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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블라인드 운동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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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랜스젠더는 화장실을 어떻게 가야하는 것일까? 
 
'내가 같이 가줄게'와 같은 글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도 우리 '딸'은 여자 화장실에 있으면 이상해 보였다. 내가 아마야를 화장실에 데리고 가면 눈에 띄게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꾸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더불에 그 경험에 따라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화장실이 자기에게 자연스러운지 본능적으로 알고, 자신의 젠더 정체성과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고른다.“며 젠더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을 쓸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한다. 거기에  “트랜스젠더, 특히 트랜스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 범죄 사례는 많이 있다.”며 통계를 보여주며 시스젠더들의 시선이 불편함을 함께 이야기한다. 나는 이 글도 조금 불편했다. 나는 시스젠더인데, 치마를 입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 화장실의 성별 표시

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별 표시가 있다. 남성은 바지 입은 모습, 여성은 치마 입은 모습의 픽토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글을 읽지 않고 직관적으로 보기 편하라고 만든 것이다. 이런 상징은 글을 몰라도 쉽게 구분하여 들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화장실이라는 폐쇄적 공간에 동성끼리 몰아넣음으로써 이성이 같이 있을 때 생길 수 있는 배변하는 소리가 들리거나 배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민망함, 혹은 성범죄를 예방하고자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의 이 성별 표시와 구분 정도로는 괜찮은 것일까?
 
먼저 이 성별표시가 의상을 다룬다는 것은 그 젠더가 일상적으로 착용한 복장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성이라는 젠더는 치마, 남성이라는 젠더는 바지가 당연한 규범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지를 입은 여성, 치마를 입은 남성은 어떻게 화장실에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바지를 입은 여성은 지금 굉장히 흔하다. 치마의 불편함 때문에 바지를 입는 여성도 많고, 체육복의 경우 반드시 바지를 입는다. 그래서 바지를 입은 여성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은 치마를 입은 여성과 바지를 입은 여성 사이에 서로 불편한 일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바지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 여성에게 일반적이지 않았었다. 서유럽은 여성에게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었고, 심지어 조례를 지정하기도 했었다. 조선 같은 곳은 예외적으로 여성이 바지를 착용하는 것이 흔했다(속바지 일지라도). 하지만, 겉은 치마였으니 바지가 겉에 보이게 입은 여성이라는 것은 20세기 이전에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바지를 입는 여성이 늘어난 것과 반대로 지금은 치마를 입은 남성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킬트 같은 전통의상이라고 해도 대부분 일상에서 입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체 행사에서 남성에게 치마를 입혀 여장이라며 조롱 내지 오락거리로 만드는 것이 가장 흔하게 보는 형태. 그외에 특별한 전공의 사람들이나 남성용 치마를 입고, 나머지는 게이이거나 트렌스 젠더가 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치마를 입은 남성이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은 불편한 일이 된다. 머리만 길어도 목욕탕, 화장실 등에서 뒷모습에 깜짝깜짝 놀라는 사람이 좀 있다. 뒷걸음질 쳐서 남자 화장실이 맞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얼굴과 복장에 안심하고 다시 들어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것을 머리 길이만으로 겪을 때는 괜찮다. 복장이 치마가 되어버리면 화장실 청소하러 들어온 여성 그 이상으로 불편한 시선이 걱정된다.
 
일단 남성이 치마를 입는 것 자체를 여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만약 그게 일반적인 인식이기 때문에 여장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쳐도 그것이 왜 오락거리이거나 조롱거리, 혹은 (호모포비아로 보이는) 시스섹슈얼이나 시스젠더에 의해 따가운 시선이나 호기심 충족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일반적인 젠더 역할에 대해 불만이 있다. 모계사회든 가부장제든 차별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모두 불만이다. 능력이나 상황에 따라 역할을 나누면 될 것을 굳이 젠더 역할을 부여하면서 개인의 외모의 지향점부터 삶의 양식까지 나누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해외에는 장난감이나 캐릭터 의상 등에서 젠더 인식에 대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 같다. 어린이들의 불만을 시작으로 나타난 변화다. 아이들의 호불호를 성별을 통해 나누지 않게 하여, 아동의 취향이나 선호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를 존중하지 않는 어른들 역시 그대로 존재하긴 한다. 장난감 부엌 세트를 바라는 아이를 갖고 성을 따지며, 비하하는 의미로 특정 성적 지향으로 만들어낸다고 비난한다. 아이의 선호를 존중하는 것이 왜 비난받을 거리가 되는 것일까? 시스젠더만이 정답이 아닐텐데, 아이의 선호까지 강제해야하는 걸까?
 

3. 겉모습으로 판단하기는 괜찮은 것일까?
 

이 영상을 보고 여성이 성격을 본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며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일부 남성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오독이다. 이 영상은 외모만으로 보는 첫인상에 대한 실험일 뿐이다. 사람들이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미리 판단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만화 선천적 얼간이들의 30번째 에피소드 헤드윅 사우나는 머리 긴 남성들이 겪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는 많이 없을지 몰라도 비슷한 상황들이 한 번씩 발생한다. 화장실에서 뒷모습을 보고 놀란다거나 정면 가슴위 만을 보고(내가 겪었다…) 놀라기도 한다. 일부 남성으로 오해 받는 여성의 경우에도 화장실에서 비슷한 일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이렇게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당신의 눈매가 날카로워 보인다고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 당신이 항상 웃는 모습이라고 무슨 일이든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당신의 눈매가 날카롭고 인상이 딱딱하여 나쁜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다 허용할 수 있는가?

당신이 잠깐 졸았다고 평소 밤에 놀기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당신이 몸무게가 적어 보인다고 밥을 안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몸무게가 많아 보인다고 밥을 많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다 허용할 수 있는가?

?당신이 빛이 바랜 셔츠를 입었다고 소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당신이 갖고 싶은 휴대전화를 겨우 하나 샀는데 갑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추위에 떨지 말라고 협찬으로 받은 옷빅이슈 판매원이 모욕을 받는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가?
 

4. 젠더 블라인드, 젠더 비순응 운동을 제안한다.
 
겉모습을 꾸미는 것 자체를 반대하거나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겉모습을 보고 타인을 억압하고 있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그리고 겉모습만을 보고 문제삼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평등(양성평등이 아니다)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젠더 블라인드 운동을 제안한다. 이 글을 읽고 이 운동에 동의하는 분은 남성의 치마입기, 채용 담당자의 경우 이력서에 사진 및 성별표시 없애기, 남녀 화장실 따로 설치 대신 장애인 구분 없는 공용 1인 화장실 2개 이상 설치, 쇼핑몰의 경우 남성복 여성복 대신 카테고리와 사이즈 상세 표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했으면 한다.

나는 공공연히 치마를 입는 것을 시작으로 젠더 블라인드 운동을 하고자 한다. 함께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
상큼한 김선생
차별과 혐오는 상큼하지 않아요. 상큼하게 살아요.
http://freshteache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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