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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돈나 어을우동 (於乙于同=어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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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왜 빠굴을 할까? 
아이를 낳아야 하니까? 


아니다.
우리가 아는 씨받이나 씨내리 같은 여인들의 잔혹사가 이어지던 조선시대.. 그 전 먼 옛날부터 여성의 빠굴은 존재했었다. 

유교사상이 뿌리 박혔던 조선시대에 여성의 성을 집안으로 가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최초 권력자들이 여타 다른 시기와 달리 정당치 못한 과정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었던 탓이 컸다. 뭐 구린넘들이 오히려 깨끗함을 주장하듯 말이다. 그렇다면 당시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성을 즐기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여성은 누가 있을까? 

요녀라고 알고 있는 어을우동. 오늘은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 어을우동 (於乙于同) :::
 


사진 : 영화 '어우동' 중에서 - ㈜ 태흥영화 
 
성은 박(朴)씨 였으며, 당상관 박윤창의 자제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양갓집 규수답게 철저히 삼종 지도 교육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성장과정 동안에 일찍이 사회의 통념에 대한 남다른 문제의식을 싹 틔우게 된다. "왜 남자는 여자에 앞서는가?" 여인이 된 어을우동은 왕실집안 자제인 태강수(泰江守) 이동 - 그는 세종대왕의 형님인 효령대군의 조카이므로, 우동은 효령대군의 조카 며느리가 된 것 이다. - 의 아내가 되어, 훨씬 더 엄격한 여자 되기 교육을 받으며 왕가의 핏줄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를 강요 당했다. 그러나, 남편이란 작자는 밤 낮 외박을 일삼으며 음주와, 주색잡기로 맹위를 떨치는 천하의 난봉꾼이었다. 그리고, 난봉꾼을 남편으로 둔 아내의 공식적인 절차인 <애 못 낳는다고 구박당 하다가, 억울하게 소박맞는> 상황이 오기 전에, 맞바람을 피우고 자기 발로 시댁에서 나와 버린다. 

그 때는 시집에서 쫓겨나면 요즘 처럼 친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터… 그녀는 결국 어린 시절 친분이 있던 '소홍' 이란 여성이 하는 기생집에 생활을 의탁하게 되며 하층민들의 생활에 정을 붙여 간다. 미모가 출중했던 그녀는 8 촌 시아주버니 수산수 이기 (守山守 驥 - 정종의 고손자) 의 눈에 띄어 왕실과 사대부 들에 의해 계획적인 <보쌈>을 당하게 되고, 남편의 8촌 벌 되는 작자에게 강제로 겁탈을 당한다. 그리고는, 어차피 소박맞은 몸이니 자기의 정인(애인)으로 살아달라며 협박을 당하기 까지 한다. 

울화가 치민 우동은 목을 맬 결심도 하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보지만… 결국 남자는 다 도둑놈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 그 때부터 그녀는 어차피 썩어 질 몸 당당하게 즐기리라. 내 몸을 무기로 그들을 능멸해 보리라. 라는 결심을 하게 된다. 


 

마음을 바꾸어 먹고 본격적으로 잘나가는 기생이 된 우동은, 당대 내로라 하는 엘리트들만 선별하여 따 먹으며 이 들의 몸에 '어을우동' 이라는 문신을 팔 것을 요구하는데 … 그러한 특권도 아무나 누릴 수 없었던 것이, 그녀는 아무리 쟁쟁한 권력자라도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관계를 거부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그녀의 리스트에 올라 있던 남성으로는 육촌 시아주버니 이자 세종대왕의 손자인 방산수 난을 비롯해, 병조판서 어유소, 직제학 노공필, 아전인 오정연도 끼어 있으며 과거에 합격해 유가 길에 오르려다 그녀의 덫에 걸려 들어 팔자를 망친 홍찬 이라는 인물도 있었다 한다.

<여기서 잠깐, 질문을 던져 보자. 이런 여자를 놔 두고, 왜 그녀의 남편 이씨는 다른 여자들과 놀아난 것일까? 아내는 아내일 뿐 여자가 아니란 말인가 ? 우동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많은 남자들은 아내의 숨은 매력과 요부 기질을 가까이 있을 땐 미처 발견 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아니면, 여자들이 남편에겐 그런 기질을 발휘하지 않는 건가? (떠나고 나서 후회 말고, 있을 때 서로서로 최선을 다하자.) >

어을우동이 임금님 까지 따먹었다는 추문이 돌기 시작하자, 이에 당황한 임금은 사건의 전말을 보고 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고관 대작부터 왕실 종친 까지 우동에게 따 먹히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이내 알 게 되고… 사건은 조선 초기조정을 일대 파란으로 몰고 갈 정도로 확대된다. 어을우동 사건의 전말은 조선왕조 실록에도 아주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녀가 수 십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게 되기까지의 동기와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한다. (무척 보고 싶을 따름이다.) 


 


문초 과정에서, 우동이 함께 관계를 가졌다고 증언한 고위 관료들은 하나 같이 관계를 부인했다고 한다. 풍기문란으로 잡아들여 처벌해야 하는 상황에서 죄를 시인하는 남자들은 하나도 없는 상태…, 그 우스꽝 스러운 상황을 빨리 마무리 하고자, 종친들은 반역이 아닌 한 참형에 처할 수 없다는 조선 초기 법의 원칙을 깨고 결국 어우동을 참형에 처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어을우동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이르시길 "내 딸을 음부(淫婦)로 몰아 넣은 것은 억울하다. 사람이 누군들 정욕이 없겠는가? 남자에게 혹하는 것이 다만 너무 심할 뿐이다."하셨다. 나와 관계한 것이 내 음탕함 때문이라 하지만, 실은 남자들도 모두 음탕한 사람들이 아닌가? 나를 음부로 몰아세우고 유교사상에 찌들은 포장된 도덕성으로 사회를 감싸려고 한 너희 남성들이 오히려 깨끗지 못한 처사가 아니냔 말이다. 나는 효령대군의 아들인 태강수와 결혼하여 탄탄대로인 인생이 펼쳐졌던 여자다. 이를 거부하고 전혀 다른 인생을 선택한 사람이다. 나의 선택은 나의 의지로 이뤄진 것이다.

성문화가 훨씬 개방적인 지금까지도 남자와 여자의 문제. 즉, 둘이 맞아 떨어져야 이루어지는 빠굴의 문제에서는 법적 사항으로 귀결되면 항상 모든 죄는 적용은 여자 쪽에 우선 맞춰지고 있다. 하다못해 강간문제를 보라! 강간을 당해도 여전히 '여자가 행실이 어떠했으면 강간을 당했냐'는 시선을 피해자가 두려워하지 않느냔 말이다. 강제적인 힘에 억눌린 것도 억울한데 모든 죄의 원인이 여자 쪽에 있다는 관점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상당히 불합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녀간의 즐 빠굴. 책임을 지는 문제에 있어서는, 남자는 언제나 뒤로 빠진다. 어을우동이 즐 빠굴로 사형당할 시기에 같이 죄(?)를 지었던 남정네들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리하여 후세에 남은 것은 그녀의 음탕한 행동이며 그 음탕함이 천지에 남정네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불쌍한 남정네들은 잠시 홀려있었던 것 뿐이다 이건가? 책임의 문제에 있어서 그녀를 사형시킨 것도 남자였고 책임을 피해갔던 것도 남자다. 


 


그 시대에 빠굴의 의지, 자신의 욕구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고 행동하는 것이 거의 반란에 가까운 행동 이었을 텐데도 그녀는 비웃기라도 하듯이 자유로이 빠굴에 전념했다.

자신의 성 의지를 실현하고, 도덕적 허울보다 자유로움을 선택했던 그녀. 위풍당당 어을우동! 천하에 비겁하고 약한 남자들이여~ 차라리 꼬추를 띠 버리라~

다음 이 시간에 …
팍시러브
대한여성오르가즘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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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아크 2014-12-30 05:07:10
근데 한가지 궁금한것이 빠굴 이라는 표현이 표준어에요???
커플클럽예시카 2014-12-27 21:48:24
너무 멋잇고 잼 잇네요~^^
담아 갈게요~초큼만~^^
ppangka 2014-12-27 18:53:02
멋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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