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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서브컬쳐] 로망포르노 제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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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가타기리 유코의 모습
 
가타기리 유코(片桐夕子)와 오누마 카츠시
 
초기 로망포르노 제작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베테랑 감독들이 모두 그만두거나 TV쪽으로 전향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니시무라 쇼고로 감독 같은 베테랑이 참여하게 된 것은 오히려 특별한 축에 든다. 신인 감독들도 로망포르노로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지면 하루라도 빨리 '손을 씻을' 궁리를 했다. 그래서 니카츠 로망포르노는 신인 감독이나 경험 많은 조감독들에게 끊임 없이 메가폰을 들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렇게 데뷔한 감독들이 일본영화의 힘이 되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그 때, 그 시절의 로망포르노가 아니었다면 최양일도, 수오 마사유키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라는 말도 분명히 일리가 있는 것이다.
 
니카츠의 많은 감독들은 연출 대신 각본을 집필해 작업에 참여했다. 조명, 촬영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차마 본명으로 일을 못하고 예명이나 필명을 바꿔 크레딧에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얼굴이 이름인 사람들이 있다. 배우들이다. 특히 여배우의 기근은 초기 로망포르노가 해결해야 할, 존립이 걸린 심각한 문제였다. [화심의 유혹]으로 로망포르노 데뷔를 한 오누마 카츠시 감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선배들의 오디션 장소를 기웃거려 보았지만 마땅한 인재가 없었다. 가타기리 유코라는 여배우를 만났지만 얼굴에 주근깨가 잔뜩 있는 그녀를 보고는 말조차 건네기가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 후 오누마는 바로 그 주근깨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
 
배우 기근에 니카츠 경영진은 기존의 핑크 영화스타를 스카우트하는 한편 '오오베야'의 여배우들에게 반 협박성의 설득을 시작했다. 예쁘냐 그렇지 않느냐 이전에 얼마나 벗을 수 있느냐, 과연 참아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던 시절이었다. 초기의 여배우들 중에 미인이 드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오오베야(大部屋)'란 스타급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독방'과 대비되는 의미로, 배우용 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독방에 비해 방이 넓고 여러 명이 쓰기 때문에 오오베야라고 불린 모양이다. 하지만 오오베야를 사용할 수 있는 배우는 엄연히 전속 배우들과 준 전속급의 배우들에 한해서였다.
 
각본을 받아 본 오오베야의 여배우들은 모두 '이~양 그런 걸 어떻게 해~' 라는 반응이었지만 회사의 설득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런 설득에 첫 번째로 넘어 온 여배우가 사츠키 유미(五月由美)였다. 그녀는 동경 태생으로, 중학 시절부터 연극을 해왔지만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1970년 스미토모 은행에 취직을 한다. 하지만 배우의 꿈은 접지 못했고, 타고난 끼를 불사르기엔 은행은 너무나도 딴 세상이라는 것을 금새 알아버린다. 71년 니카츠에 오디션을 통해 입사, 준 전속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첫 작품 [유우코의 하얀가슴(夕子の白い胸)]에 출연한 이래, 사츠키 유미는 극중에서 그가 연기한 히로인이었던 '가타기리 유코'를 자신의 예명으로 삼는다.
 
그 이후 60여 편의 로망포르노에 출연했고 최근 2000년에는 남편 오누마가 감독한 [nagisa/나기사]라는 작품에도 출연하여 51회 베를린 영화제 킨더 필름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한 가타기리 유코상(왼쪽에서 세번째)와 오누마 감독(중앙)
 
그러나 데뷔당시 가타기리 유코가 [유우코의 하얀가슴]을 찍기 위해 섹스 씬에 들어가자, 그만 주저앉아 울어버렸다고 한다. 아직 여드름투성이의 '소녀'였던 것이다. 감독, 촬영 등이 한 씬 한 씬 찍을 때마다 달래고 달래었지만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여장부 시라토리 아카네(白鳥あかね- 로망포르노 4회 참조). 55년에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니카츠의 스크립터 1기생으로 들어온 그녀는 본연의 업무 '기록' 외에 줄곧 울보 카타기리의 옆에서 그녀를 보살폈다.
 

[유우코의 하얀가슴]의 스틸 컷
 
그리고 '여기서는 눈을 살짝 감고, 소리를 좀 내' 라든가 '다리를 살짝 들어올려' 식의 어드바이스를 했단다. '나 역시 해보지는 않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켜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필사적이었습니다'. 시라토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 이후로 여자를 눕혀놓고 체위를 설정하거나 일종의 안무를 하게 된 연유로 스태프들은 '요코시(橫師: 눕히는 사람, 재우는 사람이라는 뜻)'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그녀를 칭했다고 한다. 굳이 현대식으로 바뀐다면 '섹스 씬 컨설턴트', '체위설정사' 정도가 될 것이다.
 
 
'경시청의 아이돌’ 다나카 마리(田中?理
 

다나카 마리
 
다나카 마리 역시 오오베야에서 데뷔한 케이스다. 이 두 사람이 니카츠의 로망포르노의 인기를 일거에 높여 놓았다. 호사다마라던가? 그로인해 니카츠의 로망포르노는 일본 경시청 보안 1과의 조사를 받게 된다. 혐의는 '외설' 이었다. 이로써 20년 가까이 끌어 온 그 유명한 [니카츠 로망포르노 재판]이 시작 된 것이다. 이 재판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으며 일본의 '표현의 자유와 그 투쟁을 기록한 역사'에 가장 깊이 새겨진 사건이기도 하다.
 
1972년 12월, 5대 메이저 제작사 중의 하나였던 [대영]이 드디어 부도를 내고 파산했다. 니카츠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소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니카츠는 경시청의 수사에 흔들릴 수는 없었다. 작가, 문사가 샐러리맨과 같을 수 없듯이 당시의 영화쟁이는 좌익이었고, 인텔리 야쿠자였다. 탈법, 위법도 눈 하나 깜빡 안하고 해치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경시청의 조사가 니카츠의 영화쟁이들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로망포르노를 찍기 시작하면서 스튜디오에 여러 팀의 스태프들이 들낙거리고 예쁘게 분장을 한 여배우들이 몰려다니고, 식당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시하라 유지로, 아카기 게이치로, 고바야시 아키라, 아나도 죠 등이 있던 황금기의 성대함은 아닐지라도 활기가 돌아오기 시작한 촬영소에서 경영진, 스태프, 배우들은 '희망' 이라는 걸 본 이후였다. 무서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싸우는 여배우', '경시청의 아이돌' 등으로 불리기도 한 다나카 마리는 폭 넓은 연기력을 소유한 진짜 배우였다. 러시아계의 혼혈로 탈 일본인적 용모가 눈부셨다. 흰 피부, 긴 다리는 남성 팬들에게 새로운 성적 판타지를 펼치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길게 끈 포르노 재판 때문에 다나카 마리의 활동이 영향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그녀가 육체적으로 가장 아름다웠을 때였고 때문에 보다 많은 작품을 하지 못한 것이 팬의 한사람으로써 가슴 아프다.
 

다나카 마리 주연 [아름다운 짐승]의 비디오 케이스
 

다나카 마리 주연 [빗속의 헤드라이트]의 포스터 / [섹스라이더/ 젖은 하이웨이]의 포스터
 
1970년 [미나 코로시노 스캿토]로 데뷔 했으며, 로망포르노에는 [섹스라이더/젖은 하이웨이]에 첫 주연 캐스팅 된다. 그 후 [빗속의 헤드라이트], [여자천국 씨앗 빌려줍니다], [러브 헌터/사랑의 사냥꾼] 등 22편의 로망포르노에 출연했다. 로망포르노 이후 타사 영화에도 출연했고, 비교적 최근의 브이 시네마 작업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출연한 많은 작품이 아직 비디오화 내지는 DVD화 되지 않고 있어 더욱 안타깝게 한다. 그녀는 결혼 후 연기에서 은퇴했다.
 
핑크 초창기의 마츠이 야스코, '핑크의 사유리'라고 불리던 데뷔 당시의 다니 나오미, 다니구치 쥬리 등의 몇 명을 제외하고는 핑크 영화계의 스타 여배우들은 대부분, 긴 붙임 속눈썹과 날카로운 눈매의 호스티스 타입이던가, 눈 동그랗게 뜨고 반항하는 불량소녀의 이미지를 많이 차용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오로지 '벗을 수 있다' 라는 용기만으로도 데뷔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미인이 극히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가타기리 유코와 다나카 마리의 '투 톱'은 초기 로망포르노가 이전의 핑크무비와 차별화 되고 나아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자리 매김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배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짐승]의 다나카 마리 스틸 컷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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