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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권하는 사회 - 팅팅 부어버린 당신의 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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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콤한 인생]

술과 어른

내가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던 날. 종로에 몰려나온 수많은 인파들을 해치며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캔 맥주 하나를 샀던 기억이 난다. 카운터에 쭈뼛거리며 맥주를 내려놓고, ‘내 당당히 민쯩을 까리라!’라고 잔뜩 도사리고 있었으나, 정작 액면가판정에 의해 신분증 검사를 건너 뛰어버리는 테러를 당하고, 뭔가 복잡한 심경으로 맥주를 마셨던 그날. 물론 처음으로 먹어보는 맥주는 아니었지만, 합법적으로 마시는 첫 알콜이 주는 감회는 꽤나 묘한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술, 담배, 섹스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청소년기의 조기교육을 통해, 상기한 것들을 두루 섭렵하고 성인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법적인 제약이라는 것이 따르는 관계로, 온전한 향유를 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술은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성인문화’다. 이는 단순히 성인이 되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을 넘어서, 한국사회의 성인구성원들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큰 바람에, 매년 3월마다 술 마시다 죽은 대학 신입생들의 부고를 들어야 하는 것 같은, 크고 작은 사건, 사고와 부작용들을 야기하고 있다.
 
 
술 먹이는 사회

한국에서 술을 권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위와 같은 불행한 사건들에 대하여, ‘조절해야지’라는 말을 던지는 것은, 이러한 권하기의 관행과, 상황적, 문화적 고려를 무시한 무책임한 발언 일 수도 있다.

이른바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시작되면, 거의 필연적으로 수많은 술자리를 거쳐야 한다. 함께 술을 마신다는 것이, 유대감을 가장 빠르게 형성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관행에서, 그러한 술자리를 번번이 불참한다는 것은 비공식적인 관계들을 형성하는 것에 수많은 어려움을 야기한다. 더불어 공식적인 관계의 연장선상으로 반드시 참여해야할 술자리들 까지도 빈번히 생겨나는 지라, 술자리를 피한다는 것은 커다란 불이익을 감수 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화 [달콤한 인생]
 
그런데, 어렵게 찾아간 술자리를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수많은 술자리에서 종종 벌어지는 마시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은근한)압박이다. 잔이 비어 있으면, 당연하게 술을 따라주려는 움직임에서부터, 누군가가 건배를 외치고 나면 이어지는 ‘원샷’, 임금님의 ‘하사주’라도 되는 양 위압적으로 내려오는 ‘윗사람’들의 권유, 술 마시기를 벌칙으로 하는 각종 ‘게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는 ‘만나면 반갑다고 한잔’ 등등 때론 예의로, 때론 분위기를 흐리지 않기 위해, 때론 의도적으로 달려드는 수많은 술잔들을 피하기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매번 앵무새처럼 ‘술을 못 합니다’, ‘몸이 아파서요’, ‘차가 있어서’등의 변명들을 반복하며 죄인처럼 술잔을 거부하는 것은 상대방이 웃는 얼굴로, 술병을 거두어 주더라도 결코 편안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술을 권하고, 심지어 먹이는 것은 때론 엄청나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은 각종 범죄에 가장 손쉬운 표적이 되며, 마신사람의 몸과 정신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취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후에는 이미 조절이란 불가능하다. 취하기도 하고, 필름이 끊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 이러한 결과들이 여러 가지 사건 사고로 전환되어 우리에게 보여 지고 있음에도, 술을 권하는 손길이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른의 진심

술이 성인들의 문화에서 가장 크게 차지하는 부분은 ‘놀이’로서의 음주다. 각종 친교를 목적으로 한 모임의 클라이막스는 대부분 술잔을 치켜들고 건배를 외치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MT따위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고등학교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따위와 크게 다르지 않은 프로그램들이 행사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으며, 그나마도 술을 마시기 위한 ‘음주 전 여흥’같은 느낌에 가깝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MT가 끝나고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결국 ‘술 마셨던 이야기’밖에 없는 니힐리즘적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싸이 뮤직비디오 [hangover]

음주는 성인들의 놀이문화에서 상위개념을 점하고 있는 놀이이다. 음주가 놀이로 인식되는 것은, 술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나 행동이기도 하지만, 술을 마시는 것 그 자체이기도 하다. 술이 이처럼 최상위급 놀이가 된 것은, 술과 강력한 연관을 맺고 있는 ‘성인’이라는 기호의 작용이 큰 것 같다. 난데없이 술자리에서 ‘인생얘기’나, ‘나이 따지기’ 따위의 어른스러움을 과시하려는 행위들이 득세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술을 마심으로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일련의 신념체계가 각종 예술들로(특히 대중문화에서)표현되는 술에 대한 상찬, 사회적 관행등과 맞물려 작동하고 있는듯하다.
 
한편 술과 관련하여 득세를 하고 있는 또 다른 기호는 ‘진실함’이라는 기호이다. 함께 술을 마셔 본 사람에 대한 신뢰의 크기는, 함께 밥을 먹어본 사람에 대한 것에 비하여 비교적 크다. 술을 마시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인 감각의 예리함을 무디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 무뎌짐이 술을 마시면 등장하는 대담한 발언이나, 행동들의 근원이다. 그러한 것들을 사회는 ‘취중진담’과 같은 형태의 ‘진실’로서 소비한다.

타인을 믿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가운데에, 상대방이 평소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환희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상대방의 진심’으로 믿거나 하는 것은 수많은 착각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곤 한다.
 
 
미칠 것 같은 관대함

이러한 문화적인 작용들에 의해 형성된 술의 이미지는, 그 술을 마신 사람에 대해 타인들이 취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타인이 행한 술자리 실수들에 민감한 사람은 ‘관대하지 않은’사람이다. 평소에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다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 당하며 매도할 일임에도, 술 마신 사람이 그러는 것은 그저 다음 술자리에서 우스갯소리정도로 언급하는 것이, 주사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취하는 태도다.
 
전국에 젖사마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한 국회의원의 여기자 성추행사건에서, 피의자인 국회의원측은 법원에 자신이 알콜에 약한 체질이라는 것을 의학적으로 입증하겠다고 했다. 이 말인 즉, 술에 취해서 한 행동이고, 고의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겠다는 소리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구케의원 중에 ‘지킬박사와 하이드씨’같은 인간들이 원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이드씨가 한 일이니 지킬박사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이러한 논리를 들이미는 굳건함까지 보여주셨으니, ‘You Win!’이라고 해야 할까?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말은 결코 면죄부가 아니다. 술에 취해 일을 저지른 ‘내’가 있고, 그 ‘나’에게 크고 작은 일들을 당한 ‘타인’도 있다. 술에 취하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선택에 고통을 받는 것은, 단지 그와 함께한 잘못밖에 없는 타인들이다. 그러나 수많은 주사어택의 가해자는 술이 깸과 동시에 홀라당 사라지는 반면, 피해자들만 고스란히 남는 희한한 상황들이 문화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술과 섹스

한편, 술은 성인들의 또 다른 중요한 놀이인 섹스와도 깊은 연관을 지닌다. 물론 섹스하기 전에 술을 먹든, 물을 먹든, 그건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섹스를 하기 위해 술을 먹이고, 인사불성인 사람을 끌고 가는 강간적인 패턴들이 존재하며, 그것이 일견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주사를 부리는 사람에 대한 관대함과는 다르게 ‘술에 취한 (주로)여자의 몸’은 아무렇게나 착취해도 상관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술에 취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맺은 여성에게 돌아가는 소리는 ‘제 몸 간수도 못한 네가 잘못’이라는 반응이다. 개인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문제는 그런 일을 저지른 쪽은, 남자들의 일반적인 ‘욕망’이라는 모호한 등가물에 의해 사라져버린다는 거다. 오로지 남아있는 피해자에게 대부분의 비난이 쏟아지는 이상한 상황이 술과 섹스의 안 좋은 결합의 대표적인 예다.
 
 
필자가 제안하는 음주캠페인(!?)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하길, ‘인간의 이성은 빳빳한 금줄 같아서, 너무 팽팽한 긴장상태에 있는데, 음주는 그것을 느슨하게 해주는 것으로서 덕성함양에 도움이 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술이 주는 이른바 ‘인간적인’느낌을 모두 허위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도 역시 좋은 사람들과 마시는 술과, 몽롱한 느낌과, 부드러운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술은 그 중독성에 따르면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또한 내 정신이 잠시 다른 데에 가있는 사이에 내가 벌이는 행위들이, 항상 온건한 오바이트정도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한 착각이다.
 
난데없이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증진칼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쪼까 거시기 허지만, 결국 술은 먹고 싶은 만큼만 먹고, 먹기 싫다는 사람 먹이려 애쓰지 말고, 웬만하면 주변사람들한테 피해주지 않도록 너무 취하지 말 것이며, 술 먹여서 어떻게 해보려는 것은 강간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명심하자는 건전 음주문화 캠페인 되겠다. 맨 정신으로 살기에는 참으로 뭐 같은 세상 이다만, 자기 자신만이라도 책임지는 인간이 되는 것이 최소한의 윤리 아닐까?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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