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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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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LALA LAND]

사람은 역시 정신력의 동물이었다. 물론 세상에는 ‘죽어도 안 되는 일’ 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공부라는 것이 그 정도 범주에 들어갈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한국 서적과 일본 서적을 열심히 독파한 끝에, 나는 그럭저럭 수업 내용을 이해할 정도 까지는 만들 수 있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의 대학교는 유학생들만 들을 수 있는-혹은 들어야만 하는- 과목들이 있었다. 걔 중에는 일본어 수업도 물론 껴 있었다. 당연히 랭귀지 스쿨에서 배우는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내용들이지만, 그나마 그것들은 경쟁자들이 다른 유학생 들이었기 때문에 수업을 듣는 것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다만, 가끔 다른 일본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일본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나는 교과서로 정직한 일본어만 배웠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신조어, 혹은 인기 방송에서 유행하는 말투나 단어등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평소에 별로 관심이 없던 일본 예능까지 챙겨보며 공부하는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대학교 1학년들은 법적으로 성인이 아니었기때문에 술 담배를 할 수 없었다.(물론 난 예외였지만.) 그것이 한국의 대학문화와 가장 다른 점이었는데, 따라서 시끌벅적한 술자리나 친목을 위한 과 단체 회식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각자 조용히 공부하고, 알바하고, 마음 맞는 놈들이 있으면 같이 놀고, 또 일부는 부활동(동아리)를 하고, 그게 다였다.
 
일본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얘들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 바이 사람이겠지만 전체적으로 중 고등학교 때 죽어라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대학교 2학년이 지나고 나서는 취직을 위해 여러가지 활동을 하다가, 3학년 후반 부터는 졸업논문이며 졸작 준비를 하고, 졸업 하자 마자 취직을 해서 워커홀릭으로 살아간다.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리 처럼 술자리나 모임을 자주 갖지 않으며, 사실 놀 만한 곳이 많은 것도 아니다. 물론, 그 덕분에 나 같은 놈도 집중하고 공부하는 것이겠지만.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가 아니라서, 나는 사실 그냥 무작정 마리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그녀의 메일 주소를 주고 받을 때 핸드폰 메일이 아닌 일반 메일 주소도 받았을 뿐이었다. 너무 떠나자 마자 보내면 방정 맞고 촐싹 맞아 보일까 봐 조금 참다가, 나는 ‘호주에 무사히 도착했어?’ 로 시작해서 ‘빨리 마리의 귀국일이 왔으면 좋겠다’ 라는 끝맺음으로 메일을 보냈다.
 
나는 마리를 기다리며 늘 보내던 일상을 그대로 답습했다. 공부하고, 운동도 하고, 일도 했다. 한국인들을 상대로 일본어 과외를 하는 것이 입소문이 퍼져서, 학생들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인 커뮤니티와 엮이기 시작하면서 피곤한 일들도 종종 생겨났지만, 돈을 버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할 리스크였다.
 
그 무렵, 나는 대만으로 돌아간 페이와 스카이프 등으로 가끔 통화를 했었다. 대만 최고의 명문대를 다니는 브레인임을 증명이라도 하 듯, 그녀는 유창하지는 않지만 나와 일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에 문제가 없을 정도까지 실력이 늘어 있었다. 또한 영어도 꽤 잘하는 편이어서, 우리는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언어 교환을 할 겸 가끔 통화를 했다.
 
“대만은 어때? 다시 돌아가니 좋아?”
 
-응. 엄마가 해준 밥도 먹고, 무엇보다 춥지 않아서 너무 좋아.-
 
하기사 그녀는 겨울에, 그것도 눈이 많이 내리는 일본의 동북지방에 처음 워홀을 왔으니 그 추위에 적응이 안되었었다고 했다. 예전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빠는 어때? 대학교 재미있어?-
 
“더럽게 재미없어.”
 
그녀는 내 말에 깔깔 거리면서 웃었다. 페이는 벌써 복학을 했고, 조금 쉰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학교에 마음에 드는 여학생은 없어?-
 
“학교에는 없어.”
 
-학교 밖에는 있나 봐?-
 
“그거야 뭐…”
 
-말해봐. 나도 오빠한테 연애사 이야기 했었잖아.-
 
나는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할 까 고민하다가, 마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와 반복되는 우연으로 마주친 이야기, 비 오는 날 그녀를 바래다 줬던 이야기, 같이 마쯔리에 갔던 날과 그 날 이후 매일 매일 연락 했었던 이야기, 바래다 주는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했던 고백까지.
 
-와우-
 
페이는 흥미 진진하다는 듯한 어투로 내 말을 경청해주었다. 생각해보니, 페이는 여자니까 마리의 심리에 대해 잘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해?”
 
-뭐가?-
 
“호주에 다녀와서 대답해 준다는 건 무슨 뜻일까?”
 
-흠……-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 상황이나 여자분 표정을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사인도 안 좋은 사인도 아닌 거 같아.-
 
“페이.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잖아.”
 
내 실망한 듯한 목소리에 그녀가 웃었다. 스카이프 화면 속의 그녀는 편한 원피스 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는데, 트레이드 마크인 장난기 어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정말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그 여자분이 오빠를 좋아했더라면 바로 오케이를 하지 않았겠어?-
 
“그럼 안 좋은 사인이야?”
 
-But, 그런 급작스러운 고백에 너무 쉽게 OK하는 것도 여자로서 너무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럼 좋은 사인일까?”
 
-오빠 그 분 정말 좋아하는 구나?-
 
페이의 말에 나는 괜히 먼산을 응시했다. 그녀는 웹캠 너머로 나를 관찰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여자 마음은 알 수가 없네.”
 
-그럼. 당연하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는데.-
 
“도움 안되니까 이제 끊어. 괜히 얘기했어.”
 
-너무해! 나랑 대화할 가치도 없는 거야 그럼?-
 
“응. 일단 화상채팅을 옷 입고 한다는 것 자체가……아니다.”
 
-어후……진짜 못 말린다.-
 
그렇게 농담 섞인 대화를 하면서도, 페이는 마리와 내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본인이 다 두근거린다고 말해 주었다.
 
-마리짱은 언제 오는데?-
 
“내일.”
 
-진짜? 공항으로 마중 가는 건 어때?-
 
“엥? 마중? 그건 좀……부담 스럽지 않을까?”
 
-그게 부담스럽다면 오빠를 좋아하는 게 아니지 않을까?-
 
“뭐야. 그건 너무 갔다. “
 
내 말에 페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오빠. 몇 시 비행기인지 혹시 알아?-
 
“알 리가 없지 내가……”
 
-흠. 아쉽네. 사람에 따라서 서프라이즈가 될 수도 있는 건데. 나라면 남자가 그런 서프라이즈 해주면 너무 좋을 거 같은데? 물론 내가 관심있는 사람에 한해서지만.-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말 가능하다면 마중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심결에 페이와 통화를 하며 인터넷 메일을 열었을 때, 나도 모르게 억! 하는 소리를 질렀다. 마리에게서 답장이 와 있었다.
 
[오빠! 답이 늦어서 미안해요. 가는 날이 되어서야 답장 쓰네. 나는 오늘 밤 비행기로 돌아가. 10시 비행기라서, 저녁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할 것 같아. 오빠는 잘 지내지? 건강한 모습으로 봐요!]
 
-왜? 왜 뭔데? –
 
이어폰으로 페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리로부터 메일 답장이 왔다고 말해주었고, 내용을 듣던 페이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10시 비행기에 도착지는 센다이야?-
 
“응.”
 
-호주 어딘데?-
 
“시드니일걸?”
 
-기다려봐!-
 
그녀는 내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무언가를 키보드에 두드리기 시작했다. 웹캠은 끄지 않았기 떄문에 그녀가 부지런히 무언가를 보고 있는 모습은 보였다. 잠시 후 그녀가 내게 말했다.
 
-오빠. 검색해 보니까 딱 한 편 밖에 없어. 센다이에는 내일 오후 한시쯤 도착할 거 같은데? 편명도 말해줘?-
 
“아……음……진짜?”
 
-나 믿고 한 번 가봐. 호주에서 오는 거면 짐도 크고 할 텐데. 오빠가 마중 가서 도와주면 감동하지 않을까?-
 
나는 페이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화면 너머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페이는 나보다 더 설레여 하는 표정이었다.
 
-꼭 가봐! 손해보는 것도 아니잖아.-
 
페이는 한사코 내게 그녀의 비행기 편명까지 말해주었고 나는 아휴~~됐어요 하면서 손사레를 치면서도 그 편명을 외우고 있었다. 우리는 짧게 더 통화를 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고, 나는 그 날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마, 내가 대학교 1학년때 유일하게 하루 수업을 통으로 제껴버린 날이 바로 그날이 아닐까 싶다. 나는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지 않았고, 대신 센다이 공항으로 가는 길을 검색했다.
 
나는 몇 개 있지도 않은 옷을 꺼내어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센다이 공항까지는 집에서 한 시간 반이 소요되었고, 나는 한참이나 끙끙 대다가 결국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옷을 입고, 잠을 자지 못해 초췌한 표정을 한 채로 공항으로 차를 달렸다.
 
지금 회상해 보면, 신호에 걸릴 때마다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는 게 맞는지 아닐지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과연 그녀는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라는 것이었고 만약 내 고백을 거절하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도 했다. 쿨하게 하하하 그래 마리 우리 친구로 지내지 않으련? 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쌍한 표정을 지어 동정심에 호소할까? 등의 온갖 찐따 같은 상념을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공항에 도착했다.
 
센다이 국제공항은 정말 작은 공항이었다. 인천 공항에 비하면 고속버스 터미널 수준이라, 게이트도 두 개 밖에 되지 않는다. 하네다 같이 큰 공항이었으면 변수도 많아 스쳐 지나갈 확률도 있었는데, 다행히 호주에서 오는 비행기는 페이의 말대로 딱 한 편 뿐이었고 편명도 일치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출구 쪽에 서서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두근 거리는 표정으로 그 방향을 응시했다가, 이내 에이 하면서 고개를 숙이길 반복했다. 가만, 마리의 부모님이 마중을 나와 있으면 어쩌지?
 
나는 그 생각까지는 하지 못한 것 같아 게이트에서 조금 떨어져 큰 기둥 뒤에 기대어 마중을 나온 사람들과 게이트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수상한 내 행동에 사람들은 힐끗 거리면서 쳐다보았다.
 
“어…?”
 
나는 눈이 좋은 편이 아닌데, 문이 반쯤 열렸을 때부터 마리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작은 몸때문에 더 커보이는 캐리어를 끌고, 살랑거리는 치마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조금 피곤한 표정으로 게이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전혀 둘러보지 않고 곧바로 출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은 게 분명했다. 나는 쭈뼛거리며 그녀의 뒤를 따랐는데, 내가 생각해도 범죄자 혹은 미행자의 워킹과 비슷해서 나는 다른 쪽 출구로 뛰어 나가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오빠?”
 
캐리어를 끌고 있던 그녀가, 나를 보며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럴 때는 어디서나 눈에 띄는 몸뚱이가 조금 자랑스럽구나.
 
“어어? 이게 누구야? 마리 아니야?”
 
90년대 경찰청 사람들에서나 볼 법한 내 발연기에 속을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오빠 여기 왜 있어?”
“심심해서 산책 나왔어.”
“공항으로?”
“응. 색 다르긴 한데 다음부턴 안 하려고.”
 
내 말에 마리는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뭐가 웃긴지 쿡쿡 거리면서 웃었다.
 
“뭐야. 뭐가 진짜야? 서프라이즈? 아니면 정말 다른 용무가 있어서 온 거?”
“비자 갱신하러 왔는데 공항에서 하는 거 아니라더라.”
“재미 없거든?”
 
그녀는 그제서야 눈을 흘겼고, 나는 또 그녀 앞에서 바보 같이 웃었다. 그녀는 바보 같이 웃는 나를 보며 또 한 번 웃었고, 나는 그 큰 캐리어를 빼앗아 끌었다.
 
“어떻게 알았어? 이 시간에 오는 건?”
“텔레파시로 알았지.”
 
80년대에 고고장에서도 안 먹힐 내 멘트에도 마리는 그냥 웃기만 했다. 팔짱을 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은, 내 소매자락을 살짝 잡고 따라오는 그녀를 보니 가슴이 뛰었다.
 
“나 이런 서프라이즈 너무 좋아.”
“정말?”
“응. 너무 좋아. 재밌어.”
“서프라이즈야 짜잔!”
“비자 갱신하러 왔다며?”
 
그렇게 우리는 장난 섞인 재회를 나누며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안전 벨트를 매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진짜 고마워 오빠. 덕분에 편하게 가네. 나는 늘 받기만 하는 거 같아.”
 
그럼 이제부터 주면 되잖아. 라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하고 나는 그냥 웃어버렸다. 내가 왜 그녀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끊임 없이 생각했지만 나는 그냥 그만 두기로 했다. 사람이 가슴이 뛰는 것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은 너무 무모한 행동이다. 그냥 마리라서 좋은 것 아닐까?
 
평상시와 같은 15분이 아니라. 무려 마리의 집까지는 한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도착하자마자 센터에 전화를 해서 시프트를 조정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려던 말을 그냥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는 호주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호주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힘이 되 주었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예전 추억이 있는 식당이나 카페에 갔었다고 했다. 휴일이 없다시피 했던 그녀는 실컷 놀고, 먹고 자고 와서 피부도 좋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나는 재미 없는 내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역시나 ‘예전이랑 똑같네 뭐’ 라고 마리는 말하며 웃었고, 나 역시 어깨를 으쓱 하며 웃었다. 마음속에서는 내 고백에 대한 대답을 어서 들어! 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즐겁게 호주 여행을 이야기는 하는 그녀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은 또 왜 그렇게 빨리 가버리는지, 그날 따라 빌어먹을 4번 국도는 왜 이렇게 차가 없는지, 벌써 낯익은 그녀 동네의 초입이 보인다.
 
“오빠.”
“응.”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얼굴인데?”
 
그녀는 장난 스럽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건 또 무슨 뜻일까. 나는 괜히 고개를 돌렸다.
 
“흠~내가?”
“혹은 듣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얼굴일수도?”
“응. 사실 안 달나서 왔어. “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대답은?”
 
나도 모르게 재촉하듯 말했다. 그녀는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저렇게 웃어 놓고 NO라고 하면 나 뛰어 내릴 거야. 진심이라고.
 
“어떤 대답을 할 거 같아?”
“자꾸 대답 회피할 거면 나 여기서 그냥 차문 열고 뛰……”
“거절할 리가 없잖아.”
 
그 말과 함께 차 안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말문이 막혀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나를 설레게 하는 그 미소를 아낌없이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집이 반대 방향 인데도 매일 같이 데리러 오고, 내 짐이 무거울 까봐 공항까지 오는 사람을 내가 거절할 리가 없다고.”
 
“……알고 있었어?" 
“스포츠센터 오빠 회원카드에 주소가 버젓이 적혀 있어.”
 
순간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팔을 뻗어 나를 안아 주었다. 나는 차 안에서 몸을 돌린 채로 어정쩡한 자세로 그녀를 안았다. 너무 밀착하면 심장 뛰는 게 들킬 것만 같아서 살짝 몸을 뒤로 뺐다.
 
“오빠는 나를 처음 본 게 언제라고 생각해?”
“응? 그거야 헬스……아니 스포츠센타에서 처음 봤지.”
 
그녀는 내 몸을 꽉 안아주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전에도 오빠를 본 적이 있어. 오빠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언제?”
“스포츠 센터 앞 편의점 앞에서.”
“나를?”
 
혹시나 코를 후비적 거리고 있는 것을 봤으면 어떡하지……하고 있는 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때 편의점 앞에 횡단보도가 있었고, 맹인이랑 맹인 안내견……리트리버인가? 아무튼 그 큰 강아지가 신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 오빠도 그 뒤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으응.”
 
사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했을까 곱씹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그때 오빠가 모르고 맹인 안내견 꼬리를 살짝 밟았고, 그 강아지가 움찔 했었어.”
 
젠장. 좋은 말이 아닌가? 싶어서 벌써 얼굴이 화끈거렸고, 여전히 그 향긋한 샴푸 냄새를 내게 풍기며, 나를 안은 채로, 그녀는 말을 이었다.
 
“맹인 안내견은 절대 그런 상황에서도 짖거나 소리를 내지 않는다더라. 혹시 그랬다가 옆에 있는 주인이 움직여서 사고 날 수도 있으니까.  그 강아지도 마찬가지였고, 오빠는 깜짝 놀라서 그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미안해]라고 하더라고.”
 
……솔직히 기억이 안 났다. 나 에게도 미담이 존재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래서 생각했지. 덩치는 무서운데 친절한 사람이구나~하고. 그리고 나서 며칠 후 우리 센터에 등록하러 왔었잖아.”
“나……솔직히 기억이 안나.”
“상관없어. 내가 봤잖아.”
 
그녀는 몸을 뒤로 빼며 나를 바라보았다. 더 안아주면 안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으며. 그리고 마리는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오빠 고백에 나는 OK야.”
 
가슴이 뛰다 못해 목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그 작은 얼굴을 잡고 키스하고 싶었지만, 처음 보는 그녀의 수줍은 표정에 나는 몸이 굳어 그냥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 15화에서 계속

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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