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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이어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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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이브]

토요일... 토요일...
 
흡사 내가 고장 난 시계바늘 위에 올라타 영원히 반복되는 제자리 걸음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와 약속한 토요일 오전은 정말 미치도록 오지 않았다. 나는 나름대로 갑자기 바빠진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늘 내 시선은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핸드폰 속 달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리즈와 나는 평상시와 똑같이 연락을 했다. 그녀가 워낙 바빠서 계속 대화가 이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 일상을 고스란히 그녀에게 공유했고, 그녀 역시 간간히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았지만, 그런 사소한 일상의 대화에도 행복해하며, 또 오지 않는 토요일을 한숨으로 기다리며. 

-미안. 답이 늦었지? 이직한 지 얼마 안돼서 사실 배울 것도 많고 일도 많아서 ㅜㅜ-
 
그녀의 톡에 나는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이직을 하자 마자 회사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그녀가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이직에 대해 굉장히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잠깐, 이직?'

생각해보니까, 보통 이직이라 함은 굉장히 좋은 일이 아닌가? 연봉이 올라간다거나, 혹은 현 회사 혹은 업무에 맺혀 있던 응어리나 불만을 훌훌 털 기회니까. 물론 나 만나기 직전에 성사된 것이지만 제대로 된 축하를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게 많은 축하를 해주었는데 나도 뭐 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고민 끝에 시내로 나갔다. 하지만 무작정 나온 것이라 딱히 무엇을 줘야 할 지 감이 서지 않았다. 옷을 사기에는 내가 여자 옷에 대해 무지한 데다가, 화장품을 사자니 여자들은 각자 피부에 맞는 게 있으니 애매했다. 반지는 부담스럽겠지? 그럼 귀걸이? 목걸이? 이것도 좀 오바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가 평소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은근슬쩍 물어보물 그럴걸. 그냥 리즈가 이야기만 하면 해벌쭉 거리며 듣기 바빴던 내가 싫어졌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후드를 눌러쓰고, 주머니에 양 손을 찌른 채로 나는 여기저기 터덜터덜 걸었다. 백화점에 가도 그 수많은 아이템들 중에 무엇을 사야 그녀가 좋아할 까 하는 일말의 단서조차 없으니 그냥 서성거리며 헤매다가, 점원이 말을 걸면 뻘쭘한 표정으로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가만, 집에 있을 때는 책을 읽기도 한다고 했지?'
 
그녀에게 다이어리를 돌려줄 때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그녀가 했던 말이었다. 그래. 책이면 무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 시내에 있는 큰 서점으로 향했고 거기서 또 한 번 망설이기 시작했다. 
 
사주고 나니 이미 본 책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몇 개의 재밌고 흥미로운 책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직한 그녀가, 한가하고 약속이 없는 주말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 뭘까?
 
너무 가벼운 로맨스 소설은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거운 것을 다룬 책들도 일에 지친 그녀의 머리를 더 아프게 할 것 같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 위트가 있는 책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나는 류시화의 ‘인생우화’라는 책을 골라 사고는 집으로 가져왔다. 
 
“아차. 포장……”
 
집에 와서야 생각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비닐봉지에 덜렁 넣어서 이거 선물이야 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음악도 편곡으로 예쁘고 다듬듯이, 어떤 선물이든 마감작업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리즈에게 주는 선물인데. 
 
나는 또 열심히 집을 뒤져, 예전에 쓰고 남은 포장지를 찾아 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모의 생신선물로 뭔가를 사서 포장했던 것 같은데, 그땐 몰랐지만 지금 다시 보니 포장지가 굉장히 촌스러웠다. 그래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에 가위와 테이프를 가져와 끙끙대며 포장을 시작했다. 한참이나 뜯어내고 다시 감싸고를 반복한 끝에, 그래도 보기 흉할 정도가 아닌 상태가 되고 나서야 나는 그것을 작은 쇼핑백에 넣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서 나는 끼이익 하는 소리가 내 허리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제 하루도 남지 않은 시간. 내일이면 그녀를 볼 수 있구나. 
 
눈을 감으니까 리즈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를 본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녀가 앱을 통해 예약한 모텔 정보가 내 휴대폰에 카톡으로 와 있었다. 나는 그녀의 섹스를 기대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것일까? 전자라고 생각하기엔 내가 그녀의 몸은 가져도 마음은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서글퍼졌다. 하지만 딱 지금 처럼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딱 지금 만큼의 거리를 두더라도,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조금의 후회도 없다. 
 
-좋아하는 야동의 품번이 뭐야?-
 
그녀가 했던 질문을 생각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리즈는 가끔 엉뚱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겉으로 판단하면 똑똑하고, 예쁘고, 말도 잘하고 생각도 깊은데, 간혹 나를 빵 터지게 만드는 B급단어나 섹드립들이 그녀의 예쁜 입술에서 나올 때면 당황함과 동시에 그녀가 사랑스럽다. 그것도 아마 리즈의 매력일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카톡의 프로필 사진 속 그녀를 보고 있을 때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근데 야동 품번 언제 알려 줄 거야?- 
 
결국 난 잠을 조금 설쳤다. 푹 자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가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리즈를 생각하느라 제대로 잔 것은 겨우 3시간 정도였다. 나는 아침부터 샤워를 하고, 얼마 전에 새로 산 그나마 깔끔한 옷을 챙겨 입고, 리즈에게 줄 선물을 들고서 약속장소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예약한 모텔로. 
 
사실 우리 집에서도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때마침 날씨도 적당히 화창했고 적당히 쌀쌀했다. 몇 시간 밖에 자지 않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정신이 또렷했다. 그녀는 톡으로 곧 도착한다고 말해주었고, 나 역시 곧 도착한다고 답장을 했다. 
 
내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사처럼, 어떻게 그녀라는 선물 같은 사람이 내 삶에 나타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예쁘고, 귀엽고, 지적이고, 오픈된 마인드를 가졌지만 절대 쉽지 않은, 그리고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런 여자였다. 이미 나는 그녀에게 끌려가는 짝사랑에 푹 빠져 있었지만 상관 없었다. 그렇게 끌려가는 것도 싫지 않았다. 
 
모텔 앞에 도착하니 내 가슴이 또 터질 듯 뛰었다. 이미 한 번 해봤는데도, 이제 곧 그녀를 만지고 입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곧 멀리서 리즈의 모습이 보였고 그녀는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몸매라인이 드러나는, 몸에 붙는 얇은 니트에 청바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고, 그녀와 나는 자연스럽게 객실키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탔다. 
 
두번째 모텔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내 가슴이 뛰었다. 그 때는 급작스럽게 간 것이지만, 오늘은 며칠전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어서 더욱 더 심장이 뛴다. 좁은 공간에서 리즈와 눈이 마주쳤다. 반달 같이 동그랗고 촉촉한 눈과, 반짝 거리는 입술에 정신이 혼미했다. 내 얼굴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손을 뻗어 내 가슴에 손을 대었다. 
 
“헤에? 심장 뛰는 것 봐. 괜찮아?”
“응.. 아니.. 으응.....”
“뭐라는 거야.”
 
리즈는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정말 얼어 붙었다라는 말 외에는 내 모습을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내 팔을 잡아 끌었고, 쌀쌀한 아침 공기에 움츠러든 몸은 객실의 따뜻한 공기에 살짝 녹아 내렸다. 
 
“자기 먼저 씻어.”
 
샤워라면 오기전에 몇번이나 빡빡 했는데, 그녀의 말에 난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욕실로 들어갔다.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찬물로 샤워를 하고, 몇 번이나 양치질을 했다. 모텔 욕실의 거울속의 나는, 두번째 보는 것이지만 참 어색했다. 하하. 내가 모텔 화장실에 있다니. 그것도, 저렇게 꿈에서도 넘볼 수 없을 것 같은 여자와.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다시 옷을 입지 않고 큰 타올로 몸을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다가, 내가 나온 것을 보며 내게 다가와 말했다. 
 
“나두 얼른 씻고 올게.”
 
그녀가 내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더니, 쪼르르 욕실 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몸살에 걸렸을 때처럼 맥박 뛰는 소리가 내 귀에 쿵쿵하며 울려 퍼졌다. 
 
오늘따라 내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그녀가 샤워하는 물소리는 물론, 그녀가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입는 소리까지 정확하게 들렸다. 방 안은 리즈가 욕실에 들어가기 전에 조절해 놓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조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끽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긴장해서 물을 마시던 나는 숨이 턱 하고 막힐 뻔했다. 
 
리즈는 마치 짜잔!이라고 하는 듯한 표정과 포즈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 걸쳐진 것은 입고 왔었던 니트도, 욕실의 하얀 수건도 아닌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교복이었다. 
 
“아……으……나는……”
 
나는 급기야 말을 더듬거리고 제대로 숨을 못 쉬었다. 그녀가 입은 교복은 그냥 교복이 아니라, 정말 코스튬플레이를 위해 만들어진 야한 교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가르쳐준 야동 품번에 등장하는 의상이었다. 
 
“왜 그렇게 놀래요?”
 
그녀는 귀여운 콧소리까지 내면서 내게 다가왔다. 내 이성을 간신히 잡고 있던 어색한 기류와, 리즈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던, 늘 얼어 있던 내 몸이 단숨에 녹아버린 듯한 착각이 들며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게 다가오는 그녀를 잡아 당겨 껴 안고는 침대로 나뒹굴렀다. 
 
“흐응……”
 
그녀는 만족한 듯한 콧소리를 내었다. 마치 그녀는 소극적인 연애바보이자 경험없는 연애고자인 나를 적극적인 남자로 만들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 처럼 보였다. 나는 정신 없이 그녀의 목을 빨고, 귓볼을 핥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아프다며 나를 살짝 밀어냈지만, 나는 마치 잡아당긴 고무줄이 되돌아가듯 그녀의 몸에 더 찰싹 달라 붙었다. 내 손은 교복의 브라우스 부분으로 들어가, 속옷을 입지 않아 바로 손에 닿아 버리는 그녀의 젖꼭지를 쓰다듬었다. 꼬집듯 만지기도 하고, 손가락 사이에 끼우기도 했다. 키스를 하고 있는 내 입술 안으로 그녀의 신음소리가 밖으로 퍼지지 못한 채 메아리 쳤다. 
 
나는 입술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앞에 누워있는 그녀는 정말 덮치지 않고는 못 베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짧은 교복치마와 가슴이 보이는 브라우스. 그리고 그것에 걸맞는 묘한 표정의 그녀까지. 
 
-갑자기 뱀파이어로 변신한 듯한 모습이었어.-
 
그녀는 훗날 그 때의 내 모습에 대해 그렇게 평했다. 미친듯이 심장이 뛰던, 순진하게 까지 보이던 남자가 갑자기 눈빛부터 바뀌어 버렸다며 내게 말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나는 정말 살짝 내가 미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녀를 찍어 눌렀다. 
 
리즈는 정말 내 생각대로 요물이 틀림없었다. 야동의 벤치 마킹이라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리액션,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나에 대해 공부하고 온 것처럼 나를 자극했다. 나는 브라우스를 위로 끄집어 올려 가슴이 살짝 드러나게 하고는 목 마른 사람이 과즙을 빨아 먹듯이 그녀의 가슴을 탐닉했다. 내가 한창 젖꼭지를 빠는 동안 그녀는 내 목과 귀에 키스를 하며 아낌없이 신음 소리를 뱉었다. 
 
꾸며진 것이 아닌, 정말 흥분해서 나오는 듯한 그 소리는, 내가 야동에서 봤던 것과 정확히 일치할 정도로 똑같았다. 꾸밈이 없어서 더 흥분되는 그 하이톤의 소리에 몸이 부르르 떨렸고,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나는 몸에 두른 수건을 풀어 던져 버리고는 그녀의 위로 올라타려 했다. 
 
“잠깐만.”
 
그녀는 그런 나를 오히려 뒤로 밀쳐 눕게 했다. 그녀는 내 몸에 올라타서 부드럽게 미끄려졌고 이윽고 내 사타구니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잔뜩 발기된 그것을 입술 가득히 집어 삼켰다. 
 
앗! 하는 소리를 내며, 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 쥐었다가, 다시 쓰다듬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녀는 쉬지 않고 단단해진 페니스에 입을 맞추며, 혀로 기둥을 쓸어 내려갔다. 무언가를 맛있게 빨아 먹는 듯한 그녀의 머리가 위 아래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맞아. 이것도 내가 보내준 그 영상 품번에 있는 한 장면이다. 마치 너를 네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게. 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만 같은 쾌감이 들었다. 나는 손을 뻗어서 그녀의 가슴을 움켜 쥐다가, 이내 허리를 비틀어 그녀의 하반신 쪽으로 얼굴을 들이 밀었다. 내 허리는 심하게 꺾여 있었지만 거의 69자세와 흡사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그녀는 치마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놀란 듯했다. 내 혀가 클리토리스를 핥다가 그녀의 촉촉한 속살 안으로 파고 들 때 까지 그녀는 신음하며 즐기기 보다 내 것을 빨아주는 것에 더 열중했다. 본인의 쾌감보다 내 쾌감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듯이.
 
그녀는 정말 온 몸이 성감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다시 눕히고, 리즈의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지금 이순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라고, 말 대신 행동으로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 까지 나오는 사랑해 라는 말은 쉽게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아앗……”
 
입구에 살짝만 들어갔는데 그녀는 허리를 휘며 내 팔을 잡았다. 이미 충분히 젖어버린 그녀의 안으로 나는 그것을 강하게 밀어 넣었다. 
 
“아파……흑….”
 
그녀는 신음하듯 말했지만, 이윽고 허리를 흔들며 키스를 퍼붓는 내 목을 꽉 끌어 안았다. 리즈가 말한 대로 나는 정말 뱀파이어가 된 것 처럼 그녀의 목을 깨물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너무 하고 싶었어. 계속 생각났어.”
 
그녀는 대답대신 흐느끼는 듯한 신음소리로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더 해줘라는 듯이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 내 허리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치마를 위로 들추고, 훤히 드러난 그녀의 하반신을 내 눈에 세기면서,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그녀의 몸을 탐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내 등을 쓰다듬고, 다리로 내 허리를 강하게 조이기도 했다. 본능적으로, 나는 그녀의 다리를 모아 내 어깨에 걸쳤다. 아까보다 더 깊숙히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며 그녀의 신음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갑자기 짐승이 됐어……흐응……”
 
그녀의 입술을 만지기 위해 손가락을 대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내 손가락을 빨았다. 리즈의 몸짓과 소리, 그리고 체액으로 흠뻑 젖은 두 몸은 서로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기세로 딱 달라 붙었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녀의 리액션으로 보아서, 그녀는 위에서 누르듯이 깔고 뭉게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그렇게 할 때 리즈의 반응이 매우 격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리즈는 또 몸을 부르르 떨며 느끼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내가 계속 허리를 움직이자 정말 무아지경이 된 것처럼 내 팔을 잡고 파르르 떨었다. 나는 그녀의 양 손을 잡고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였고, 그녀는 이제 거의 우는 소리를 내며 이불을 살짝 깨물기까지 했다. 
 
그녀의 모습에 나도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경험이 없지만 안에 하면 안된다는 것 쯤은 나도 알았다. 나는 얼른 그녀의 몸에서 내 것을 빼내었고, 이윽고 또 한번 아득한 곳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며 나는 그녀의 몸 위로 아낌없이 사정했다. 
 
“하아……하아……”
 
방 안의 온도가 10도 정도는 올라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온 몸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아직도 마지막 쾌감을 즐기는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을 보며, 나 역시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티슈를 꺼내어 그녀의 몸을 닦아 주었고, 그녀는 또 나를 끌어 안았다. 
 
“나도 흥분해 버려서 봐줬지만. 다음부터는 콘돔 쓰기야.”
“응. 알겠어.”
 
뱀파이어에서 또 그녀의 순한양이 된 나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녀의 애액으로 젖어 있는 침대와, 그 위에 알몸으로 나를 안고 있는 그녀가 자극적이라 또 금방 흥분을 해버릴 것 같았다. 그제서야, 침대 옆에 놓아 두었던 그것의 정체가 생각났다. 
 
“맞다! 나 선물있어.”
“선물? 무슨 선물?”
“이직선물. 늦었지만.”
 
나는 손을 뻗어 그녀에게 허접한 포장을 한 내 선물을 내밀었고, 그녀는 그것을 보며 싱긋 웃으며 중얼 거렸다. 
 
“책인가? 모양이 책 같은데.”
 
단박에 맞춰 버린 그녀를 보며 내가 움찔하자, 그녀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연기하듯 말했다.
 
“어머? 이게 뭘까? 도저히 모르겠네~진짜 모르겠어!”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빵 터지고 말았지만, 그녀는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와! 책이다! 나 안 본 건데 고마워!”
“너무 별 것 없는 선물이라 미안해.”
“무슨 소리야. 이직 선물이라고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어딨어.”
 
그녀는 진심으로 좋아해주었다. 고가의 선물이 아닌데도 이렇게 좋아해주는 그녀를 보니, 나는 정말 그녀가 원한다면 장기라도 떼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사랑에 이렇게 미쳐가는 구나 싶었다. 
 
우린 각자 샤워를 하고 나와서 이불 속에 들어가 서로를 껴안았다. 마치 이 시간 만큼은 나도 그녀의 애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듯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거나, 뒤에서 그녀를 끌어 안고 가슴을 만지거나, 혹은 만질수록 기분이 좋은 그녀의 머리결을 쓰다듬기도 했다. 그녀는 나를 안고 입을 열었다. 
 
“고마워.”
“뭐가?”
“그냥 다.”
 
그녀는 눈을 감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해줘서."
 
왜 그 말에 마음이 시리듯 아픈지 이해는 되지 않았다. 
 
“네가 나 좋아해주는 마음이 정말 너무 또렷하게 느껴져서 고마워. 오랜만에 느껴지는 진심이라 너무 좋아. 고마워.”
 
남들이 보면 내가 바보 같을까? 절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여자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앞으로도 계속 그녀를 좋아하겠다고 결심하는 내모습이 말이다. 
 
“난 오히려 미안한데. 너를 많이 좋아해서.”
 
그건 내 진심이었다. 나 같은 놈이 널 좋아해서 미안해 라는, 바보 같지만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그런 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미안해야지. 니가 왜 미안해.”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말 없이 그녀를 쓰다듬었다. 헝클어진 이불, 한 쪽에 정리된 우리의 옷가지들. 그녀가 자신의 가방에 넣어둔 내가 둔 그 책의 표지. 그리고 바디샴푸 냄새가 세어나오는 욕실. 마지막으로 내 앞에 있는 눈부시게 예쁜 그녀를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계속 좋아해도 돼? 그냥 지금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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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카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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