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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그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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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핏>

강원도에 출장 갈 일이 생겼었다.

이른 퇴근을 하고 숙소를 나와 혼자 바닷가에 가서 바람이나 쐴 겸 바닷가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어떤 여인이 혼자 앉아 쓸쓸히 바다를 바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랗게 물들인 짧은 커트머리 여인. 그 시간에 혼자 바다를 바라 보고 있다는 것은 필시 실연을 당했고 복잡하고 서러운 마음에 멀리 바다를 보러 혼자 여행을 왔으리라 확신했다. 실연당하고 긴 머리를 자르고 염색까지 한 다음 '그 녀석'을 잊기 위해 혼자 바다를 찾아 왔다고 나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혹시라도 나쁜 사람이 저 여인을 못되게 하면 어쩌나 하는 어설픈 신사(?)도 정신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나는 편의점에서 따뜻한 캔 커피와 손수건을 하나 사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 옆에 털썩 앉아서는 손수건과 캔 커피를 전해 주며, 말을 걸었다. 
"오늘은 파도가 그래도 잔잔한 편이네요.."
그녀는 흠칫 놀라면서 내가 전해주는 캔 커피와 손수건에 시선을 고정 시켰다. 
"아...ㅎㅎ"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더니, 
"잘못 짚으셨네요..ㅎㅎㅎ... 저 실연당하고 온 거 아니에요"
속으로는 약간 당황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살짝 웃었다는 게 그나마 잠시 위안이 되었다.
"아~ 그럼 다행이네요.. 난 또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암튼 저녁이 되니까 약간 쌀쌀한데 따뜻하게 이 커피나 한잔 하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살짝 미소 지으며 그녀가 대답했다. 완강하게 나를 거부하거나 나에 대한 경계심이 그리 큰 것 같지 않아 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럼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
"아. 그냥. 직업상..여기 저기 둘러 보러 왔어요."
그녀 옆에 있는 가방에서 커다란 카메라가 보였다. 
"사진 작가시구나...."
"뭐.. 비슷하기도 하고.."
그녀는 자신이 글을 쓰는 작가라고만 말을 했고, 글이 갑자기 막혀서 머리도 식힐 겸, 무작정 카메라 하나 들고 차를 몰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녀는 종아리까지 오는 독특하게 생긴 부츠를 신고, 페인트 방울이 떨어진 듯한 알 수 없는 패턴이 있는 긴 청 반바지에 퀼트장식이 있는 듯한 약간 큰 조끼에 안에 무늬가 큰 헐렁한 남방을 입었고, 가죽목걸이와 팔찌들이 여럿 장식하고 있는 보헤미안스타일로 옷을 입고 있었다. 

문신한 눈썹과 큰 눈, 작은 입술이 제법 조화롭게 느껴졌다. 그녀는 나에게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나는 서울에서 의료장비 관련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지금은 출장을 나왔다고 이야기 했다. 

"오늘 뭐 하실 거에요? 특별한 계획 없으면 저랑 같이 회 드실래요?"
"회요???" 

그녀가 살짝 놀라며 약간은 비웃는 한 표정을 지었다. 관광지에 와서 비싸디 비싼 회나 먹고 술이나 마시러 다니는 평범함으로 자신을 꼬시려는 추파가 못마땅했는지. 그녀는 살짝 실망한 듯한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삐쭉거렸다. 나는 무안하기도 하고 잠시 창피한 생각도 들고, 다음 이야기를 하기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문득 아까 편의점에서 폭죽을 팔던 생각이 났다.

나는 슬쩍 일어나 폭죽을 사기 위해 모래사장을 걸어나오며 힐끔 힐끔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걸어가는 나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말없이 바다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몇 개의 폭죽을 사고 이번엔 그녀의 반대쪽 옆에 앉았다.
"또 왔어요?"
실망 한 건지 반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가 물었다.

나는 말없이 라이터를 꺼내 폭죽에 불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폭죽을 터트렸다. 불이 붙은 폭죽 하나를 그녀 손에 쥐어주자 처음엔 거절 하던 그녀는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최대한 팔을 뻗어 폭죽을 하늘을 향해 가리켰다. 아직 어두운 해변의 밤 하늘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어스름한 초저녁 해변 하늘에 썰렁한 폭죽이 말없이 터져 나갔다.

피육 피육 펑..펑...피육 피육...

갑자기 그녀는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썰렁한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는 장면... 천진난만하게 폭죽을 들고 있는 내 모습도 함께 그녀는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댔다.  

"어린애 같네요. 귀엽기도 하고...ㅎ"
그녀가 살짝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나도 환하게 웃어 보이며.
"자 그럼 배고픈데 밥 먹으러 가시죠. 회 말고도 먹을게 많을 것 같은데, 같이 저녁 먹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 팔을 약간 반 강제로 잡아 당겼다. 그녀도 못이기는 척 모래를 털며 일어났다. 우리 두 사람은 털레 털레 걸어 나와 상가들을 살펴 보았다. 간간히 호객행위를 하는 진한 화장이 떠 보이는 아줌마가 큰 눈을 부릅뜨고, 몽땅 몇 만원에 가져가라며 열심히 목청을 높였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마땅히 먹을 것도 없고, 저 멀리 보이는 돈까스 집에 가자고 하기도 웃기는 상황이고 잠깐 망설이다가 나는 길에서 고민하지 말고 들어가서 고민하자며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겼다. 식당에 들어가자 마자 종업원은 능숙하게 비닐을 펼치고는 언제 담았는지 모를 밑반찬들을 깔기 시작했다. 메뉴를 둘러봐도, 마땅한 메뉴는 보이지 않아, 고민을 하고 있는데,
"차라리 그냥 회를 먹죠" 
체념한 듯 그녀가 먼저 제안을 했다. 아까 본 회를 주문 하고, 술은 소주1병과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나는 소맥을 마시려고 했고 그녀에게도 권하자 그녀는 운전 때문에 그냥 맥주나 한잔 한다고 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나는 아까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며 몸을 앞으로 숙여 그녀의 카메라 액정을 살폈다. 폭죽사진과 해맑게 웃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모습도 보이고 카메라가 좋은 건지 사진이 정말 잘 나온 듯 했다. 주문한 회와 술들이 나오고 서로 한잔씩 따라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가끔 에세이를 쓰기도 하고, 잡지에 기고도 하며, 여행에 관련한 칼럼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연신 "우와 대단하다. 정말 멋지네요."를 연발하며 그녀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잠시 우쭐했는지, 친한 동료들과 전시회를 한다고도 하고, 숨겨진 여행지를 찾아가는 기쁨도 크다며 자신의 블로그도 있으니 방문해 달라며 명함을 전해 주었다.

그녀가 맥주를 반 잔도 안 마실 동안 나는 알 수 없는 흥분과 기대감으로 술을 연거푸 마시기 시작했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듯한 그녀만의 포스에 기가 죽어서 술기운에라도 기대고 싶었는지. 썰렁한 휴가지에서 느껴보는 일탈감이었는지, 그날따라 술이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흘러 들었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나는 그녀가 술은 안 마시고 보고만 있는 것이 못마땅해 한잔 하라고 계속 권했다. 취하게 해서 어떻게 해보려는 계획보다는 정말 같이 한잔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깔짝 깔짝거리며 맥주를 한 두 잔정도 마신 것 같은데, 둘이서 소주 한 병에 맥주 두 병을 마셨다. 술도 안 마시는 그녀 앞에서 계속 마시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우리는 이미 어두워진 해변으로 다시 나왔다. 

깜깜해진 하늘을 보자 다시 폭죽을 터뜨리고 싶었다. 편의점에서 폭죽과 커피를 사서 바닷가 모래사장 끝에 서서 하늘을 향해 폭죽을 발사했다. 아까보다 더 많은 사 한참을 터뜨렸다. 그녀는 또다시 카메라를 꺼내 들고는 계속해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내 모습도 파바바박 찍어댔다. 사진 찍고 카메라액정을 보던 그녀가 어떤 사진을 보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 눈이 깜빡이는 찰나에 찍혔는지 반쯤 눈이 감기고 술기운에 광대뼈가 발갛게 물든 내 모습이 바보처럼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연신 이거 대박이라며 나중에 꼭 현상해서 보내 준다고 나를 놀려댔다. 그렇게 10대 청소년이 여자친구에게 해 주는 어설픈 이벤트마냥 폭죽놀이를 하고는 잠시 산책을 하기 위해 걸었다. 길게 놓여진 바닷가 사이로 시멘트포장길이 나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난 그녀의 손이라도 잡아 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언제 올라 가실 거에요?"
내가 물었다.
"글쎄요. 오늘 올라 가야죠. 여기서 잘 것도 아니고..."
나는 내일 뭐 특별한 계획 없으면 여기서 자고 내일 올라 가라고 말했다. 

"응큼하기는...ㅎㅎ"

그녀가 받아쳤다.

"OO씨는 언제 올라가요?"
"저는 내일 점심때 쯤 올라 갈 예정입니다."
"아............ㅎ"

그렇게 말없이 해변을 걷다 보니 가로등이 끝나는 지점까지 왔다. 살짝 어두운 곳에 다다르자 나는 흥분 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대로 헤어지기가 정말 아쉽고, 이 기회가 아니면 영영 이런 기회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멀리 상가들 불빛이 흐릿하게 보였다. 너무 어두운 곳에 다다르자 그녀는 그만 돌아가자며 발길을 돌리려 했다.

나는 술기운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고개를 숙이고 그녀 머리를 잡았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내 입술이 살짝 닿자마자 나를 뿌리치고는 뒤 돌아 걸어 갔다.

'쩝...긁적 긁적..'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말없이 다가갔다. 그녀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OO씨 술 취했어요? 실수하시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언제 봤다고..보아하니 나이도 나보다 어린것 같은데.. 읍!"
고결한s
이상과 현실의 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자유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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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미 2014-11-17 13:47:46
읍!! 이렇게 끝내실꺼예욧  >.<
섹강 2014-11-16 00:41:30
막 재밋어 질려고하는데.... 다음 편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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