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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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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포레스트]

일본의 겨울은 잔혹하지만 낭만적이다. 
 
한국이 훨씬 더 춥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균기온 등의 수치만 놓고 봤을 때 이야기이다. 한국은 실내에 들어가면 엄청 따뜻하다 못해 덥지만 일본의 집은 실내도 엄청나게 춥다. 지진이 많은 나라이다 보니 우리처럼 보일러 등의 실내 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은 집집마다 등유를 넣는 전기 스토브를 겨울이 될 때 꺼내 놓는다. 그 전기 스토브도 지진에 대비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진동이 있으면 스스로 꺼져 버린다. (지나가다가 발로 툭 차면 딥빡이 올 수 있음). 
 
스토브와 함께 대표적인 일본의 난방 기구는 고타츠이다. 고타츠란 쉽게 말하면 테이블 밑판에 열선이 작동되어 하반신을 따뜻하게 하는 기구다. 물론 테이블이라 함은 사방이 트여 있으니까, 열이 분산되지 않도록 테이블 상판을 들어 이불이나 담요 같은 것을 덮어 둔다. 아마도 일본 만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매우 낯이 익을 것이다. 겨울에는 고타츠 안에 들어가서 부랄 히팅을 하며 귤을 까먹는 나름의 낭만이 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욕 나오는 잔혹한 실내온도와 스토브의 등유 냄새 갬성, 고타츠의 낭만이 버무려진 일본의 겨울. 지수와 나는 우리집을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만원 버스는 아니었지만 앉을 자리는 없었고 우리는 나란히 버스의 손잡이를 잡고 섰다. 왜 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달 동안 하교길에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오직 그 버스에서 우리만 느낄 수 있는 정적과 어색함이 흘렀다. 
 
나는 곁눈질로 힐끗 그녀를 바라보았다. 따뜻한 버스의 온도 때문에, 그녀의 머리에 달라붙어 있던 눈가루들이 녹아 유독 반짝거렸다. 각자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는데, 우리 둘의 손은 닿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를 미묘하게 오가며 버스의 진동에 따라 스쳐 지나갔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온 몸의 신경이 손등에 가 있는 것만 같았다. 
 
“눈 진짜 많이 오네.”
 
“그러게요.”
 
왠지 모를 어색함이 싫어서 던진 말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눈이 많이 내리는 그 지역의 사람들은, 왠만한 눈에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운전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지수의 머리카락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근데 왜 오빠는 학교 근처에서 안 살아요?”
“글쎄. 방도 너무 비싸고. 번화가이기도 해서 공부에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오늘 술 마시는 건 공부에 도움이 되고요?”
“일본어 토론하면서 술 마시는 거 아니었어?”
 
내 말에 그녀가 살짝 웃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녀의 손등 온도가 방금 전 보다 더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나란히 선 둘 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생각해보면 –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까지도 – 갑자기 지수와 술을 마시러 내 방에 가고 있는 상황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조용한 동네 사네요 오빠. “
 
버스에 내리자 마자 내가 사는 동네를 보고 그녀가 처음 한 말이었다. 우리 동네는 편의점 하나, 마트 하나가 걸어갈 수 있는 범위의 전부인 주택가였고, 아주 당연하게도 술집 따위는 없었다. 지수는 술집을 찾기 위해 몇 번 두리번 거리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집 옆에 있는 편의점을 향해 내 뒤를 따라왔다. 
 
일본생활에서 그나마 좋았던 점 중 하나는, 편의점에 있는 어떤 맥주를 골라도 맛있었다는 점이었고, 편의점에서 어떤 안주를 골라도 먹을 만하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아사히 맥주 몇 캔과, 일본에서 파는 경월(鏡月)이라는 소주 큰 것 한 병, 간단한 안주 몇 가지를 사서 우리집으로 향했다. 지금 이 상황이 우스웠는지 그녀는 중간중간 피식 거리면서 웃었다. 
 
좁은 내 원룸 자취방을 보여주는 게 그제서야 조금 쪽팔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전날 청소를 한 상태라서 수상하게 뭉쳐진 휴지 뭉치나 어디서 나온 털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곱슬털등의 극혐요소는 없었다. 담배냄새를 지우기 위해 사두었던 다이소 아로마 향초 덕분에 꿉꿉한 남자냄새도 조금은 덜했다. 다행이었다. 
 
나는 얼른 스토브와 고타츠의 전원을 켰다. 그녀는 추워서 외투도, 털모자도 벗지 못하고 방에 앉았다. 침대가 자리를 차지하긴 했지만 둘이 앉아서 술을 마시기에 좁지는 않은 공간이었다. 지수는 침대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고, 고타츠 담요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얼마 되지 않아 고타츠 위로 조촐한 술상이 차려졌다. 
 
스토브의 따뜻한 공기가 방 안을 한 번 돌고 나서야 나는 두꺼운 점퍼를 벗고 그녀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고타츠의 따뜻한 열기가 꽁꽁 언 발을 녹이는 것만 같았다. 앙 기모띠. 
 
우리는 맥주부터 천천히 술 자리를 시작했고, 어색했던 분위기는 술 몇 모금에 조금 풀어졌다. 그제서야, 나는 그 동안 한 번도 묻지도 듣지도 못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나 역시 일본에 와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 했다. 
 
“오빠는 왜 일본에 왔어요?”
“그냥.”
“정말 그냥요? 그럼 왜 동경이 아니라 이 지역으로 왔어요?”
“동경은 너무 삭막할 것 같아서.”
 
내 말에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똑같이 왜 부모님에게 손을 안 벌리고 돈을 모아 일본에 왔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담담하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라고 대답했다. 
 
지수는 언니 둘과 엄마, 이렇게 여자 넷이서 살고 있었다고 했다. 유일한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부터는 여자 넷이 각자 가장이 되어 바쁘게 일을 한 모양이었고, 예전부터 네일아트를 배우고 싶다는 꿈이 있었던 그녀는 세 여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일본으로 건너온 것이었다. 어찌보면 나보다 훨씬 누나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러웠다. 
 
군대에서 후임이랑 보초를 서면서 “야 너 어디 사냐?” “이병 XXX. 서울 삽니다!” “서울이 다 너네 집이냐 십새야.”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너 밖에서 뭐하다 왔냐?” “네! 학교 다니다 왔습니다!” “어느 학교 시밤바야 대한민국 학교가 다 니 모교냐.” 등의 대화 패턴으로 타인과 대화를 했던 이후에, 참으로 오랜만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아. 지금 쓰고 보니까 군대 때 랑은 조금 다른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도 지수에게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했다. 대학교 1학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오고, 다녀오자마자 다니던 대학에서 자퇴하고, 알바 및 장사를 하면서 몇 년 돈을 모아 다시 일본행을 결심하기 되기까지. 그녀는 맥주 몇 캔 탓에 조금 붉어진 볼과, 유독 큰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경청해주었다. 술자리가 시작되고 한 시간이 훌쩍 넘고 나서야 그녀는 입고 있던 코트와 모자를 벗었다. 몸에 조금 붙는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언뜻 보이는 그녀의 볼륨이나 몸매는 확실히 처음 그녀를 보았던 그 말라깽이 시절보다는 훨씬 보기 좋게 느껴졌다. 
 
“오빠 저 책을 다 공부하는 건가요?”
 
그녀는 한 쪽에 쌓여 있는,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일본어 책들을 보며 깜짝 놀라며 말했다. 
 
“몇 개는 다 본 거고. 한 두 세권 남은 것 같아.”
“진짜 공부 엄청 열심히 하시네요.”
“남들보다 유학이 늦었잖아. 열심히 해야지.”
“그럼 오빠는 어학원 졸업하면 전문학교 진학하실 거에요?”
 
전문학교란 우리나라로 치면 2년, 3년제 전문대학을 말한다. 나와 지수가 다니던 어학원의 경우, 전문학교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전문학교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명확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나 기술이 있으면 좋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도 않았다. 
 
“아니. 그냥 일반 대학교 가보려고.”
“그렇구나. 진짜 자극 받네요. 더 열심히 해야 겠어요.”
“아냐 살살해. 너가 너무 열심히 하면 격차 벌어지잖아.”
 
그녀는 내 말에 베시시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맥주는 빈 캔이 되어 한 쪽에 치워졌고, 맥주가 있던 자리에 일본 소주가 채워진 글라스가 자리잡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우리 둘다 다리를 고타츠에 넣은 채로 앉아 있었는데, 키가 큰 나는 그녀와 닿을 까봐 아까부터 아빠다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술이 한 두 잔 들어가니 자세는 조금 자연스럽게 풀어졌고, 검정색 스타킹을 신은 그녀의 다리와 내 다리는 살짝살짝 닿기 시작했다. 지수가 가끔 다리를 쭉 펴면, 그녀의 발 끝이 내 허벅지에 닿기도 했다. 두꺼운 스타킹을 신어서 그녀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최대한 안 움찔 거린척을 하며 소주를 홀짝 대며 마셨다. 
 
“난 오빠가 이렇게 재밌는 사람인 지 몰랐어요.”
“공부 얘기만 하는데 어떻게 웃기냐?”
“그럼 무슨 얘기를 해야 웃긴데요?”
“글쎄 뭐 야한 얘기?”
“야한 얘기 하면서 어떻게 웃기나요?”

사실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 저질 섹드립이 난무하며 낄낄 거리긴 하지만, 술을 마신 나는 나도 모르게 앞에 있는 네 살 어린 어학원 동기에게 그런 말을 하고야 말았다. 
 
“됐어. 넘어가. “
“오빠는 여자친구 있어요?”
“유학생이 무슨 여자친구야. 공부를 해야지. 어딜 연애 생각을 해? 너는?”
“……그렇게 말하는 데 무조건 없다고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했네 했어…가 아니고. 있네 있어.”
“헤어졌어요.”
“아 그래? 언제?”
“오늘이요.”
 
나는 마시던 술을 뿜을 뻔 했다가, 다시 지수를 바라보았다. 
 
“오늘 쉬는 시간에 확인해 볼 것이 있어서 노트북을 켰는데, 친절하게 이 메일로 보내주셨더라고요. 이별 통보를.”
 
그녀는 이별을 한 것이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나를 보며 싱글 거리며 웃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 뭐. 그래서. 괜찮은 거야?”
 
나는 일부러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물었다. 
 
“괜찮아요. 그렇게 좋아 죽었으면 유학을 오질 말던지, 아니면 같이 왔겠죠.”
“뭐 그거야 그렇긴 하지. 에이. 잊어 버려. 유학생이 무슨 장거리 연애야 건방지게. 외로우면 술 마시고 야동 봐 그냥.”
“뭐에요 그게.”
 
지수는 내 말에 쿡쿡 거리며 웃었다. 그녀는 문득 물끄러미 술잔을 쥐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빠 손이 되게 예쁘네요?”
“뭐가 예뻐. 겁나 크기만 하지.”
“큰 건 맞는데 꽤 예쁜 것 같은데.”
 
사실 손이 예쁘다는 소리는 꽤 들은 편이었다. 나는 괜히 처음 듣는 것 처럼 그냥 얼버무렸다. 
 
“제가 네일아트 준비중이라서 손에 관심이 많거든요.”
“오 그래? 그럼 나 네일아트 해줘.”
“지금 어떻게 해요? 메니큐어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면서.”
“아 몰라 막 스티커라도 붙여봐.”
 
내 말에 지수는 살짝 웃음 짓더니 내 손을 살짝 잡아 당겼다. 
 
“오빠 덩치에 무슨 네일 아트에요. 손 맛사지 해주는 거 있는데 제가 그거나 해 드릴게요.”
 
그녀는 내 오른손을 양 손으로 깍지를 끼고는 천천히 맛사지를 해주기 시작했다. 주로 손가락 사이를 꾹꾹 눌러주는 식이었는데,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 감촉이 그대로 전달 되자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그녀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집중하는 표정을 하며 내 손을 계속해서 주물렀다. 내 손을 잡아 당긴 탓에 나는 자연스레 조금 더 그녀 쪽으로 다가 앉게 되었고, 다리를 펴고 앉은 그녀의 발은 아예 내 허벅지를 누르는 형상이 되었다. 
 
술 기운 때문인지 귀에서 맥박 뛰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붉게 물든 그녀의 얼굴과, 긴 머리칼 사이로 언뜻 보이는 하얀 목선. 와인색 니트의 앞부분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할 것이 뻔한 그 가슴과 내 손을 주무르는 차가운 손가락의 감촉까지. 모든 것이 정지된 화면처럼 느껴졌다. 
 
“근데 오빠 왜 얼굴이 그렇게 빨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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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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