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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 나오는 닉네임과 이름은 가명입니다.
 
5월에 작은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모임이라고 해봐야 1:1의 만남이었다. 좋아하던 게임에서 알게 되었는데 게임보다 이 아이가 더 좋아져서 게임은 그다지 접속하지 않게 되었다. 연락만을 주고받으며 상상했던 모습과 달랐다. 무척 냉소적이고, 염세적이고 세상 모든 고민과 난관은 모두 겪고 있는 듯이 말하던 그녀가 내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꼈었다.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같은 사람에게 더 끌리고, 위태로울 정도로 우울한 짙은 파란색 같다가도, 희망찬 하늘빛을 기대하는 모습이 작은 바닷가의 조그마한 조약돌이 지평선 너머에 두고 온 꿈을 잊지 못해 고민하는.
 
나는 불만이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작은 새의 날갯짓 보다 더 빠르게,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사랑에 빠져 버리는 것이. 너의 우울한 유화(油畵) 한 폭이 도대체 어떻게 이 정도로 나를 매료시키는 건지.
 
“그랬다니까. 크크큭....... 안 웃겨?”
 
내 옆에 그녀는 큰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며 새하얀 이를 손으로 가리고 나를 바라봤다.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속으로 외치며 내가 쥐여준 파란 장미를 든 그녀의 손을 누르고 파고들어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녀는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마워.”라고 말했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설명을 위해 조금 되돌아가려 한다.
 
2016년 봄엔 RPG 게임에 빠져있었다. 무슨 무슨 영웅전이라는 게임이었는데 그 당시 막노동에 가까운 기술직 일을 하고 집에 녹초가 돼서 와도 꼭 두세 시간은 하고 잤을 만큼 빠져있었다. 통쾌한 액션, 캐릭터의 육성에 따라 강해지는 쾌감이라던가, 그런 걸 다 떠나서 나는 커뮤니티가 가장 좋았다. 그래서 나는 사냥보다도 사냥터 앞에서 넷 상에서 친해진 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여자는 결국 계속 신경 써주는 착한 남자한테 마음이 가기 마련이야.”
 
찰랑이는 은발, 달라붙는 고풍스러운 가죽 의상, 커다란 데다 예쁜 가슴의 캐릭터가 여자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은 대구에 거주하는 30살 여자라고 했지만, X이플스토리 때부터 이골이 나는 여장남자에게 속아 과금 아이템을 바쳤던 나로서는 알 수 있었다.
 
“저놈은 분명 거시기를 달고 있다.”
 
여자들의 기준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기자기하거나 여자 향이 묻어나는 게임이 아니라면 이런 RPG에서 여성 유저를 찾아보긴 힘들다. 간혹 가뭄에 콩 나듯 있긴 하지만 저놈은 아니라고 내 직감이 말해 주었다.
 
게임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닌데, 나는 거래소, 길드(유저 집단), 필드 채팅을 모두 열어 놓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군가 흥미로운 주제를 미끼처럼 던져주길 기다리는 물고기처럼.
 
라이스: 해피 유희열-ㅋㅋㅋㅋㅋㅋㅋ
죽마준마: 누나 노잼.
ㄱㄱ수월해: 새해 봉만이~
 
별다른 재미있는 주제를 낚지 못한 차에 길드 내의 흔치 않은 여성 유저인 라이스가 들어왔다.
 
라이스: 친구. 뭐 해.
옥수수식빵: 석상처럼 가만히 있지.
라이스: 아저씨들이랑 사냥이나 가자.
옥수수식빵: 그럴까...
 
호기심에 가까운 관심은 늘 내게 긍정을 유도하기 쉬운 것 같다. 여성 유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귀찮은 사냥을 지원하는 내가 한심하기까지 하다. 사냥에서 전사 캐릭터인 나는 특별한 스킬 없이 방향키와 우 클릭 좌 클릭을 적절하게 섞어 누르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하다 보니 사냥이 끝났다.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라이스: 우리 1년이나 알고 지냈는데. 전화번호나 교환할까요?
죽마준마: 들어온 지 8일 됐는데?
라이스: 해가 바뀌었으니까 1년이지.
죽마준마: 그래. 남잔 싫지만 식빵이 형이랑 수월아저씨도 번호 줘요.
 
그렇게 우린 손쉽게 번호를 교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글쓴이ㅣ무하크
원문보기▶ https://goo.gl/i7aY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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