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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두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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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 조회수 : 7229 좋아요 : 4 클리핑 : 4
실수, 약속, 사랑
이 세 단어는 아마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나의 것이 조금 다른가 봅니다.

내가 생각하는 실수란, 볼펜을 집으려다 그 옆 물이 든 컵을 엎지르는 것, 돈을 잘못 계산하는 것, 셔츠 단추를 잘못 꿰는 것과 같은 찰나의 것들을 의미하는데요. 더이상 만나지 말자고 약속한 나의 사는 동네 터미널까지 장장 10시간에 걸쳐 몰래 왕복하는 일이나, 그것을 알게 된 내가, 이후부터는 극구 오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에는 기어이 집 앞에 5시간을 죽치고 버텨내다 공권력에 의해 질질 끌려나가는 것이 당신이 말하는 실수인가요?
나에게 약속이란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것이었으나 당신은 그저 나를 안심시키고 싶어서, 답장을 받아내기 위해 뱉어낸 묘책이었나봐요. 신경 쓸 일 없게 하겠다던 당신의 말, 약속은 아니었던 거지요. 나는 무서워 잠에 들지도 못 하는데 당신은 모양 좋게 술이나 마시다가 생각 끝에 내가 닿는 날이면 전화를 했지요. 내가 사무치면 익명게시판에 나를 그리는 편지를 썼지요. 글을 읽은 내가 싱숭생숭하기를 바랐지요. 신경 쓸 일 없게 한다던 그 말은 약속이 과연 맞았을까.
마지막으로 사랑, 갖은 방식으로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을 누가 사랑이라 칭하리오. 내가 느끼는 사랑은 존중과 배려의 응집체인데, 당신의 방식은 존중도 배려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더이상 누군가와 교류하는 것을 원치 않아하는 나에게 출국일정을 핑계로 만남을 종용하고 채근했던 것은 당신이었고, 당신의 존재에 대해 극도로 불안해하는 나를 침범한 것 역시 당신이었어요. 망할 도파민? 나답지 않은 실수? 그것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랑을 하는 이들이 당신처럼 추악한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 당신이 했던 그것들은 결코 사랑이 아니었어요.


나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또다른 글을 연재한다고 하여도 나는 묵묵히 먼 발치서 지켜볼 테요. 당신이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나에 대한 이야기를 왜곡되게 전달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어요. 그러나 글의 소재로 나를 포함한 당신이 가해했던 인물들을 소비하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소설이라는, 허구라는 빠져나가기 좋은 구멍을 이용하여 그리움이라는 미명 하에 누군가의 마음에 피 흐르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또, 나에게서 가져갔던 모든 것을 없애주기를 바랍니다. 나와 관련한 모든 것들이요. 사진과 동영상이라 함은 내 나신 뿐만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우리 집 근처의 풍경까지도 포함이겠고, 물건이라면 내가 입었던 지린내 나는 팬티와 너덜거리는 커피색 스타킹도 포함이 되겠군요.
‘적어도 올해는 경고장도 받았겠다. 안 찾아갈게요.’ 아니요, 제발요. 언제고 어디고 나를 향한 발걸음과 끄적임을 포함한 모든 노력을 이제부터라도 하지 말아주세요. 나의 새해는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당시 경찰에게 처벌불원의사를 밝혔던 것은 외력을 통하지 아니하고 당신이 오롯이 뉘우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싸운 여자친구의 기분을 풀어주러 왔다며 경찰에까지 거짓말을 하는 당신의 말에 동조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뭘 더 할까요. 더 할퀴지 말아요. 자극하지 마요. 숨도 힘겹게 쉬고 있으니까.’ 윽박지르는 당신 앞에 무기력하고자, 당신이 미련을 갖게끔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법정에 서서 서로에게 이를 드러내며 갉아먹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굳이 처벌하지 않더라도, 다시는 나를 괴롭게 하지 않겠지- 하는 일말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하건대 더이상 아프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부디 아픈 곳 씻은 듯 나아서 훨훨 나비처럼 날아다니기를 바라요. 비로소 하나도 아프지 않게 되었을 때 나 같은 비겁한 썅년은 떠오르지 않기를.











------Original Message------

우울감에 이름을 붙여주면 더욱 선명해지다 떨쳐 낼 수 있다고 하는데
내 우울감의 이름은 늘 그리움이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향해 달려오면서도 끝을 바라보고 시작했고
나는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영원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망할 도파민의 장난이 도가 지나쳐서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면서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웃다가 울다가 당신이라는 존재가 뚜렷다하가 지금은 잔상으로. 큰 상처에서 곧 떨어질 작은 딱지처럼 흐릿해요



당신이 내가 처음 쓴 그 편지를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당신이 이 편지를 또 다시 발견하지 못했으면 좋겠지만.
발견하고서 아주 조금은 아주 잠깐은 싱숭생숭 했으면 싶기도 해요.



그럼 안녕 나의 여름, 나의 작은 머피.
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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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섭 2020-04-03 22:29:53
아우 글읽는데 아우 화나네요. 참 지적이신분같아서 더욱.. 나같은 친오빠를뒀다면 나름든든했을터인데
켠디션 2020-03-12 23:49:41
테디님이 괴로운 만큼 그 분도 괴로웠을까요?
그걸 생각하는 테디님의 맘고생이 보이는것 같아서요..
도움은 안되겠지만 맘속으로나마 응원합니다.
테디님의 안정을..
테디/ 결은 다를지언정 저 혼자만 괴로웠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도 해소하는 방법이 있는 만큼 그 분도 나름의 해소하는 방법들이었겠죠. 그러나 그 과정과 결과 때문에 제가 더 괴로워진다는 걸 알았으면 했어요. 응원과 마음들이 모여 저에게 더없이 도움이 됩니다. 고마워요, 더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이요! 고맙습니다.
초빈 2020-03-06 23:14:54
아 뭐야;;; 글을 지금 봤어요.. 테디님 앞날에 행복만 가득하길 ㅠㅠ
테디/ 악 ㅋㅋㅋ 아니에요 영영 모르셔도 괘념치 않았을 거예요 ㅎㅎ 고마운 초빈님의 앞날에도 행복이 그득그득하길 소망해유 :)
착한나무 2020-03-05 17:30:29
하...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시군요..제발 남자분이 정신차려서 테디님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되길 바랍니다...
테디/ 말씀 고맙습니다.
Mariegasm 2020-03-05 10:01:47
테디님 ! 반가운 마음에 글을 클릭했는데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건강히 지내시길 바라요.
테디/ 마리님! 저 역시 반가워요! 무거운 마음은 곧 올 봄바람에 가벼이 날려버립시다- 마리님도 꼭 건강해주세요. 고맙습니다.
pauless 2020-03-04 23:35:42
테디님의 없어질 기억에 먼저 "삼가 기억의 명복을 빕니다. "
테디/ 와,,,,,, 대체 이런 센스는 어디서 어떻게 배우는 거죠 ㅋㅋㅋㅋ 복 빌어주셔서 고마워요 ㅎㅎ 코피 자주 나는 사람에게는 연근이 좋대요. 저는 그 마저도 안 통해서 이비인후과에서 코 지지고 그랬습ㄴ... 덜 피로하시기를 바라요.
키매 2020-03-04 22:44:56
간간히 들러서 안부 들려주세요. 잘 지내시길 바라며.
테디/ 그러도록 할게요. 고맙습니다. 키매님도 무탈하시기를 바랍니다 ㅎㅎ
DRY 2020-03-04 19:38:01
흠 맘이 많이 아프겠어요.
아직도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이 있다니....
그런 사람들 앞과 뒤가 다른 경우가 많아요.
글로만 보면 이미 적정선을 넘은거 같네여 좋은게 좋은것이 아니니 경찰권의 보호를 요청하시는게 옳을듯해요.
힘내라는 말 밖에 달리 드릴 말이 없네요.
테디/ 아팠는데 많이들 안아주시고 다독여주셔서 지금은 괜찮습니다 ㅎㅎ 힘내라는 말 하나로도 족해요. 고맙습니다.
햇님은방긋 2020-03-04 19:00:00
토닥토닥.. 기운과 용기 내시길 바래요.
테디/ 고맙습니다. 방긋- 웃는 날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요 :)
대쏭 2020-03-04 17:23:59
건강하소서 테디님ㅜ.ㅜ
테디/ 대쏭님도 내내 잘생기소서
랜딩맨 2020-03-04 13:37:23
고민은 많이 할수록 우울해지기만 하지요. 그냥 경찰에 신고해서 법적인 처벌을 받게하고 레드홀릭스 활동도 쉬세요. 싫다는데 자꾸 달라붙는 집착이 심한 사람은 치료받기 전엔 평생 못고칩니다. 여기다가 어렵게 글을 쓰시면 저처럼 공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계속 자기 에너지 깍아먹는 힘든 싸움 하지 마시고 간단하게 생각하세요. 힘들더라도 간단하게 생각해서 처리하면 그만큼 고민도 줄어듭니다. 스스로 깨닫건 아니건 집착은 정신치료가 필요한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고 못난 짓을 하지도 않습니다. 정신치료가 필요한 사람한테 백날 얘기해봐야 소용 없어요. 정상이 아니니까요. 가능하시다면 거주지를 옮기시고 레드홀릭스도 잊어버리세요. 테디님이 레드홀릭스에 미련이 남아있을 수록 그 사람은 착각에 집착이 더해질 뿐입니다. 집착은 무서운 병이고 엄청난 나쁜 결과를 만들수도 있습니다. 테디님도 레드홀릭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자신의 삶과 몸과 마음을 위해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테디/ 다행스럽게도 랜딩맨님처럼 고마운 분들이 많아서인지 사건이 있기 전보다도 더 건강한 삶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아직 제가 목표한 것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럼에도 저는 매일매일 나아지고 있어요. 미련도 고민도 많이 비워냈다고는 생각했는데 랜딩맨님의 댓글을 읽어보고 뜨끔하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아직인가 봐요 ㅎㅎ 아직은 저 역시 가야 할 길이 멀고 또 그것이 순탄하지만은 않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빴던 것은 내려두고 좋았던 것만 안고 가려 합니다. 공자왈 삼인행필유아사언, 저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 역시 제가 더 단단해질 수 있게 도와준 스승이 될 수 있도록요. 다친 건 약 바르면 되고 나으면 훌훌 털고 재기하면 그만이니까요. 랜딩맨님도 저도, 이외 모든 사람이 더 아프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약 발라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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