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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적은 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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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스트 앤 퓨리어스>
 
얼마 전 후배 하나가 직장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더니만 드디어 이직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그녀는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했었지만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그녀가 사표를 내는 것을 만류했었다. 사실 우리는 모두 그녀에게 박차고 나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었다. 하지만 박차고 나오면 그 이후는? 우리 중 누구도 그녀의 취업을 대신 해 줄 수 없기에 우린 그저 참고 견디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지랄 같거나 말거나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은 목구멍의 풀칠과 직결되어 있다. 밥벌이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이직에 성공한 그녀는 여자들만 있는 회사에 취직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그녀가 가장 못 견뎌 했던 건 같은 여자 동료들이었다. 나는 같은 여직원들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어째서 여자들만 득시글거리는 직장에 취직을 했느냐고 물었다. 내 질문에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선배. 여자의 적이 여자일 때는 남자가 있을 때 그런 거야. 여자들끼리만 있으면 서로 적이고 뭐고 없이 그냥 평범한 직장이랑 똑같아.’
 
그렇다면 왜 남자가 있을 때 여자의 적은 여자가 될까?
 
‘왜냐면 핵심 권력은 남자들이 다 갖고 있고, 여자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정말 보잘 것 없이 작거든. 근데 우리는 그거나마 차지하기 위해서 피 터지게 싸워야 하니까.’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나 역시 결코 짧지 않은 직장 생활을 했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여직원끼리의 보이지 않는 암투였다. 하지만 나는 그걸 그냥 여자들이 이상해서, 혹은 여자의 적은 진짜 여자인가보다 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이면에 있는, 여자들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가끔 TV 프로에서는 능력 있는 여자 CEO 혹은 잘 나가는 여성 직장인들을 소개한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같은 조건의 남자를 다룰 때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능력 있는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게 아닌 그네들의 성별이 ‘여성’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니까 능력 있는 CEO 이기 이전에, 그녀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CEO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사실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이건 바꿔 말하면 그만큼 여자들이 성공할 확률은 낮으며, 따라서 그 성공은 굉장히 이례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남녀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직장에서 똑같은 능력을 갖췄을 경우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게 사실이다. (더 정확하게는 능력 있는 여자보다 차라리 조금 못하지만, 남자에게 기회를 주는 회사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에서 여자가 오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노력만 하면 되느라 하기에는 그녀들이게 주어진 기회가 너무나 적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은 여자들의 동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적을 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괜히 여자들은 속이 좁은 족속이라서, 아니면 생겨먹기를 그렇게 생겨먹어서 서로 질투를 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에게도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적게 주어진 기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지 않은 것. 그거나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생각이다. 그들이 선심 쓰듯 던져주는 기회와 권력들. 사실은 우리도 능력에 따라 절반을 가졌어야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다만 그나마 있는 것이라도 빼앗길까 봐, 그것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을 뿐이다. 애초에 문제 자체는 우리가 만든 것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거기에 대해 어떤 반박도 없이 상황을 지속시켜 왔다는 것에는 우리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무조건 참으며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그들이 알아서 우리에게 자리를 주기를, 또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누렸어야 하는 것을 돌려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가진 자는, 절대 가지지 못한 자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주인이 배가 부르면 종의 배가 곯는 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법이다. 이미 기득권을 가진 이들에게 그렇지 못한 이들을 배려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다. 그건 분명 우리가 쟁취해야 할 부분이지 그들이 거저 주기를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여자의 적이 여자였다면 지금 내 후배는 그런 여자들밖에 없는 회사에 들어가 현대판 여인천하를 찍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날 자신이 얼마나 불쌍하게 직장생활을 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녀들이 서로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나마 주어진 것들을 빼앗길 수는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겨누었던 화살을 만약 다 함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에 힘을 모았다면 지금과 똑같을까? 여전히 우리는 기회를 박탈당한 채 그나마 조금이라도 갖게 된 힘을 서로 가지기 위해 그렇게 피 터지는 전쟁을 치러야 했을까? 직장생활을 하는 많은 후배가 직장에서 커피를 타는 것을, 또 일과 상관없는 자잘한 심부름들이 싫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분노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런 일을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아무리 그런 일을 하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춘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그들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 그 작은 일에는 자존심 상해 하면서 정작 큰일에는 아무 의심도 질문도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다 참는데 자기 혼자 체제에 반발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짓이다. 그건 단 한 사람이 피켓 들고 투쟁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다만 생각은 해야 한다. 우리에게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그 자리에 올라갈 기회, 그리고 동등하게 노력할 정당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언제까지나 시집가면 그만둘 인간들, 사무실의 꽃 정도로 만족할 것인가.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며 더러워서라도 내가 결혼만 하면 이놈의 회사 때려치운다고 울분을 토한다고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지나온 그 자리를 우리의 동생들 또 우리의 딸들도 똑같이 되풀이할 뿐이다.
 
여자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남자들의 변명 중 가장 많은 것이 여자들은 결혼하거나 임신을 하면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다. 이건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먼저 생각해 볼 것이 그녀들이 단지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직장을 그만두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여자가 결혼을 해서 남편에게 자신의 밥벌이를 해결시키기 전까지만 직장을 다니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마 직장 생활이 지겨워서 결혼하면 셔터맨이 되고 싶다고 꿈꾸는 남자들이 비율과 비슷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결혼한 여성이 아이를 갖게 되면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 대기업이나 관공서, 은행 같은 곳에는 가능하지만, 대부분 회사에서는 육아 휴직 같은 걸 내려면 아예 사표를 쓰게 한다. 전부 다 같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인데 마치 여자의 잘못 혹은 여자의 한계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알다시피 결혼을 해도 우린 남자와 하고 아이를 낳아도 남자와 함께 낳는다. 그런데 어째서 그걸 여자들의 한계를 규정짓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여자들이 그런 오해와 불공평한 처사에 대항하기 위해 전부 결혼이나 아이 낳기를 거부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리 위에서 눌러도 여자들은 꿋꿋하게 결혼하고 또 애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줄어들고 있는 출산율과 높아져가고 있는 여성들의 출산연령을 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함께 책임져줘야 할 문제를 여자들에게만 떠넘긴 결과 이제 여자들은 아예 그 일을 하지 않거나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것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위치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 여자들은 되도록 결혼을 늦게 하려고 한다. 결혼과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이 여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크면 클수록 결혼을 점점 더 유보하게 된다. 물론 반드시 모든 사람이 다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 자체의 문제가 아닌, 결혼으로 인해 내가 받게 될 불이익 때문에 결혼을 못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걸 지금 이 사회에서는 골드미스네 뭐네 하며 열심히 포장 중이다. 그래야 그녀들이 그렇게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현 제도와 여러 사회 상황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닌. 단지 그녀들 스스로 결혼을 하기 싫어 안 하는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남녀평등을 외치는 것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아무런 다름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하지만 기회를 잡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또 노력해서 뭔가를 이루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게 여자이건 남자이건 똑같이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지금의 회사들은 여자들에게 단지 결혼 전 혹은 젊을 때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자리만을 주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올라갈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이러고도 여자들에게 안일한 족속들이라 결혼하면 다 그만두니까 키워줄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지옥 같던 직장 생활에서 벗어난 것이 내 개인사에서 거의 축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자리들. 그리고 그나마 주어진 약간의 권력에 여자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고 중상모략을 해야만 했던 시간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나처럼 프리랜서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제발이지 그녀들에게도 기회를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여자가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첫 번째,  여자의 가장 큰 적은 여자임을 인정하자. 따위의 헛소리가, 더는 우리의 어린 친구들에게 경전처럼 읽히는 날은 없었으면 좋겠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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