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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이어리 #15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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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뉴니스]

생각해보면, 나는 모든 것이 그녀와 처음이었다. 
 
첫 키스와 첫 경험, 첫 연애가 모조리 리즈의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남자로서 전혀 메리트가 될 수 없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지만, 나에게는 하나하나가 새롭고 또 특별했다. 
 
내 생애 첫 여자가 리즈라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자 저주였다. 사실 그녀는 일반적인 여자와 굉장히 다른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찾을 수 없었던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첫 시작이 리즈였으니, 나는 아마 그녀와 헤어지면 절대 연애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헤어질 생각은 1퍼센트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하고 있지도 않지만. 
 
우리의 첫 여행, 그리고 여자와 단 둘이 가는 내 생애 첫 여행날, 나는 그녀의 회사 앞에서 리즈를 태워 차를 출발 시켰다.
 
그녀는 나에 대해 연구를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내가 보자 마자 녹아 버릴 듯한 옷차림을 하고 왔다. 니트와 치마, 검정색 스타킹 위에 얇은 코트. 겨울이라 노출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내 얼굴을 붉게 물들이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밖이 조금 추운지 그녀의 볼도 조금 빨갛게 물들어 있다. 
 
“예쁘게 하고 왔네?”
 
내가 해야 할 말을 하면서, 그녀는 내 입술에 입을 맞춰 주었다. 
 
“얼마나 걸릴까?”
“금방 갈 걸. 가까워서.”
“나 호텔에서 먹을 것도 사왔어.”
“그게 뭔데?”
“치킨 앤 맥주.”
 
사실, 이건 여행이라기 보다는 숙박을 위한 이동이었다. 열심히 여행 계획을 짜야 하는데……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고민하던 나에게 리즈는 
 
“어차피 나 회사 끝나고 가는 건데 멀리 가지 말자. 그냥 같이 자는 거야. 호텔은 내가 예약할게.”
 
라며 말해 주었다. 이게 여행이든, 여행이 아니든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내는 날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전날부터 굉장히 긴장했다. 그녀와 함께 섹스를 하는 것과 같이 하루를 보내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눈을 감을 때 그녀가 옆에 있고 뜨고 나서도 그녀가 옆에 있는 것이다. 단 하루 뿐이라 할 지라도 너무나 행복했다. 
 
사실, 그녀가 예약한 호텔은 같은 서울시내에 있는 호텔이었다. 여행이라고 명명하기에도 민망한 이동거리일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게 있어서는 여행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 그녀와 같이 있는데 장소가 하와이 리조트이건, 서울에 있는 작은 모텔이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리와 봐. 신호 걸렸어.”
 
그녀가 나를 끌어 안고 키스했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입술 안에서 우리의 혀가 얽혔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스타킹 위 허벅지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녀가 아주 나지막이 내 입안에 뜨거운 숨결과 함께 신음하는 것이 느껴졌다. 손 안에 가득 느껴지는 그녀의 허벅지 안쪽의 감촉. 
 
빵!
 
언제 신호가 바뀌었지? 그녀와 키스를 하는 바람에 놓치고 있었는지 뒤에서 짜증섞인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나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차를 출발 시켰고 그녀는 운전을 하는 내 어깨에 기대었다. 그 샴푸 냄새보다, 오직 나만 알 수 있는 리즈 특유의 살냄새가 자꾸 코에 맴돌고 있는 것 같아서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그녀의 회사가 있는 곳에서부터, 차로 30분 정도는 걸리는 거리였지만, 금요일의 퇴근길은 정말 꽉 막혀서 거북이 걸음을 계속했다. 조금 뚫리나 싶으면 신호에 걸렸다. 하지만 우리 둘은 조금의 짜증이나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신호가 걸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에게 달려 들었으니까. 
 
리즈가 내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쪽으로 이끌었다. 나는 망설임없이 리즈의 니트 안에 손을 넣었다. 이상하게 브라의 와이어가 잡히지 않았다 
 
“안 입었어. 오늘 자기 만나는 날이라서.”
 
그 말에 온몸이 찌릿했다. 내가 굶주렸던 사람처럼 가슴을 만지자, 그녀는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그리고 이윽고 손을 뻗어 내 사타구니 사이에 손을 넣고 불룩 솟은 그 부분을 손으로 움켜 쥐었다. 
 
“빨리 가서 잡아 먹고 싶어.”
 
리즈의 말에 정신이 어질어질 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예쁘고, 가장 똑똑했으며, 가장 영어를 잘 했고, 또 가장 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나를 점점 괜찮은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그녀의 능력이었다. 내 손이 그녀의 치마 속 깊숙이 들어가, 팬티 윗부분을 더듬기 시작했다. 불과 몇 개월전의 나였다면 절대 상상도 못할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아……”
 
리즈의 뜨거운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차를 세우고 그녀에게 올라타고 싶었다. 아냐. 이러면 안돼. 심호흡을 하자. 
 
“후우……”
“왜 갑자기 심호흡이야?”
“너무 흥분해 버린 것 같아서. 차 세우고 너한테 올라탈 것 같았어.”
 
내 말에 그녀가 살짝 웃었다. 왠지 아차 싶은 생각도 들었다. 
 
“미안. 그런 생각해서.”
“뭐가 미안해?”
“응? 그냥 보통 그런 생각만 하면 싫을 수도 있잖아.”
“난 좋은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 보면 야한 생각하는 거 너무 좋아.”
“……진짜야?”
“당연하잖아. 그 반대의 경우가 문제인 거지.”
 
역시 그녀는 뭔가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이러려고 나 만나?’ 라는 질문은 그녀의 성격과는 안 맞는 대사인가 보다. 그것보다 그녀는 ‘왜 날 그냥 두니?’ 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차는 호텔까지 느릿느릿, 그리고 뜨겁게 내달렸다. 신호가 걸릴 때마다, 눈 앞에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지나가건, 배달 오토바이가 차 사이를 지나 우리 옆을 스쳐가건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서로를 탐하고 만졌다. 둘다 볼이 붉게 물들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수시로 붙는 두 입술은 이제 끈적함까지 느껴졌다.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웠을 때는, 우린 이미 서로 엄청나게 예열을 한 뒤였다. 
 
“와~ 방 좋다.”
 
물론 내가 호텔에 많이 가 본 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넓고 깨끗한 호텔이었다. 그녀는 으쓱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들고 온 짐을 한 쪽에 두었다. 
 
“근데 그건 다 뭐야?”
 
내가 그녀가 들고 온 쇼핑백을 가리키며 묻자 그녀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비밀이야. 곧 알게 될 거야.”
“궁금한데……뭔데 그래?”
“자기를 잡을 무기라고나 할까.”
 
무기 없어도 나는 항복인데……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를 끌어 안았다. 그녀는 코트만 벗은 상태였고, 나는 뒤에서 그녀를 안은 채로 리즈의 목에 키스를 했다.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과감해 보였지만, 리즈는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은 지 손을 뒤로 뻗어 내 등 부분을 매만졌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했다기 보다 본능이 그렇게 이끌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옷을 잡아 당겨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니트가 벗겨지고 내 눈 앞에 하얀 어깨선이 드러났다. 나는 정신없이 그곳에 키스를 하며 내 옷을 벗어 나갔다. 
 
거울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은 내 다른 자아를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니트와 함께, 안에 있는 이너웨어를 같이 위로 잡아올렸다. 거울속에 비춰진 그녀의 상반신 누드에 나 역시 서둘러 옷을 다 벗어 버렸다. 
 
리즈는 눈을 감고 내 손길에 몸을 맡겼다. 투박하고 서두르는 손길이지만, 내 손이 그녀의 치마를 내리고, 검정색 스타킹을 내릴 때 까지 그녀는 내 팔을 쓰다듬으며 기다려 주었다. 
어느덧 거울 속에 비춰진 우리 둘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신이었고, 서로를 강하게 끌어 안으며 키스를 하고 있었다. 
 
“잠깐만……자기야……씻고……”
 
그녀가 나를 제지하듯 살짝 밀며 말을 했다. 평소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씻으라고 했을 것 같은데, 그날은 왠일인지 내가 그녀를 침대 쪽으로 잡아 당겼다. 그녀는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손에 이끌려 따라와 침대에 누웠다. 
 
“아주 잠깐만.”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부풀어 오른 내 다리사이가 그녀의 허벅지를 쿡쿡 찌르고 있는데, 씻고 오라는 말을 할 자신이 없다. 
 
우리는 또 서로를 강하게 끌어 안았다. 서로의 귓가에 쉴 새 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조금의 쉴 틈도 없이 서로를 만져대었다. 차 안에서 예열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둘의 발화점이 엄청 낮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서로의 알몸에 비벼지는 감촉을 최대한 느끼며 밀도 있게 밀착했다. 
 
나도 그녀도 농밀한 섹스를 좋아했다. 조금의 틈도 없이 서로의 살결을 딱 붙이고, 비벼 가면서 최대한 상대방을 느끼는 그런 섹스를 너무나 좋아했다. 그녀는 내가 올라타서 꽉 끌어 안는 것만으로도 극도의 흥분을 느낀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녀가 젖어 있다는 것이 굳이 만지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녀의 다리사이에 내 몸이 거의 묻혀 있었으니까. 내가 그녀의 가슴에 입을 맞추며 빨기 시작할 때, 리즈는 내 머리를 포옹하듯 끌어 안아 주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호텔의 침대보가 헝클어지며, 조용했던 방 안이 우리 둘의 신음소리로 가득 찼다. 
 
“아아……자기 이러지 말고 우리 씻자.”
 
리즈가 속삭이듯 말했지만, 나는 왠지 평소와 다르게 그녀의 목소리가 단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올라타 키스를 했고, 그녀의 다리사이에 허리를 넣어 조준하듯 몸을 양 옆으로 틀었다. 순간 하반신에 부드러운 느낌이 들며 나는 그녀의 몸 안으로 미끄러지듯 진입했다. 
 
“아……”
 
그녀는 놀람 반, 그리고 흥분 반의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씻는 시간동안 떨어지기 싫어 라고 말을 하면서 나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또 무아지경으로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그녀의 몸에, 그녀라는 사람에게 완전히 중독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냥 그녀의 몸과 비벼지기만 해도 쾌감 때문에 몸이 저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의 몸 안에 내 것을 박아 넣고 움직이는 그 와중에도, 쉴새 없이 그녀의 입술과, 귀와, 목과 가슴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식이 전혀 없는 리액션으로 내 몸을 강하게 끌어 안았다. 
별 거 한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신호가 오는 기분이 들어 황급히 그녀의 몸 안에서 내 것을 빼내었다. 
 
“왜……왜 빼요.”
 
그녀가 애원하는 눈길로 내 팔을 부여잡았다. 평소의 리즈라면, 그리고 내가 아니라면 절대 볼 수 없는 그 모습에 흥분은 또 배가 되었다. 
 
“빨리 넣어줘. 빨리.”
 
그녀의 애원에 나는 체위를 바꿀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그녀에게 진입했다. 다만, 방금 전까지 그녀가 다리를 벌려 내 허리에 감은 자세였다면, 지금은 그녀가 다리를 오므리고 내가 다리를 벌려서 그녀의 위에 올라탄 형상이었다. 그 덕분에 입구는 더욱 좁아졌고, 우리는 힘겹게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녀의 손이 침대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하얀색 침대보 위에 하얀 그녀의 손을 감싸쥐었다. 등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있었지만, 무아지경인 그녀의 표정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연인이 되고 나서, 우리는 서로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소극적이고 소심했던 나는 그녀 덕에 용기를 얻어 적극적으로 변했고, 단순히 섹스 파트너의 경계를 지키던 그녀는 그 벽을 허물고 사랑을 담아 나와의 섹스에 임했기 때문이었다. 서로 다른 이유지만, 우리는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뜨겁게 섹스했다. 
 
“헉……허억……”
 
내 숨이 거칠어졌고, 그녀의 몸안에서 빼내자마자 하얀 궤적이 흩뿌려졌다. 그녀의 몸을 닦아주고,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끌어 안고 또 키스를 했다. 
 
“미안해. 땀 때문에 찝찝할거 같아.”
“아냐. 괜찮아.”
 
리즈는 매번 섹스 후, 눈을 감고 엎드려서 여운을 즐겼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 작은 손길에도 그녀는 부르르 떨며 자극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나 원래 안 씻으면 절대 안 하는데.”
 
그녀가 헐떡이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정말 참을 수가 없겠더라.”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워서, 나는 또 한참이나 그녀를 쓰다듬었다. 여운을 즐기고 있을 때 내가 만지면 유독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그녀가 귀여웠다. 나는 한참이나 그녀와 꽁냥거리며 끌어안고 입을 맞추길 반복했고, 결국 그녀가 밀어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샤워를 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도, 나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녀와 있으면 시간이 이렇게 미치도록 빨리 가는지. 그리고 난 분명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조금의 허기짐도 느끼지 않는지……
 
눈을 감아도 리즈의 얼굴은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 동그랗고 귀여운 눈망울과, 단아함까지 느껴지는 표정. 그런데 분위기가 잡히고 키스를 하고 나서 입술을 떼면, 그녀의 눈빛은 세상 누구보다도 야하게 변해 있다. 바로 그 시점에 나는 가장 많은 흥분을 했다. 
 
노곤해진 몸으로 내가 밖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그녀가 들어갔다. 아까 비밀이라고 했던 가방을 챙겨 들어간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 다시 따라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꾹 참았다. 
 
의미 없이 틀어져 있는, 음소거된 TV를 바라보며 나는 침대에 누웠다. 아직도 침대가 우리의 온기로 따뜻했다. 침대에 남아 있는 우리 둘의 흔적을 보니까 행복하다. 나도 참 중증이지.
 
지금 이순간, 내 머릿속은 온갖 행복한 음표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녀는 내 삶 최고의 영감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럽게,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 버스 정류장의 공기와, 처음 같이 밥을 먹었던 그 식당의 소음과, 그녀와 입을 맞췄던 그 방의 분위기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딸깍. 
 
평소보다 좀 오래 기다렸다 싶을 정도가 되었을 때 그녀가 욕실의 수증기를 밀어내며 밖으로 나왔다. 몸을 일으켜 그녀를 바라본 나는 정말 그대로 석상처럼 굳었다. 
 
“짜잔~”
 
그녀는 옷을 입고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입고 온 옷이 아니라 몸에 딱 붙는 브라우스와 치마, 그리고 스타킹을 신고, 목에는 스카프를 두른……승무원의 복장으로. 
 
“아……음……저……그게……”
 
몸이 달달 떨릴 정도로 흥분이 몰려왔다. 저건 그냥 스튜어디스가 아니라, 아예 남자를 자극시키기 위해 만든 코스튬이었다. 너 한번 제대로 꼴려봐라! 라며 외치는 듯한 복장이었다. 게다가 가슴이 큰 리즈의 몸은 더욱 더 부각이 되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침만 꼴깍 삼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리즈는 눈빛으로 ‘내가 너 반 죽인다고 했지?’ 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친절한 미소를 띄우며 내 앞으로 사뿐사뿐 다가왔다. 나는 자석에 이끌리 듯 몸을 일으켜 침대 끝에 걸터 앉아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손님~제가 특별 서비스 해 드릴게요.”
 
“아니……저기 그게……자기야.”
 
“자기야 라니요 손님?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녀는 완벽하게 몰입한 모습으로, 걸터 앉은 내 다리 사이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방금 섹스를 끝낸 것이 무색하게 부풀어 오른 그것을 자신의 작은 입술 사이로 삼키듯 집어 넣었다. 
 
“아앗……”
 
머리가 하얘지고 아득해졌다. 츕츕 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고 내 몸은 점점 뒤로 휘어져 갔다. 리즈는 정말 완벽하게 상황극에 몰입하며, 손님 좋아요? 라고 (그것도 입에 문채로) 내게 물었다. 그녀와 달리 상황극에 어떻게 참가해야 할 지 모르는 나는 계속해서 자기야……자기야……라며 애원하듯 그녀를 불렀다. 
 
그동안 그녀가 보여주지 않았던 스킬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즈의 입술이 내 허벅지와 다리 사이를 열심히 오가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리즈의 브라우스 위 가슴을 어루만졌다. 
 
“어머……이러면 안되는데요.”
 
어떻게 저렇게 목소리까지 완벽하게 바꾸고 연기를 할 수 있는지, 그것보다 어떻게 저런 이벤트를 준비할 생각을 했는지 놀라움을 느낄 여력조차 없다. 리즈가 말했던 대로 나는 정말 흥분하면 아예 얼굴이 바뀌는 모양이다. 승무원 복장에 맞게 위로 묶어 올린 그녀의 머리를 나는 지긋이 눌렀고, 리즈는 내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서비스’를 했다. 
 
더 이상 참는 것은 고역이었다. 나는 결국 그녀를 잡아서 들어 올리고 침대에 눕혔다. 흥분에 눈이 돌아간 나를 보며, 리즈는 나를 살짝 밀치며 튕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손님 이러면 안되요. 저 남자친구 있단 말이에요.”
 
남자친구 있어도 상관없어! 라며, 나는 진상 손님이 되어 리즈의 입술을 탐했다. 살살 나를 밀어내는 리즈의 손길이 더욱 더 흥분이 되었다. 문득 그 와중에, 그녀의 치마 밑 스타킹이 눈에 들어왔다. 내 손이 어디에 끌려 가듯 그 쪽으로 가서 스타킹을 찢었다. 북!북! 하는 소리에 맞춰 리즈의 몸도 조금 떨렸다. 
 
비록 경험이 없는 내가 상황극에 완벽하게 몰두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 내 흥분을 도왔다. 브라우스의 단추를 풀자마자 나타나는 그녀의 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고, 나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빨고 핥았다. 베베 꼬는 몸짓과 리액션이 마치 내 취향 하나하나를 저격하는 사람처럼 흥분을 자아냈다. 
 
나는 결국 그녀를 엎드리게 하고 그 위에 올라타고 말았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배를 땅에 붙이고 뒤로 넣는 그 자세로, 나는 그녀위에 올라타 등 위로 쉴새 없이 키스했다. 그녀는 베개자락을 꽉 붙잡고 눈을 감았다. 또 다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내 다리사이의 그것이 그녀의 몸 안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미 그녀는 충분히 젖어 있었다. 
 
“사랑해.”
 
상황극을 깨 버리는 대사일지 모르지만, 그 말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그녀가 웃으면서 ‘자기 상황극 되게 못해!’ 라고 불평을 한다고 할 지라도, 목구멍까지 비집고 나온 그 말을 삼킬 용기가 나는 없었다. 
 
-다양한 체위도 해보고 싶었는데.-
 
내가 언젠가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리즈가 이렇게 대답했다. 
 
-난 뭐든지 좋아. 그리고 한가지 체위가 더 느끼기 쉬워. 너랑은 다 좋아. 섹스에 대해서 부담을 갖지마. 나를 만족시키려고 하지마. 그냥 자기 마음만 보여줘.-
 
나는 행운아임에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리즈를 이렇게 가질 수 있을리 없다. 내 손길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리즈의 신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나는 그녀를 깔아 뭉게는 듯한 자세로 그녀와 하나가 되어 허리를 움직였다. 정말이지 단 1mm의 틈도 없이 두 몸이 밀착되었다. 묻고 싶어졌다. 
 
“너 누구꺼야?”
 
평소의 나는 절대 용기 낼 수 없는 그 질문에, 리즈는 숨이 막혀 헐떡 거리면서 대답했다. 
 
“네 꺼. 다 네 꺼.”
 
그 말이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었는지, 내 몸짓이 더욱 거세졌고 흐느끼는 그녀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녀의 몸이 내 것을 꽉 조였다가 다시 풀었다를 반복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얼른 손을 뻗어 그녀가 씻을 때 빼 놓은 콘돔을 끼고는, 다시 그녀의 몸 안으로 진입했다. 그 부드러운 감촉 때문에, 나는 더욱 깊숙하게 그녀의 몸에 나를 박아 넣고 있는 힘껏 리즈를 끌어 안았다. 
 
“흑……흐윽……”
 
흐느끼는 듯한 리즈의 신음과, 내 이마를 타고 떨어지는 땀방울과, 내가 정신없이 빨아서 붉게 물든 그녀의 하얀 등이 내 오감을 자극했다. 나는 차마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못한채로 그녀를 안고 거칠게 호흡했다. 체위를 거의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한가지 자세로만 그녀와 나눈 섹스는, 오히려 더 큰 자극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헝클어진 그녀의 목에 걸린 스카프와, 여기저기 널부러진 그녀가 준비한 유니폼과, 또 이미 어딘가에서 굴러다닐 내 속옷들. 그리고 잔뜩 젖어버린 침대보. 
 
“자기야.”
“응.”
 
그녀와 나는 가까이서 마주보았다. 쉴 새 없이 서로에게 입을 맞추며. 
 
“내가 그랬잖아. 자기 반 죽일 거라고.”
“이미 성공했어.”
“아직 밤은 긴데?”
“잠 안 잘 거야?”
“자긴 잘 거야?”
 
나는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리즈가 또 웃었다. 다시 귀여움으로 돌아간 얼굴을 하고. 
 
“행복하다.“
“나두.”
“자기랑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우리 매일 섹스만 할 거 같은데. 나 출근은 어떻게 해?”
 
울상을 짓는 그녀가 귀여웠다. 그녀와 함께 한 집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근데 같이 사는 거 말고 잠깐 우리집에 오는 건 안돼.”
“어째서?”
“자기 체취가 남으면 혼자 있을 때 더 힘들어. 그래서 안돼.”
 
그녀의 대답이 사랑스러웠다. 이미 그녀가 가져온 음식은 바닥에서 식어가고 있었지만, 둘다 전혀 허기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 절대 잠 안 잘거야.”
“그럼?”
“계속 하기만 할 거야.”
“체력 자신있어?”
“리즈라면 가능할 거 같아.”
 
그녀는 웃으며 나를 끌어 안았다. 나 이제 리즈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뜬금 없지만 고백하나 해도 돼?”
“뭔데?”
“전 남친한테 연락 왔었어.”
“언제?”
 
괜히 경계심이 들어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에. “
“뭐라는데?”
“다시 만나고 싶대.”
“그래서 대답은?”
 
나 답지 않게 다그치며 웃는 것이 재밌는지 그녀는 대답을 해주지 않으며 나를 약올렸다. 그러지마. 나 진짜 쓰러져. 
 
“나를 못 잊겠대. 헤어진 이후에 섹스도 못했다고 하더라. 다른 사람이랑은.”
“뭘 그딴 소리를……”
 
질투를 하는 내 모습이 귀여웠던 건지, 리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이미 엄청 사랑하는 사람 있어서 싫다고 했어.”
 
나는 리즈를 꽉 끌어 안았다. 연락왔다는 전 남친이 괘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심정이 이해가 가는 이 기분은 뭘까? 아마 나라면 평생 그녀를 잊지 못하고 연애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그만큼 리즈가 나에게 세겨 놓은 흔적이 너무 크고 짙어서. 
 
행복했다. 그녀가 내 것이라는 것이, 그리고 지금 같이 있다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 그녀가 멀리 달아나 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리즈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내 이마를 살짝 쓰다듬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괜찮아. 난 네 꺼 잖아.”
 
그제서야, 나는 그녀를 만나게 해준 최고의 우연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 우연을 기회로 만든 그녀의 다이어리에도 감사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기회를 잡아 내게는 과분하게 얻어낸 이 행복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글쓴이 카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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