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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 제가 직접 먹어봤는데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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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 제가 직접 먹어봤는데요 3▶ http://goo.gl/8rKnOk


영화 <연애의 온도>
 
1
 
이솝우화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형제에게 '단 한 번 소원을 들어주는 항아리'를 남겨주고 죽었다. 형제는 필요한게 생각나서 쓰고 싶을 때마다 '이 정도는 직접 할수 있으니 보다 큰 소원을 위해 아껴두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런 태도로 살다보니 나중에 형제는 소원을 빌지 않고도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았다 는 자세히는 기억 안 나는 뭐 그런 얘기.
 
세 알과 두 알의 차이가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 만큼이었다면, 두 알과 한 알의 차이는 서울과 뉴욕, 아니 저기 베네주엘라의 니꼴라멘 섬 만큼의 거대한 괴리가 있었다. 단 한 번의 기회만을 남겨둔 나는 자연스럽게 저기 이솝우화의 형제 같은 태도로 삶에 임하게 되었다. 함부로 쓰지 않는 인내, 절제...
 
결혼하고 첫날밤에 쓰려고 그러냐는 강군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아그라는 나의 지갑 깊은 구석에 고이고이 숨겨져 있었다. 문득 삶이 지겹거나 우울해질 때는 모서리가 헤지기 시작한 비아그라를 바라보며 위안을 삼곤 했다. 더 이상 비아그라는 하나의 약이 아닌,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자 생기의 원천력쯤 돼 버렸다. 그러다 <반지의 제왕>을 봤을 때는 골룸에게 너무나 공감이 가서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2
 
그렇게 살던 어느 날, 나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만난지 겨우 일주일만에 열정적인 관계에 빠져 들었다. 스물 세 살 때 이로 느껴본 적 없는 순수한 의미의 정열. 학교 수업 다 빠져가며 연애질에 열을 올리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빠져든지 한달쯤 되던 어느 데이트에서, 그녀는 아주 슬픈 표정으로 자신에겐 5년 사귄 애인이 있음을 고백해왔다. 나는 당연히 충격에 빠져들었다. 이런 감정 오랜만에 느껴보는데, 하필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빠져들게 되었다며, 그동안 말하지 못해서 너무 마음 아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 애인과 나 둘 다 버릴 수 없다고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3
 
당연히 화가 났어야 했을 그 순간, 내가 느낀 종류는 막상 분노가 아니라 서글픔, 서러움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술잔을 드는 것. 그녀와 나는 말 없이 술을 마셨다. 아무 해법도 없고 지향점도 없을 그 술자리는 첫차가 다니기 시작하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성이 마비되고 감성만이 살아 있을 만큼 취해서야 나는 그녀가 가해자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이 상황의 피해자라고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린 아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술집을 나섰다.
 
 
4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주기 위해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 마침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애인 있는 그녀를 바래다 주는 길, 아득한 신새벽 골목길을 따라 술취한 발걸음을 옮기네. 입에선 절로 시가 막 쏟아져 나오는 그런 새벽.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베르테르와 로테,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맞먹는 슬픈 연인들이었다.
 
한사코 내가 먼저 가는 것을 보고서 가겠다는 그녀와 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 비오는 가을날의 멜랑꼴리를 뚫고 저 멀리 버스가 등장했다. 버스에 탈 준비를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잘 가..."라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예전에 수술했던 맹장 자리가 아려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 통증은 등을 타고 왼쪽 가슴에 와서 강하게 퍼져나갔다.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여전히 그녀가 나에게 소중한 여자임을 무엇으로 알려줄 수 있을까.
 
힘주어 꼭 한번 안아줄까, 부드럽게 작별 키스를 해줄까. 따뜻하게 손을 쥐어줄까. 어딘가 금이 가 있을 그녀를 보다듬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동안 버스가 앞에 서 버렸다.
 
차에 오르던 나는 그러나 다시 뛰어내려 그녀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 내 마음의 정표를 그녀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그러곤 영화 주인공들이 흔히 그렇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버스에 뛰어올랐다. 그 풍경만큼은 슬픈 영화의 작별 장면을 그대로 닮았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이별의 징표가 '비아그라'였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5
 
갑자기 손에 꼭 쥐어진 비아그라에 그녀는 어리둥절해하며 서 있었고, 버스는 그런 그녀를 뒤로 한 채 떠나갔다. 그로부터 30분 후, 버스에서는 한 청년이 유리창이 부서져라 머리를 박아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신이 한 짓을 믿을수 없어하는 자학의 몸부림이었다.
 
 
6
 
그 후 나의 괴로움은 시간 경과에 따라 크게 두 단계로 나뉘어졌다. 처음의 괴로움은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비아그라로 매듭지은 그 스스로도 황당스러운 센스 때문이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비아그라도 맞는 명제였고,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줘서 위로해주고 싶다’도 맞는 명제였다. 그러나 올바른 두 개의 명제가 결합된 결과는 왜 이리 이상해졌을까. 어디에 논리적 결함이 있었던건지를 생각하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나마도 술이 깬 뒤엔 그것보다 날아가버린 마지막 한 알이 아까와서 더욱 괴로워졌다.
 
며칠 뒤 나는 그녀에게 장난이었다며, 재밌었을테니 이제 그만 돌려달라고 비굴하게 부탁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그럼 나랑 쓰겠다는 각서를 달라고 요구했더니 하는 짓 봐서라는 냉정한 대답으로 돌려주었다. 아, 그 새벽의 애틋함이 차라리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걸 써보기도 전에, 우리는 머리 끄댕이 잡고 찌게까지 뒤엎는 내 연애 사상 초유의 싸움박질을 하며 끝장이 났다. 베르테르와 로테였던 남녀가 일주일만에 김일과 역도산이 되어 버리는 아이러니가 나는 슬펐다.
 
하지만 더욱 슬픈 것은 역시나 비아그라가 영영 내 곁을 떠나 버렸다는 현실이었다. 취하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비아그라를 갖고 있다는 걸 기억했을테고, 그럼 그까짓거 꾹 참을 수 있었을텐데...
 
그녀의 얼굴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 지금, 하지만 비아그라만큼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는 비아그라만도 못한 연애를 했던걸까.
 
 
7
 
근데 그녀는 누구와 그 비아그라를 써 버렸을까. 두 달을 소중하게 품었던 내 체온을 그 남자는 느낄 수 있었을까. 구석구석 내 애정 가득한 손길에 닳아버린 표면의 아픔을 그는 과연 발견했을까. 만일 그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꼭 들려주고 싶다. 니가 먹은 건 내 비아그라였다고. 그리고는 그에게 묻고 싶다. 대체 몇 번이나 했냐고. 세 알을 다 써 버리고도 발기 한 번 못 해본 나는 그것이 궁금하고, 그래서 서럽다.
 
 
끝.
 
 
글쓴이ㅣstrada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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