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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정담] M의 이야기 - 1996년 채팅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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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영화 공부하신다는 저스틴 님의 사연입니다. 워낙에 얘기를 완성도 있게 써주셔서 제가 단순한 편집자의 역할 이외에는 한 게 없군요. 다른 포맷을 빌려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다가 오히려 메일 자체의 느낌을 훼손하는 거 같아서 그냥 전문을 싣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얘기를 외전으로 할 것인지, 청춘정담의 연속성 위에 놓을 것인지를 놓고 잠깐 고민했는데.. 그냥 M의 이야기로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좋은 사연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다시 한번 전합니다 저스틴님.


영화 [hacker]
 
1

그때가 1996년.

아빠가 갑자기 어디선가 들고 온 컴퓨터 한대에서 이 사연들이 시작되었네요. 당시 제가 컴퓨터에 대해 아는 건 초등학교 때 특별 생활로 배운 베이직이 전부였거든요. 그런 와중에 윈도우 3.1이 깔려 마우스로 그림도 그리고, 이리저리 쓴 일기와 낙서들을 저장할 수 있는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는 건 거대한 문화충격이었지요.

그 중 가장 대단한 것은 '이야기' 란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ATDT란 명령어는 신비한 마법 주문과도 같았죠. 거기에 홀딱 반한 저는 엄마를 졸라 천리안에 가입을 했고 매일을 채팅에 매진하게 됐어요.

누구나 당시엔 그랬듯, 저도 익명성을 200 프로 활용해 그때 저의 '통신상' 아이덴티티는 연세대 불문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고 날씬하고 키가 170인 여학생이었죠. 가끔 여중생의 어눌한 거짓말과 느린 타자에 의심을 한 몇몇 이들의 '연대 앞에 **주점 아직도 있나요?' 요따위 질문에 발목을 잡혀 눈물을 머금고 강제 종료해버린 경우도 있지만..

아참, 참고로 전 대구에 살고 있었어요. 조숙하게 도어스며 너바나 등등에 심취해 있었고 핫뮤직이 성서였으며, 젝키, HOT 등은 제겐 일곱가지 죄악과 동일시되는 사탄의 단어였죠. 뭐랄까. 좀 문화적으로 진화해있다는 치기 어린 우월감에, 또는 '야, 넌 가수 누구 좋아하는데?' '너바나 알어?' '그게 모야?' 이런 반복적이고 영양가 없는 단발성 대화에 질려, 학교아이들과 말도 잘 트지 않고, 자연히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의 교류에 목말라 있었답니다.
 
2

그러던 어느날, 놀기 좋은 채팅방을 물색하다가, '너바나' 어쩌고가 제목에 쓰인 채팅방을 발견했어요. 엄청난 흥분 속에 참여자들 아이디를 살피고 입장했지요. 몇몇 이들이 모여서 열띠게 락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고, 그중 LithiumX이라는 아이디가 눈에 들어왔어요.

'너바나 팬이세요?' 하고 시작된 대화는, 제가 18살의 여고생이며, 키가 172에 기타를 제법 잘치는 멋쟁이 아가씨라는 거짓말로 이어졌고, (전 그냥 우리나라 여자평균치인 160이 갓 넘는 키에 등교 길의 학생중에서 저를 찾아내기란 월리를 찾아라에 버금갈 정도로 평범한 외모였지만) 대학을 들어간다는 그와 매일 둘이서 채팅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함께 좋아하는 밴드의 팬클럽에 가입해 매일매일 글을 쓰고, 채팅을 하고, 당시 유행이었던 삐삐멘트음에 그가 녹음한 기타를 들으며, 얼굴도 모르는 이 사람을 견딜 수 없이 좋아하게 되어버렸지요.

당시의 어린 저는 나쁜여자 신드롬에 빠져, 여자 락스타들처럼 나쁜 여자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그땐. 당연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보게 된 포르노이외에 남자의 물건이란 구경도 한 적 없었지만, 그곳에서 그에게 저는 경험 아주 많고, 남자와 자는 걸 오목 두는 것 처럼 여기는 리버럴하고 쿨한 여자였죠. 왠지 문란한 게 그땐 멋있어 보였거든요.......

우리 같은 경우가 그때 참 많았겠지만, 그와 전 엄연히 온라인상에서만은 커플이었고, 정말 다정하게 1년을 넘게 지냈습니다. 그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160과 172의 차이보다 더, 온라인의 페르소나와 현실엔 너무 큰 괴리가 있었고 절대!! 만날순 없었어요.
 
3

그러다 전 유학을 가게 되었지요. 함께 몸 담았던 커뮤니티의 오프가 처음으로 출국 전 성사되면서, 엄마를 설득해 여자 친구집에 잔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고, 전 그와 꼭 만나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서울행 아침기차를 탔습니다. 그전에 그래도 최대한 172의 멋쟁이 아가씨에 가까워지기 위해, 사촌 언니집에 몰래 들어가 굽 높은 구두와 옷과 화장품을 말없이 빌려나오는 만행도 잊지 않고 말이죠.

서울로 가는 다섯 시간이 어찌나 길었는지, 아마 가는동안 상상한 그의 얼굴이 오백만가진 될 것 같네요. 그땐 이미 그를 너무 좋아하게 돼버려, 그가 팔이 하나 없다던지, 심지어 코가 없고 그자리에 구멍만 하나 뚫려있다해도 좋을 것 같았어요. 그가 지방에서 오는 날 배웅하기로 한 서울역 앞. 꽃집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를 기다렸고, 한참 후 등뒤에서 길다란 그림자가 드리운 그를 만났죠. 요즘 애들이 쓰는 어휘로 얘기 하자면,

조낸 평범한 얼굴.

그때 그를 본 다른 여자아이의 평에 의하면 살 빠진 변진섭이라 했던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심히 길렀지만 내공이 모자란 껑충한 단발머리. 서울역 김씨같은 평범한 옷차림에 뚱한 표정까지 어찌나 10점만점에 5점인지. 그 역시 절 보고 같은 생각을 했겠죠.

하지만, 그야 어쨌든, 전 그 모든 환상을 빗겨간 그의 외모에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알라뷰 알라뷰하면서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반갑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는 실망했는지, 어쨌는지 알 순 없지만, 아마 실망했을 듯 싶네요. 172도 아니었고, 멋지고 쿨한 여성도 아니었으니까요 전..
어쨌든 이 모든 생각을 1초만에 해버린 저는, 그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저도 모르게 방어적이 되어 재수 없는 말투로 딱 한마디 했죠.

'너야????????????????????????'

제가 생각해도 참 재수 없는 말투였어요.
 
4

아무 대꾸 없이 택시정류장으로 걷기 시작한 그는, 모임장소인 홍대까지 가는 택시에서 뒷자리 대신 조수석에 앉는 센스를 보여주더군요. 가면서 내내 망했다 싶었죠. 그날 처음 만나는 온라인 동지들과 처음 보는 코로나를 즐겁게 마셔대며 클럽들을 전전했고, 밤늦게 만취 상태로 그의 집으로 전화를 했어요. 하지만 그는 늦었다며 나오지 않더군요.

다음날 전 대학로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그곳에 다시 모인 몇몇 온라인 동지들과 2번째 연속 모임을 가졌구요, 거기엔 다행히 그도 참석했어요. 앉아서 너무좋아 너무좋아 죽어도좋아만 되뇌이며 있다가, 결국 좋아하는 사람끼리 둘만 남겨주자는 사람들의 합의로 둘은 떠밀리듯이 술자리에서 쫓겨났어요. 그런데 아 이사람 얼마나 말이 없는지, 밤 10시를 넘어가는 시간부터 우린 둘이 말없이 걷기만 했습니다.

그땐 아무것도 모르니 그가 걷는대로만 따라가고, 얼마나 둘다 말이 없고, 어색하고, 생각은 많았는지, 나중에 서울 살면서 보니 그 거리가 대학로부터 종로1가까지더군요.

너무 추운 겨울밤이었고, 갈곳은 없고, 그냥 멀찍히 떨어져 걷기만 했어요. 비는 아닌 게 안개 같은 게 잔뜩 끼어 머리가 젖고.. 차마 쳐다보진 못하고 흘끔흘끔 쳐다본 그의 얼굴, 코 아래엔 하얗게 콧물이 말라 있더군요. 그래도 너무 좋아 당장 죽어도 좋아 라고 생각했으니...

문득 그가 멈춰서서 제 얼굴을 빤히 보더니 한마디 하더군요. 너무도 고등학생같은 얼굴과 고등학생같은 말투로 말이에요,

'너, 사발면이구나?'

사발.... 사발면이 뭘까. 사발면이 뭐야? 했더니 왜 키172 라고 사발쳤냐 하더군요. 당황해서 그냥 캬캬 웃었지요.

추위를 피해 들어간, 사람 하나 없는 지하철역. 오들도 아니라 부들부들 떨고있으니 그가 어색한 표정으로 어색한 외투를 어색하게 벗어주더군요. '멋있는척 하지맛!!' 일갈해주니 '아씨 내가 또 벗어주나봐라!!' 다시 분위기 싸해지고..

아무튼 낭만적이어야 할 분위기는, 너무 어렸던 -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걷기만 했던 게 돈도 없고, 아는 곳도 없어서였던것 같더군요. 남자니까 말하지 못했던거겠죠 - 남자아이와, 더 어린 여자아이의 어눌함에 어색하기만 했고..

어쨌든, 자고 싶었어요 그 사람과.
 
5

그 아이도 저와 함께 있고 싶어했어요. 고전적인 '오늘 집에가기 싫어' 신공을 펼쳤으니.

뭐 ??? 16살짜리가 어떻게!!!!!! 하시겠지만, 그가 아는 저는 18살이었고 경험 많은 아이였으니... 떠벌린만큼 호기심도 커졌고, 무엇보다 그를 너무 좋아하고, 좋아해서 처음을 그에게 주고 싶었지요. 좀 제겐 이르다 싶기도 했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구요. 계속해서 그는 어딘가 들어가자고, 둘이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하고 은근히 종용했어요. 하지만..

이렇게나 그를 원했던 저에게, 그러나 갑자기 절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생겨 버렸어요. 비디오방이라도 갈이 가자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일수 없는 이유, 그런 일이 일어날 조건을 원천봉쇄 해야만하는 이유..

갑자기 생리를 시작했던겁니다.

'떡볶이가 됐잖아' 이 이야긴, 생각보다 오래된 이야긴가 보네요. 그때도 한 남자가 외치게 될 그 절규가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으니, 아름다운 첫사랑과의 첫경험에 피칠갑을 하긴 죽어도 싫었던 겁니다.

끝끝내 싫어... 너랑은 안해.. 너 싫어.. 요따위 말도 안되는 뺀찌만 주구장창 늘어놓다, 누가 그거하재?? 그냥 같이 있자고!!! 하는 그의 응수에 잠시 당황. 이러단 넘어가겠다싶어 그에게 최후에 카드를 꺼냈죠. 나 피곤해. 집에 갈래. 너도 집에 갓!!!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 받은 그 아인 그래 가라 하면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고, 저는 안도하며 역으로 가 대구행 기차를 탔습니다. 집으로 오는 다섯시간 꼬박 울었네요.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손도 못 잡아보고, 그동안 잘지내란 말, 좋아했다는 말, 다시 만나자는 말 아무것도 못하고, 너랑 자기싫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해!!!!!!! 요런 사실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말만 해놓고 와버렸으니...
 
6

그로부터 몇주 후 저는 유학길에 올랐고, 연락이 자연스레 끊어졌습니다.

그후로 7년동안 그사람을 단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처음엔 바뀐 그의 집 전화번호에 좌절하고, 잘은 기억나지 않는 그를 닮은 남자를 만났구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은 거쳐간 남자들의 얼굴과 시간 속에 희석되고, 남자들 속에 그의 모습을 찾는 저의 행동은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렸었지만, 단 한번도 그 사람을 마음에서 밀어 내버린 적이 없네요.

바람 피는 남자, 돈 썩은 내가 나서 나까지 썩게 하는 남자, 손버릇이 너무 좋아 얼굴에 멍을 남기는 남자. 돈을 구걸하고 몸을 구걸하고 사랑을 구걸하는 남자들. 재수가 없었는지 꼬여도 고린내 나는 놈들만 꼬이고..

그의 이름을 종이에 끄적이며, 종종, 만약 그때 내가 생리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와 잤다면 어쨌을까. 애초에 거짓말따윈 하지 않았다면,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여러가지 상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었고, 어려서 서툴기만 했으니 더 애틋한 기억으로 남았었던 거겠죠.
 
7

그로부터 몇 년 후, 여러가지 사연으로 공부를 중단하고 귀국하게 됐어요. 그렇게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2003년 초. 모 포털사이트에서 음악 주제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죠. 전문적이거나 심각한 건 아니었고 사실 구독하는 사람도 열명 남짓이었어요.

간간히 잘 읽었다는 분들의 이메일 받는 재미로 일기 쓰듯 써오던 어느 날, 한 남자분의 편지를 받았어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릴 적 음악 듣던 추억들이 떠올라 고마웠다'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지극히 평범한 문장들로 채워진, 아주 짧은 편지.

그런데 참 신기하죠. 그의 편지를 보고 '추억' 이란 단어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너무 그사람이 보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 사람도 내 글을 보았다면 그런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답장을 쓴다는 게 센치해져버려, 장문의 편지를 보내고 말았구요.

그렇게 몇차례 편지를 주고 받으며, 둘이 많은 기억들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는 걸 알 게 됐죠. 통신을 했다는 것, 같은 음악들을 들었고, 호주라는 곳에 특별한 기억이 있고, 아주 오랫동안 겨울에 걸은 적이 있다는 것도..

너 **니? 뭐 이렇게 묻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 그땐 이사람이 그이길 막연히 바랬을지도, 그래서 묻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한달쯤 후, 그와 만났어요. 처음 봤을 땐 심장이 멈추는줄 알았지만, 그 사람과 연애도 하고 명랑도 해야 하는데 쉽게 죽을 순 없죠. 그 다음은 그냥 그런 연애담이예요.

가끔 그와 그때 이야기를 하며 많이 웃어요. 지금은 그와 함께 다시 유학길에 올라, 지금은 피칠갑의 공포없이, 매일매일 명랑도 하고 사랑하며 살고 있어요. 어쩐지, 그때 그와 그걸 해버렸다면, 좀 더 세상에 익숙했다면 몇년동안 그를 잊지 못하고 다시 찾을 일도 없었을 거 같고, 지금의 우리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상이 제 별거 없는 연애담이었어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 드리면서 이만 마칠께요. 안녕히.

- 호주에서 저스틴 -
 
ps : 가끔은 그가 - 그는 극구부인하지만 - 저인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해서 피식 하게 되요. 나중에 알고보니 '친구찾기' 이런 기능도 있더라구요. 제가 좀 아날로그라 그땐 그런 걸 몰랐더랬어요. 하지만 뭐 어떻겠어요. 그날 그렇게 법석을 떨던, 키 172도 아니었던 사발면을, 그 역시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잊지 않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걸요.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 주요태그 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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