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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리언 여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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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 
 
더운 걸 워낙 싫어해서 여름엔 밖에도 잘 안 나가는 스타일인데 사계절이 없는 더운 나라를 보내 놨으니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딜 가도 맥주가 맛있다는 점. 한국이었으면 입이 떡 벌어질 가격이긴 하지만 쉬는 날엔 워낙 할 게 없어서 거의 매주 금요일 밤만 되면 택시를 타고 번화가로 밤마실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 식당에 가봐야 별 볼 일 없고(남정네 두 명이 닭볶음탕에 소주만 먹어도 20만원이 나오더이다, 작업을 치기에도 교민 사회가 워낙 좁아서...) 그날도 혼자 강 근처의 괜찮은 맥주바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10분쯤 가게 구경을 했을까. 슬슬 땀으로 옷이 젖고 있어서 에라 모르겠다. 자주 가던 곳이나 가자 하던 참에 아는 동생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빠 오늘 쉬는 날이야?’
 
‘아니 내일 쉬는데?’
 
‘어? 나 방금 XX에서 오빠랑 뒷모습 완전 똑같은 사람 봤어.’
 
‘응. 내일 쉬니까 오늘 놀러 나왔지. 술 마시고 있구먼? 어디야?’
 
‘ㅋㅋ 뒤로 좀 걸어와서 OO 2층. 회사 동료들이랑 맥주 마시는 중’
 
해외에서 대학을 나온 그녀는 케천으로 유명한 H모 사의 Financial 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교민 모임을 통해 알게 된 그녀와는 가끔 주말에 술집에서만 만나는 술친구였다. 미모가 상당해서 꽤나 관심을 보내는 중이었기에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그녀가 있다는 술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에도 몇 번 가 볼까 했다가 가격이 좀 세서 발길을 돌렸던 아이리시 펍이었다. 아. 오늘 돈 좀 깨지겠구나 하고 지갑을 슬쩍 내려다보니 다행히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래. 돈 없어서 홈런 못 칠 일은 없겠구나. 얼굴이 없어서 못 치면 몰라도.’
 
더운 나라답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변을 눈으로 슥 훑었다. 손님들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양인들 사이에서 명당 창가 자리를 차지한 그녀가 손을 흔든다.
 
“몇 분이서 오셨나요? 지금 자리가 없어서.”
 
“나 쟤들 일행인데?”
 
내가 가리키는 자리를 바라본 웨이터는 슬그머니 엄지를 척 치켜든다. 응 그래. 나도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녀 회사에는 브라질 사람들이 많다고 했었다. 그래도 그게 이런 날 브라질 여자 둘이랑만 술을 먹는다는 얘기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어지간한 서양인들보다 더 하얀 그녀와 예쁜 캐러멜 색 피부의 미녀 둘.
 
“어이구 내가 방해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냐 얘들이 한국 남자 궁금하다고 해서 불렀어.”
 
아... 안 좋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해외 나와서 만난 외국인들은 항상 kpop을 좋아한다며 다가왔다. 미안하지만 난 요즘 걸그룹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보이그룹은 그런 게 존재하는지도 관심 없고. 다행히도 그녀들 역시 kpop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녀들의 관심은 오로지 나와 동생이 무슨 관계였는지 뿐이었다. 어느 정도 술들을 마신 듯 셋 모두 대화 주제에 거침이 없었다.
 
“몇 살?”
 
“스물일곱. 너희들은?”
 
“인터내셔녈? 아니면 한국 나이? 난 스물일곱이고 얘는 스물다섯.”
 
스물일곱이라고 밝힌 쪽은 드레스(이하 D)를, 다섯이라는 친구는 발목까지 딱 달라붙는 스키니 바지에 배꼽이 보이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이하 S). 물론 둘 다 몸매는 TV에서나 보던 글래머들. 들어갈 데는 너무 들어가고 나올 데는 감사할 정도로 나와 주신 데다 모델 수준으로 늘씬했다. 눈을 둘 데를 못 찾고 여기저기 눈을 굴리고 있자 아는 동생이 놀려댔다.
 
“너희들이 예뻐서 이 오빠가 어쩔 줄을 모르는데?”
 
“미안. 내가 일하는 데가 여자가 없다 보니까. 미인 보면 정신을 못 차려.”
 
너스레에 두 명은 깔깔대며 웃었다. 코리안 보이는 큐트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감사의 의미로 맥주를 한 잔 씩 더 돌렸다. 그래. 빨리 취해라. 내 짧은 영어 드러나기 전에. 워낙 더운 나라라 맥주 잔은 쉴 새 없이 비워졌다.
 
“무슨 일하는데?”
 
S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섹시한 여우상에 셔츠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가슴골이 혈액순환에 큰 도움을 주는 친구였다.
 
“응 그냥 조그만 거 만들어서 팔아. 근데 좀 비싸서 네가 사긴 무리가 있을걸?”
 
살짝 자존심이 상한 듯한 S에게 깔깔거리며 동생이 한 마디 거들었다.
 
“이 오빠 건설회사에서 일해. 요즘 지하철 만든다 그랬나?”
 
“와우 엔지니어?”
 
우리야 그냥 공돌이일 뿐이지만 해외에서는 그나마 엔지니어 인식이 나쁘지 않다. 덕분에 다시 깔깔대는 분위기로 돌아간 우리는 내가 풀어주는 공사현장 얘기를 들으며 빠른 속도로 맥주를 퍼마셨다. D가 술이 제일 약한 듯, 한 시간쯤 지나고 나니 눈이 풀린 채 포크 조준을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도 열두시. 마지막으로 아이리시 펍이니 아이리시 카밤 한 잔씩 마시고 헤어지자는 말에 독한 아이리시 카밤 한 잔씩을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확인한 가격표는 300불.... 맥주 몇 잔 마셨다고 30만원 가까이 나오다니... 옆에서 주섬주섬 핸드백을 뒤지는 아가씨들한테 내가 계산한다고 하자 동생이 등짝을 퍽 치면서 백오십 달러를 쥐여줬다. 그래. 너밖에 없구나 요 이쁜 것.
 
“자 만나서 너무 반가웠고 다들 갈까?”
 
동생과 S는 비틀비틀 일어났지만 D는 내 말을 들은 듯 만 듯 내 쪽을 쳐다보며 씨익 하고 웃을 뿐이었다. 뭐지? 불안감이 엄습하고 나서 정확히 2초 후. D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아...ㅅㅂ
 
“아 얘 술 잘 못 마시는데 오늘 무리한다 싶더라. 오빠 좀 도와주라. 내가 지금 쟤 못 챙길 것 같아서.”
 
꽤나 큰 키에 힐까지 신은 그녀는 거의 나만 한 높이였다. 팔 하나를 목에 걸고 거의 들어 올리다시피 그녀를 부축해서 일어서자 뭔가가 툭 하고 볼을 때렸다. 뭔가 싶어 곁눈질로 쳐다본 곳엔.... 신이시여 전 왜 브라질에서 태어나지 않았나요? 헐렁한 드레스에 가려져 있어 티가 잘 안 났지만 D의 가슴은 축복받은 게 틀림없었다. 속옷도 입지 않아 드레스 팔 구멍 사이로 보이는 가슴은 아무리 작게 잡아도 내 주먹 두 개 만한 사이즈. 몸에 힘을 쭉 빼고 완전히 뻗어버린 탓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녀의 가슴이 톡톡 얼굴을 두드렸다. D의 허리를 잡은 반대쪽 팔에 힘이 들어갔다. 물론 아래쪽 어딘가에도. 청바지에 꽉 끼는 그 미묘한 불편함에 잠시 멈춰 있자 앞서 가게를 나가던 동생과 S가 돌아봤다.
 
“왜?”
 
“아... 아냐. 머 먼저 내려가. 혹시 넘어지면 너희들 위험할까 봐.”
 
동생은 아 그렇구나 하고 계단을 내려갔지만 S는 배시시 웃으며 그 여우 같은 눈을 찡긋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항하는 곳은.... 아. 휙 돌아선 그녀는 의도적으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갔다. 반짝거리는 빨간 스키니 엉덩이가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글쓴이ㅣ터치패드
원문보기▶ https://goo.gl/fkMx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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