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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 <이갈리아의 딸들> - '남성 혐오'를 통해 '여성 혐오'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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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범한 이갈리아 가정의 아침
 
신문을 보고 있던 엄마에게 아들이 투정을 부린다.

"나는 뱃사람이 될 거에요!"
 
그러자 신문을 보고 있던 엄마가 아들에게 '근엄하게' 말한다. "요 녀석아 남자는 집에서 애를 봐야지."
 
여동생이 오빠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놀린다.
 
"바다에 가는 남자들은 창남이나 동성애자뿐이야!"
 
욕실에서 수염을 손질하던 아빠가 뛰쳐나오며 여동생에게 외친다.
 
"오빠의 머리카락 약한 거 알잖아!"
 
그 말을 들은 여동생이 이죽거리며 말한다.
 
"머리만 약한가, 다 약하지."
 
이게 대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이들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갈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야 한다. 1977년 노르웨이의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Gerd Brantenberg)는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책을 펴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이갈리아에 대한, 이갈리아에 의한 이야기다. 출간 후 파장은 상당했다. 이른바 '논쟁적 작품'으로 영어로 번역돼 상당한 판매고를 올렸고, 유럽에서는 연극으로도 공연되기도 했다(한국에서는 1996년에 황금가지에서 출판됐다).
 
 
Welcome to the Egalia!
 

영화 <마틸다>
 
이갈리아는 여러 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르다. 예컨대 이 세계에서 인기 있는 남성상은 브래드 피트보다는 대니 드 비토이다(그것도 치마를 입고, 탈모를 가리기 위한 가발을 썼으며, 턱수염을 보기 좋게 땋아 리본을 달고, 꽃무늬 핸드백과 페니스를 받치기 위해 입어야하는 ‘폐호’라는 일종의 남성용 브래지어를 차고 있는 모습의)
 
이갈리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차이는 단순한 문화의 차이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차이다. 그곳에서는 지금 우리 세계에서의 남-여의 성역할이 정반대로 뒤바뀌어있을 뿐 아니라, 세계를 이루는 ‘상징’과 ‘언어’들도 뒤바뀌어 있다. 그곳에서 여성은 움(Wom)이라 불리며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부양한다. 한편 남성은 맨움(Manwom)이라 불리며 가사와 육아를 전담한다. 그나마도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부성보호’라는 권리를 얻어야 하는데 그건 아이를 낳은 움이 그 아이의 아버지로 자신을 지목해 줄때만 가능하다. 부성보호를 받지 못하는 맨움들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게 된다.
 
섹스 역시, 그 중심은 페니스가 아닌 클리토리스이며, 삽입섹스를 통한 '질오르가즘' 따위는커녕, 이제 당연하다는 듯 작은 페니스가 각광을 받는다. 맨움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피임약을 복용해야 하며, 복용하지 않은 사실을 숨기고 움을 임신시켰을 때에는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물론, 큰 액수의 벌금형을 부과 받는다(참으로 인간적인 것이, 할부가 가능하다).
 
이 외에도 이갈리아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특히 남자들의 경우에는 생각도 하기 싫은) 것들로 가득하다. 만약 멋모르고 이갈리아에 발을 들여놓은 남자가 평소대로 행동하다가는 옛날 이갈리아에서 맨움들을 길들이기 위해 사용했다는 남근가위(어디다 썼는지는 상상에 맡긴다)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바다.
 
 
‘맨움해방운동’ 일대기
 
이 책의 주인공인 페트로니우스 브램은 복지부장관인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맨움이다. 그는 이갈리아의 주요 산업인 어업의 무대이자, 움들의 전유물인 바다에 나가는 게 꿈이다. 이것 때문에 부모님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그는 '메이드맨 무도회'(움이 맨움을 선택해서 메이드맨의 방이라는 곳에 데려가 섹스를 하는 행사)에서 만난 그로라는 움과의 하룻밤을 잊지 못한다. 그는 여운을 지우려 바닷가를 서성이다가 3명의 움에게 강간 당하고, 그것이 알려지면 ‘부성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것 이라는 엄마의 말에 따라 경찰에도 알리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재회한 그로는 계급투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파크스주의자’ 가 되어있었고, 그의 정식 연인이 된 페트로니우스는 그로의 도움을 받아 친구들과 함께 ‘맨움해방전선’을 조직한다. 그들은 노총각 교사인 올모스의 집에 자리를 잡고 차별받는 맨움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토론하는 한편, 맨움의 역사, 혹은 맨움의 시각으로 보는 역사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움 중심의 체계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그들은 맨움들이 얼마나 역사로부터, 공적인 것들로부터, 생명으로부터 소외돼 왔는지 깨닫고 전율한다. 움들이 지배하는 체계에 왜 아무런 의심도 없이 적응해왔는가. 계급투쟁만을 주요한 모순으로, 맨움해방을 부차적인 것으로 보는 스파크스주의와도 결별한다. 그들은 의회에 사보타주하고, 길거리에서 자신들의 폐호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행하고, 동성애에서 섹스의 신기원(반드시 움이 없어도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을 발견한다.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난폭해진 연인에게 맞고 돌아온 어느 날, 페트로니우스는 아버지를 만난다. 모든 것을 감수하고, 견뎌내며 참고 살아왔던 아버지. 자신의 꿈이 있었음에도 가난과 자신이 맨움이라는 것 때문에 그것을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 그런데도 여전히 꿈을 버리지 않고 사는 '살아있는 인간(Huwom)'으로서의 아버지는 페트로니우스에게 영감과 힘을 준다.
 
그는 직접 겪은 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의 아들들>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 책은 가부장제라는 가상의 체계 안에서 뒤바뀐 움과 맨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 책의 내용들은 수많은 움 비평가들에 의해 혹독한 비판을 받지만 동시에 수많은 맨움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희망, 용기를 제공한다.
 
마침내 페트로니우스는 다시금 어머니와 대면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누리는 권력을 인정한다. 하지만 다시 그녀는 힘주어 말한다.
 
“맨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땅의 생명이 죽어 없어질 거야. 만일 맨움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만일 맨움이 제지되지 않는다면, 만일 그들이 교화되지 않는다면, 만일 그들이 '그들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생명은 소멸할 거야..”
 
 
‘물구나무’세우기
 
보다시피 <이갈리아의 딸들>은 다름 아닌 ‘여성해방운동’의 패러디다. 노동운동/신좌파운동과 여성운동의 갈등,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브래지어 태우기 퍼포먼스, 급진주의 진영의 레즈비어니즘 등 페미니즘운동의 다양한 역사들이 이 소설 속에서 거꾸로 세워진 채 보여진다. 이 책은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통쾌하고 수많은 남성들에게는 공포스러운 묘사들로 그득하다.
 
이 소설 속 이른바 ‘모권제’는 나름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가부장제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근거들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가부장제보다 더 근거 있어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이갈리아는 우리 사회에서 천대받고 있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의가 바탕에 깔려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는 건 아니다. 이갈리아는 이미 그자체로 억압적이며, 성차별적인 세계다. 이런 세계를 대안, 혹은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이 책은 훌륭하고, 불온한 상상력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1과 2의 정치학 - 사회를 보는 시선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상징을 돌이켜보자. 왜 Man이고 Wo-man인가? 왜 인간은 Hu-man이고, 인류는 Man-kind인가? 왜 영웅은 He-ro이고, 왕국은 통치자의 성별과 상관없이 King-dom인가? 머리 아프게 영어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왜 여남이 아니고 ‘남녀’인가? 왜 주민등록번호의 1은 남자고 2는 여자인가? 우리는 왜 아빠ㅡ아기가 아닌 엄마ㅡ아기의 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가?
 
이른바 객관적, 혹은 중립적이라고 말해지는 수많은 것들을 자세히 뜯어보자. 아마도 많은 부분에서 성별화의 혐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징 체계, 특히나 언어는 단순히 말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남성의 성을 가지고 있는 아무개씨들에 의해서 주창되고, 이어져 내려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역사에서도, 종교에서도, 인간의 모든 문화 속에서, 여성의 이름과, 행위와, 흔적들은 많은 부분 지워지고, 불태워지고, 사라졌다.
 
‘페미니즘(Femin-ism)은 휴머니즘(Hu-man-ism)이 돼야 한다.’는 고매한 주장이 유행이다. 그러나 그 Hu-man은 대체 누구인가? 과거 신좌파 운동의 한 부류였던 흑인민권운동에서 백인여성운동가들이 겪어야 했던 패러독스를 보라. 흑인 남성들은 자신과 섹스를 한 백인여성을 ‘걸레’로 취급했으며, 자신과 섹스를 하지 않는 여성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몰아세웠다. 평화운동, 반전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 Hu-man-ism을 내건 수많은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결국 그들이 말하는 Hu-man안에 Woman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가부장제 안에서는 그것에 대한 진심어린 고려를 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운동도 여성을 2등 시민으로, Not-Hu-man으로 취급할 수 있는 충분한 꺼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물며 운동이 이런데, 운동이 아닌 영역에서야 오죽하겠는가.
 
<이갈리아의 딸들>은 우리 사회에 넓고 깊게 퍼져있는 가부장제를 보는 데에 매우 좋은 ‘거울’이 되어준다. 우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편안하게,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수많은 것들은,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는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생각해보지 않고,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수많은 남성학자들이 ‘역사의 종언’이라는 테제를 들먹였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도 정말 역사가 끝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무엇이 현실적이고, 무엇이 허무맹랑한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수많은 남성학자들 역시 자신들이 현실적이라 말한 것이 폐기되고, 허무맹랑한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그 수많은 것들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지금 이대로의 우리여야만 하는가? 그저 이렇게 흘러왔기 때문에 그것이 ‘진리’라 믿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이갈리아의 딸들>.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내 눈에 얼마나 엄청난 색안경이 끼워져 있었는지에 대해 전율해보길 바란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해야 하는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을 결정해 버리는, 나의 삶의 자유를 짓누르고 있는 가부장제 앞에서는 무덤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를, 그리고 ‘변화와 화해’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차선로가 143.5센티미터 혹은 4피트 8과 2분의 1인치 떨어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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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고래 2018-03-03 17:13:48
잘 읽고 많은 생각 거리를 가지고 갑니다!
sofucku 2016-07-29 17:12:23
저번부터 읽어보려고 했던 책인데 더 읽고 싶어졌네요 여자라면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이즈 2016-06-03 16:00:41
오 읽어바야게따!!!
부르르_레오/ 부르르에서 쓴글입니다 ㅎㅎ
쭈쭈걸 2015-08-05 15:20:54
이건 꼭 봐야겠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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