할 수 있겠죠?
 
옛날로 갈수록 백성들은 임금님의 옥경이 굉장히 크다고 숭배를 했다는데요. 강력한 힘 하면 정력, 정력 하면 커다란 성기가 성징이었기 때문이죠. 세대를 막론하고 시대를 막론하고 커다란 성기에 대한 로망은 자리하고 있었다는 걸 역사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는 것 같죠? 이번 지증왕, 경덕왕 이야기처럼 우리 조상님들의 조금은 야한 사생활 이야기, 앞으로도 쭈-욱 만나보아요.
 
 
에디터 : 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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