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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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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의무처럼 달려온 일상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나서, 봄은 다시 돌아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옷을 다 적셔버리는 습한 여름과, 왔었나 싶을 정도로 짧았던 가을, 그리고 이제는 하얀 쓰레기로 보일 정도로 지긋지긋 했던 폭설의 겨울이 가고, 데자뷰처럼 같은 봄 풍경은 약속한 시기에 다시 찾아왔다.
 
좋지도 않은 머리로 공부에 매진한 보람이 있었는지, 나는 비록 1지망은 아니었지만 목표로 하는 대학들 중 하나에 합격했다. 한국에서는 미련없이 대학교 자퇴를 하고 일본으로 왔는데, 다시 대학 합격 통지서를 보니 기분이 새로웠다.
 
나는 그제서야, 그 동안에는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던 일본의 봄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어두운 방에 있다가 밖으로 나갔을 때 햇볕의 눈부심이 몇 배나 더 강하게 느껴지듯, 목표를 이루기 전에는 정말 아무런 여유 없이 살았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 보았다. 일본은 봄에 어디를 가도 벚꽃을 볼 수 있었다. 인도 식당에서 카레를 찾는 것 보다 쉬웠다. 겨우내 달고 살던 두꺼운 외투를 벗고 가벼워진 차림으로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벚꽃길을 걷는 연인들. 하나 둘 씩 시작하는 지역 축제들과 딱 그 시기에만 거리를 가득 메우는 포장마차의 먹거리들까지. 이제는 나도 즐길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봄을 만끽했다.
 
랭귀지 입학 후 1년 만에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나는 어학원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 단 김선생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있어서 ‘적어도 2년 동안은 수업료를 내야 하는 장기 유학생’ 이었고, 그는 학생이 열심히 해서 1년만에 대학을 간 것을 축하하기 보다는 1년치 수업료를 더 받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어찌 보면 그것이 시작일 수도 있었다. 내가 들어간 학교는 졸업장 따기가 쉬운 학교는 아니었다. 이제는 일본 애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공부 끝이라기 보다는 더 빡센 공부를 위해 한숨 돌릴 시기라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그럼 이 시기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문득 나를 돌아보니, 우선 운동이 급선무 인 것 같았다. 물론 신나게 노는 것도 할 것이지만, 원래 살이 잘 찌는 체질인데 앉아서 공부만 했으니 이 이상 방치 했다가는 대학교 전공을 스모로 바꿔야 할 판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스포츠센터 등록이었다. 일본은 정말 다양한 형태의 체인점들이 있는데, 내가 등록한 스포츠센터도 체인화 된 곳이었다. 헬스, 수영, 요가, 스쿼시 등등 다양한 과목들을 선택해서 운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샤워시설 및 사우나 시설도 꽤 괜찮았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수영과 헬스를 동시에 등록했다. 공부를 할 때 아껴 쓴 보람이 있었는지, 1년동안 알바 한 번 안하고 한국에서 벌어온 돈으로 생활을 했는데, 아직까지는 꽤 여유가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네.
 
“이곳에 성함이랑 주소 적어주세요.”
 
결제를 하기 전에, 스포츠센터의 여직원이 친절하게 웃으며 내게 신청서를 내밀었다. 내가 그것들을 기입하고 그녀에게 돌려주자, 그녀는 신청서를 보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실례지만 외국 분이신가요?”
“네. 한국입니다.”
“아아! 그러시구나. 성함이 일본 분이 아니어서……”
“아. 예.”
 
나는 그냥 무심하게 대꾸했고, 그녀는 컴퓨터로 무언가를 한참이나 적어내려갔다. 일본에 살면, 이런 사소한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 뭐든 빨리 처리하는 한국에 비해 일본은 무언가를 등록하거나, 신청하거나 할 때는 무조건적으로 이런 기다림이 동반된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은행에서 계좌와 체크카드를 만드는 데 거의 2주가 걸렸다.
 
“운동은 언제부터 하실 건가요?”
“내일부터 할 게요.”
“알겠습니다. 저희 센터는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그냥 지나가다가 보이길래요.”
“네. 감사합니다. 일본어 잘 하시네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내 무성의한 대답에도 싱글 거리며 나의 등록을 도왔다. 일본 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익숙해진 과잉 친절이라서,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몸매가 드러나는 요가복을 입고 있었고 대신 그 위로 조금 큰 오버사이즈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키가 작고 매우 마른 체형이었고, 그와 대조적으로 볼 살이 조금 있는, 얼굴은 전형적인 일본의 귀염상 여자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그 센터의 스탭이자 요가 강사였고, 훗날 내가 이 유학일기를 쓰게 된 가장 큰 모티브가 된다.
 
아무튼, 시기적으로 그 때가 그녀와의 첫 만남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을 뿐, 그녀와의 스토리는 지금부터 시작은 아니다. 그녀와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포츠 센터를 그만 두고 나서부터 시작이 되며, 그 때 당시에는 그녀와 나는 서로 한 번 보고 그냥 잊어버린 사람이었다.
 
마치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과였던 공부와 공부에 대한 압박을 잠시 내려 두고, 나는 처음으로 여유 있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알아보고, 혼자 가까운 곳에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호텔의 노천 온천에서 사케를 마시며 떨어지는 벚꽃을 구경하기도 하고, 맛집이라고 소문난 집에 가서 줄 서서 밥을 먹어 보기도 했다. 공부라는 압박을 빼면, 일본이 생각보다 즐길 거리가 많은 나라였다. 하지만.
 
심심했다.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냥 나 혼자 해 본 것이었는데, 같이할 누군가가 없으니까 지독한 현자 타임이 왔다. 친했던 어학원 친구들은 이미 다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일본의 다른 지역으로 가 버렸거나, 혹은 일본어 능력시험 준비를 하거나 해서 만날 수가 없었다.
 
뜻하지 않은 강제 왕따 체험을 며칠 해보고 나니 별 짓을 다하는 나를 발견했다. 뒷짐지고 동네 공원에 가기도 하고 떠돌이 고양이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동네 야구 배팅장에 가서 헛스윙만 하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 나는 다시 집에 들어와 공부할 때만 사용하던 노트북을 켰고, 일본 내에서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때 당시에는, 일본에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많은 채팅 사이트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스카이러브 이후로 채팅을 한 적이 없어서 호기심이 생겨 몇 곳을 가입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당시에도 채팅은 ‘고인물’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유저들도 별로 없었고, 어떻게든 유료회원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꼼수들이 난무했다.
 
예를 들면, 남자 회원이 가입을 하고 소개글을 올리면, 여자 회원들이 우수수 쪽지를 보낸다. 처음 몇 통의 쪽지는 답장이 가능한데, 두 세 통 보내고 나면 결제창으로 넘어간다. 남자 회원들은 거기에 몸이 달아 답장을 위해 결제를 진행하는데, 그 이후에는 약속이나 한 것 처럼 답장이 오지 않는다. 아주 당연하게도 그 여성회원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채팅 유저가 아닌 알바생 들이며, 일본에서는 그런 알바생을 ‘사쿠라’ 라고 표현한다.
 
그런 채팅 사이트들을 몇 개나 거르고 나서, 나는 그나마 정상적인 사이트를 하나 찾게 되었는데, 채팅 사이트라기 보다는 외국 친구들을 사귀는 사이트였다. 외국인들과 교류하고 싶은 일본인들을 위한 사이트였고, 당연하게도 일본인과 외국인 회원들이 공존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이트까지 뒤적거리나 하는 자괴감....은 개뿔  신나서 내 프로필을 등록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미야기 현에 살고 있구요남녀 국적 불문 누구나 환영합니다. 동네 친구 구함
 
참 재미있는 건, 사람사는 동네는 다 똑 같은 모양인지 대부분의 구인글에는 섹스를 원하는 구인글이 꼭 하나씩 끼어 있었다. 물론 노골적으로 나랑 할 사람? 이라고 쓰는 놈도 있었고, 고민이 있는데……나 자지가 좀 커. 내 고민 들어 줄래? 라며 변화구로 개수작을 부리는 놈들까지.
 
그 사이트 역시 쪽지를 주고 받기 위해서는 유료 결제를 해야만 했는데, 프로모션 기간이라 내가 가입할 당시에는 1개월 공짜였다. 한동안 보지를 않던 인터넷 속의 인간 군상들을 보고 있자니 재미가 있었다. 저마다 프로필에 사진을 올려 자신을 어필했고, 사이트의 가입 목적도 제각각이었다. 언어 교환을 위해 가입한 사람, 짝을 찾기 위해 가입한 사람, 아니면 그냥 나처럼 외로워서 동네 친구가 필요한 사람 등등.
 
내가 그녀에게 쪽지를 받은 것은, 나름 성의 있게 프로필을 작성하고 그 사이트에 대해 완전히 잊어 버렸을 때 쯤이었다. 웃긴 것이 슬슬 혼자 놀기에 익숙해져 가고 있을 때에 그 사이트가 즐겨찾기 되어 있었음이 생각났고, 들어 가자 마자 쪽지 도착 알람이 떴다.
 
-안녕하세요. 혹시 센다이 쪽에 계신가요?-
 
엇! 어떻게 알았지? 하다가, 나는 내 소개글에 거주지를 적는 란이 있음을 떠올렸다. 나는 그녀의 프로필을 클릭했고, 그녀의 국적은 일본이 아닌 대만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녀는 일본에 유학을 온, 나와 같은 유학생 이었다. 다만 워킹 홀리데이 중 이라고 써 있는 소개글에서 나와 온 목적이 다르구나 라는 것을 알았을 뿐.
 
- 네 맞아요. 근데 저 일본사람은 아닌데.-
 
보통 거기서 외국인들끼리 대화를 하지는 않는다. 목적은 다 다르지만, 외국인은 일본인을,일본인은 외국인을 사귀고 싶어하는 것이 대 전제이기 때문이다. 쪽지를 보내고 나서 얼마 후에 다시 그녀에게 회신이 왔다.
 
- 알고 있어요. 저 한국에 관심이 많거든요. 가까운 곳에 계시길래 반가워서 보내 봤어요. 대부분 동경이나 오사카 사람들이라서……-
 
그러고 보니, 일본 지역별로 카테고리가 나뉘어져 있었는데 내가 있는 지역의 구인글은 정말 상당히 적었다. 시시각각 글들이 올라오는 동경/오사카 지역에 비해, 최근 게시물이 두 달 전이라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의 출시 전이었고 – 물론 인터넷이 되는 휴대폰은 존재했지만 – 우리는 노트북으로 서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밥을 먹거나 씻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할 때 생기는 잠시의 딜레이는 있었지만 대화가 끊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유페이였다. 어느정도 친해지고 나서는 페이라고 불렀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여자 아이였고, 나중에 검색해 보고 안 것이지만 그녀가 다니던 학교는 대만에서 가장 명문인 학교였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대만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것에 비해 그녀는 한국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 보였다. 처음에는 드라마 등의 한류 컨텐츠의 영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처음 갔던 여행지가 한국이었고 굉장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금 아쉬운 것은, 그녀는 일본어가 유창하지 못했다. 대신에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는데, 처음에는 그녀의 서툰 일본어를 유추해서 듣는 식으로 대화를 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영어로 대화를 했다. 그녀에 비해 내 영어 실력은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 것 보다는 덜 답답했다.
 
- 오빠! 한국에서는 오빠라고 부른다면서?-
 
- 응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 이성에게 그렇게 부르지.-
 
외국인에게 오빠 소리를 들으니까 뭔가 신선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채팅을 하듯 쪽지로 이야기를 했고 급기야 그녀의 제안에 전화번호까지 교환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전 부터 대화가 이어져서 저녁 까지 쪽지를 주고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때 당시 나는 폴더 폰을 쓰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나는 자리에 편안히 누워 폴더폰을 귀에다 올려 놓고 세상에 둘도 없는 백수 포즈로 그녀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오빠 목소리 들으니까 신기하다. 목소리가 좋은 거 같아. ”
“그런 말 처음 듣는데. “
“아니야! 진짜야!”
 
사실 사진으로 본 그녀의 외모는 굉장히 얌전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외모가 못나고 예쁘고가 아니라, 그냥 얌전하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이미지랄까? 아주 잠시 그녀가 사쿠라가 아닐 까 생각을 한 내가 쪽팔렸다.
 
유페이는 센다이에 있는 한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어학원에서 MT를 갔었던 그 호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었다. 온천가 호텔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나름 있는 편이었고, 중국 고객들이 많아서 일어를 잘 못하는 그녀도 그 쪽에서 일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일주일에 4번 일을 했고 그날은 비번이라고 했다.
 
사진으로 본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녀는 참 밝고 명랑했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정석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말을 별로 하지 않으면 그녀는 내게 이런 저런 질문과 이야기를 하며 통화 중에 어색한 시간을 존재하지 않게 만들었다. 유페이도 나도 친구가 없이 타지에 있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라서 일까. 우리는 아주 쉽게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일본어를 잘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나는 전화상이긴 하지만 열심히 그녀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주 업무 이외에 부업으로 일본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일어를 가르치는 커리어의 첫 시작이 바로 유페이였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 시작은 미약하여 나도 처음에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엄청 버벅 거리긴 했었다.
 
우리는 며칠동안 그렇게 연락을 하고 지냈다. 그녀는 일을 하고, 나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운동이나 쇼핑, 그리고 알바 자리를 알아보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 와중에도 휴대폰 메일로 우리는 대화를 주고 받았고, 서로 잠시 짬이 날 때는 전화로 수다를 떨었다. 하루에 있었던 일등의 사소한 대화들부터, 자신의 연애 경험담이나 고민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물론 버스로 2~30분 거리였기 때문에, 언제 한 번 보자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하지만 누가 먼저 약속을 잡거나 하지는 않았고, 의외로 첫만남은 굉장히 충동적으로 이루어졌다.
 
“나 내일부터 이틀 연속으로 쉰다!”
“아 그래? 어째서?”
“저번에 다른 직원 대신에 일을 해줘서, 이번에 연이어서 쉬라고 했어. 물론 딱히 할 일은 없지만.”
“아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그 호텔에서 묵으면 싸게 가능한거야?”
“응! 직원가로 가능하지. 왜? 와보게?”
“응 가보고 싶은데?”
 
막 일본 온천의 기모찌함을 만끽하고 있었을 때라서- 정확히 말하자면 온천하면서 사케 마시는 것에- 사실 저 말은 반은 진심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자신의 직장에 대해 말해줬던 시점에 이미 검색을 해봤는데, 방에 노천 온천이 딸린 방도 있는, 꽤나 훌륭한 호텔이었다. 다만 건축년도가 좀 된 편이라서 생각보다 많이 비싸지는 않았고 평일에는 추가적으로 할인이 많이 들어갔다.
 
“아 그래? 그럼 평일은 얼마인데?”
“잠깐만…”
 
그녀는 대충 계산을 해보더니, 대답했다.
 
“일박에 6천엔 정도 될 거 같아. 조식 포함, 석식 불포함.”
 
사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 금액은 사기를 의심해 봐야 할 정도로 엄청나게 싼 가격이었다. 좁은 방에 침대하나 덜렁 있는 비즈니스 호텔도 만엔 가까이 하는 것이 일본이었다. 다만 동경 같은 지역이 아니었고, 그녀의 직원할인가도 꽤 크게 한 몫했다.
 
“그래? 방이 있는 날이 언젠데?”
“아……그건 나도 프론트에 물어 봐야 하는데 잠깐만.”
“아니 뭐 굳이 지금 당장 안 물어봐도……”
“아니야! 잠깐만 기다려!”
 
그녀는 마치 그 호텔의 영업사원이 된 것처럼 열심히 알아봐 주었다. 잠시 후 다시 그녀가 전화를 걸었고, 노천 온천이 딸린 방 중에 예약이 없는 방은 내일 딱 하나가 난 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예약 해 줄까?”
“내일?”
“응.”
“음……갑작스럽네.”
“왜? 내일 약속있어?”
“아니. 약속은 내년까지 없어.”
“뭐야 그게. 내 이름으로 예약 걸어줄까?”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 때 아니면 또 언제 해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니까 느낀 건데,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미루면 후회하는 일이 정말 많았다.
 
“그래. 한 번 가보지 뭐.”
“와와! 그럼 나 비번이니까 센다이 구경도 시켜줄 수 있어? 호텔에서만 있지는 않을 거잖아?”
 
그녀는 호텔 뒷편에 있는 직원용 숙소에서 지냈다. 그녀 말고도 같이 대만에서 온 동료가 있었고, 그녀와 같이 한 방을 썼다. 그녀는 매번 집에만 있어서 심심하다며 센다이 시내를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었고 나는 그녀에게 센다이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사실 언제 한 번 구경 시켜 줄게 정도의 공수표였는데 그 날이 갑작스럽게 내일이 된 것이다.
 
“그럼 오빠 우리 내일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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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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