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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전염병 아니거든? - 성적 소수자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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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us Winkler, CC BY
 
성적 소수자란?
 
성적 소수자란 누구인가. 학교 성적이 상위 5%에 속하는 상위 엘리트 그룹? 일리는 없으니 일찌감치 넣어 두자. 두 번째 후보, 무적 솔로부대에서 장기간 복무 하고 있는 외로운 청춘 남녀들? 아 이거 어렵다. 이들도 분명 성적(性的)으로 소외 받고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일단은 넣어 두자. 에헴! 재미 없었다면 죄송. 잡담은 이 정도하고 바로 본론 들어간다.
 
성적 소수자란,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인 성이 일치한다고 믿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된 이들이다. 종족 재생산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못도 없이 지탄 받는 이들이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가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크로스드레서(이성의 옷을 입고 정서적 만족감이나, 성적 흥분을 얻는 이들)나 무척 희박한 확률로 양성의 생식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 이들 등이 있다. 뭐가 됐든 성적 차이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어렵고 다양한 장애물을 넘어가며 살아야 하는 이들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성적 소수자가 비정상이 아닌 이유
 
플라톤의 <향연>을 보면 그리스 비극 대회 우승자인 아가톤, 소크라테스 등이 모여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숭고한 사랑으로 꼽는 것은 다름 아닌 ‘소년에 대한 사랑’이다. 책의 말미에 알키비아데스라는(당시 카사노바쯤 되는) 꽃미남이 등장한 이후의 전개는 더욱 쇼킹하다. 술에 취한 그는 소크라테스에게 잔뜩 꼬장을 피우는데, 소크라테스를 애인으로 만들기 위해, 레슬링 연습에 초대를 해 육탄공세를 벌이고, 집에 가겠다는걸 억지로 잡아 뒀으나 밤새 꿈쩍도 하지 않았다며, 야속한 그이를 향해 애증의 사자후를 내뱉는다. 아아, 정녕 고교 윤리 교과서에서 근엄하게 가르침을 내리시던 그분들이 이분들이던가!
 
끝이 아니다. 레즈비언이라는 말은 그리스의 유명한 여류 시인이자 동성애자인 사포가 그의 여 제자들과 함께 살던 레스보스 섬이 그 유래이다. 아아, 아테네는 정녕 타락 시티였단 말인가!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때는 이게 '비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동성애의 이상적인 모델은 존재했다. 학식과 재산이 있는 중년의 남성과 이제 막 터럭이 날랑말랑하는 사춘기의 소년이 섹스도 하고, 교육도 하고, 후원도 하면서 알콩달콩하게 지내는 것. 이것은 매우 훌륭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자, 완벽한 연애였다. (여성과의 섹스에만 탐닉하는 이들은 색정광이라 하여 지탄을 받았다.)
 
현재의 '성적 소수자'라는 개념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받아들이고 늘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관념에 불과할 뿐이다. 누가 소수가 되는지는 변화해왔고 변화하고 있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오해하지 마세요!
 
한국 사회의 정규 교육 과정을 착실히 밟아온, 매우 선량한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 대해 가지는 편견은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다. '혹시 나에게 호감을 가지지는 아닐까?’ ‘억지로 섹스를 하려고 달려들지는 않을까?’ ‘나를 동성애에 끌어들이지 않을까?' ‘성병에 감염된 건 않을까?’ 등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될 것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는 헛소문들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그들에게도 취향이 있고, 보는 눈이 있다! 너무 돌려 말했나? 니네 안 좋아한다고!
 
에이즈의 원흉이 동성애라고 알려진 것 역시 명백한 오해이자 편견이다. 흔히 항문 성교를 문제 삼는데, 그 확률은 0.1-1%에 지나지 않는다. 오럴 섹스에 의해 감염될 확률 역시 매우 희박한 수준이다. 대부분의 에이즈는 콘돔 없이 섹스를 하다 감염된다.  
 
트랜스젠더는 단순히 다른 성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몸과 정신이 다르게 태어난 사람이다. 자신의 몸을 진정한 의미로 혐오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이 가는가. 더불어 힘들게 수술을 받았다 해도 주민번호상의 1과 2가 생김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노동을 비롯한 사회적인 활동은 거의 불가능하고 변두리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오해와 편견은 혼자만 가지고 있을 때는 괜찮다. 그러나 이것이 광범위하게 퍼질 경우, 게다가 모종의 목적성을 지고 악의적으로 확산될 경우에는 매우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
 
 
탄압의 역사는 계속된다
 
기독교는 아직도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하는 집단 중에 하나이다. 기독교의 소수종파 가운데 하나인 성공회의 경우 미국교구에서 동성애자 주교가 선출되는 파격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논란에 휘말렸고, 거의 대부분의 종파와 교단은 아직도 동성애를 ‘지옥행 특급열차표’로 여기고 있다. 기독교의 동성애 탄압은 구약성서 레위기 20장 13절을 그 근거로 한다.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영락없다. 반드시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누구든지 경도하는 여인과 동침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면 남자는 그 여인의 근원을 드러내었고, 여인은 자기의 피 근원을 드러내었음인즉 둘 다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레위기 20:18)라는 부분이 보인다. 생리 중에 섹스 하는 이들 역시 죽임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글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죽을 사람들 많을 거다.) 더불어 처음으로 자위를 했던 ‘오난’이라는 남자 역시 하느님께 벌을 받으며 ‘오난이즘’(자위)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다. (순식간에 죽을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동성애뿐 아니라 자녀의 생산과 관련이 없는 모든 성행위는 모두 다 죽임의 대상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성이라는 것 자체가 종족 번식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종의 ‘필요악’이었던 것이다.
 
더불어서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 역시 동성애 탄압에 홀용되는 단골 메뉴다. 성적 타락과 더불어 야훼를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노의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맞고 멸망했다는 이 일화는 남성끼리의 섹스를 ‘소도미’(sodomy)라 부르며 경멸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남색은 그들의 기준에 따른 죄악 중 하나였을 뿐, 생리 중에 섹스 하는 이가 많았는지, 프리섹스주의자가 많았는지에 대해서는 당최 알 길이 없다.
 
중세에도 동성애는 수많은 죄악 중 하나였을 뿐이다. 게다가 중세는 일반적인 생각처럼 성적 금기가 강력했던 시대는 아니었다. 대표적인 기사도 문화만 봐도 이미 기혼자인 귀부인에게 바쳐지는 기사들의 열렬한 애정이 그 중심적인 내용 아니던가. 그럼 대체 언제부터 동성애는 주된 탄압의 대상이 되었을까.
 
드디어 인류 파국의 공연장, 근대가 등장한다. 동성애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은 영국발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다. 산업화가 가장 먼저 시작된 영국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처형을 시작한 이후, 동성애자들은 자본주의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가족 제도의 외부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존재로 낙인 찍혔다. 이러한 것이 극한에 달한 것이 나치독일의 동성애자 학살이다. 강제수용소에서 분홍색 삼각형을 달고 수용되었던 수많은 동성애자들은 게르만 민족의 우수하고 순결한 혈통을 더럽힌 죄로 죽음을 당해야 했다.
 
한편 이른바 성 과학은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이 연구는 '비정상’인 그들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과학이 밝혀낸 '치료법'들은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고문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동성애를 비정상, 정신병, 도착 상태로 간주하는 것은 1973년 미국정신과의사협회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할 때까지 계속되어왔다.
 
탄압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직도 많은 종교 단체가 이들을 죄인으로 몰아세우고 일부 종교적 근본주의  국가들은 국가 주도의 처벌을 행하기도 한다. 동성애자들이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라는 80년대 영미의 신보수주의 정권의 음모론이 아직도 통용된다. 가족 안에서 성적 소수자는 여전히 집안 망신이며, 신체적 정신적 폭력의 대상이다.
 

Joshua Hayes, CC BY 

호모포비아의 속사정
 
동성애 혐오자들을 호모포비아라고 부른다. 한국에는 실제 본 적도 없는 성적 소수자를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들이 넘쳐난다. 덕분에 성적 소수자임을 밝히는 일은 사회적인 매장을 각오해야만 가능하다. 막연한 증오는 직접적인 테러와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보여 지는 게이에 대한 집단 린치나, 레즈비언에 대한 고의적인 성폭력 등이 대표적 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이런 극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가?
 
자기는 '정상'이라는 우월감 때문에? 아니다. 호모포비아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동력은 두려움이다. 자신도 소수자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언제 소외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을 잊기 위해 그런 끔찍한 행동들을 벌이는 것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삶을 좀 먹는 작태.
 
 
성 해방의 그날까지
 
성적 소수자가 사랑할 자유를 얻는 것은 그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 역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을 가지도록 세뇌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행복한 관계와 삶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모른 채 살아왔는지도. 그들은 있어왔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더불어 어떻게 그들의 힘을 빌어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꼭 필요하다.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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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ermensch 2015-11-17 13:55:59
근데 답없는건 쟤넨 SMer들 차별함. 그냥 나랑 다른걸 차별하는건 인간의 본능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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