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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에 사람들은 출근길마다 약국 앞에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곤 했다. 고맙게도 주변에서 마스크를 잔뜩 구해다 주는 덕에 약국에 줄을 선 적은 평생동안 아직은 없었다. 지금, 편의점 한 켠에 여러 종류의 마스크가 구비되어 있거나 온라인쇼핑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보면 가끔은 이 삶이 생경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약국 앞에 손을 호호 불며 기다리는 동안의 시간만큼 일찍 아침을 시작했을까. 아니면 나처럼 시간과 시간 사이를 쪼개어 그 틈 안에 자기자신을 찌그러뜨렸을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멋지다고 항상 생각했다.
얼굴에 바른 앰플이 흡수되는 동안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면서 아무것도, 심지어는 팬티 한 장 양말 한 켤레조차 입지도 신지도 않은 채로 집안 곳곳의 머리카락과 먼지를 청소했다. 진공청소기가 큰 소리를 내며 앞뒤로 움직거리는 동안 내 예쁜 고양이는 한 발치 정도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눈을 느리게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다시 큰 소리가 나는 드라이기를 얼굴 앞에서 빠르게 흔드는 동안에는 까드득까득, 밥그릇에 담긴 사료 몇 톨을 바닥에 덜어 먹는 것을 반복했다. 현관에서 구두주걱을 뒤꿈치와 신발 사이에 욱여넣고 있으면 어느 새엔가 소리 없이 다가와서 다소곳하게 앞발을 모으고 앉아 지그시 쳐다보기도 했고, 왜인지 뾰로통한 날에는 내가, “엄마 다녀올게.” 하더라도 침대에 널브러져 허공만 본 체 만 체했다.
아니면 샤워를 하면서 손/발톱을 깎기도 했다. 물에 조금 불은 상태의 손톱을 깎을 때에는 너무 바짝 깎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 무렵에 알게 되기도 했다.
음, 또. 길에서 프로틴바와 쉐이크로 식사하기, 대중교통 안에서 노이즈캔슬링 해제하고 선잠자기, 메신저 선택적으로 답장하기, 손빨래 밀리기. 뒷전이 되는 것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겨를 없이 바빴다.
미안하지 않았다.





“나 군고구마 엄청 잘 굽는다.”
“군고구마 맛있지.”
“진짜야.”
“어떻게 굽는데?”
에어프라이어에 30분씩 3번. 80도, 120도, 뒤집어서 160도. 똑딱똑딱 타이머 돌아가는 소리는 샤워기 물줄기 소리, 드라이기 모터 소리에 묻혔다.
“오- 나중에 해 줘.”
“그래.”
병원 예약 시각이 모호하게 끼는 바람에 전날의 숙취가 다 해소되지 못 한 채로 스쿼트와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를 뚝딱뚝딱 마치고서 집에 들러 옷을 갖춰 입은 후 따끈한 고구마를 품에 안고서 겨우 집을 나섰던 것이 오후 한 시.
‘찌찌가 따뜻해졌어’
‘귀엽다’
내가 귀엽다는 건지 따뜻해진 찌찌가 귀엽다는 건지 아님 품에 안은 고구마들이 귀엽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병원 들렀다가 나머지 운동 마저 하고 출발하면 너 퇴근 시각이랑 얼추 비슷하겠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나한테만 두 배 빠르게 적용되는 걸까. 그런데 너도 항상 비슷한 말을 했다. ‘벌써 h시야!’ 반갑지 않을 이유 없었다. 한 시간 안에 남은 운동을 모두 마쳐야 했다. 분주했다.
‘몇 시쯤 도착해? 사무실로 올래?’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너에게는 너무도 공적인 공간일 테지만 나에게 그 곳은 이제 무척이나 사적인 공간이 되어 버렸는 걸.
‘가도 돼?’
‘여섯 시 반쯤’
이제는 전보다는 조금 익숙해진 걸음새였다. 조금은 능숙해진 손길로 슬리퍼를 꺼내 갈아 신고 있으니 전처럼 너는 나를 마중했다.

“안녕?”
“응, 안녕.”
물 담긴 화병 속 후리지아는 시들어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우리집 후리지아는 더 일찍 시들었으니까. 버려야 하나 잠깐 고민했던 것 같다. 의미 없이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았다. 네 옆에 가 앉기 조심스러웠다. 너의 집중하는 얼굴은 뭐랄까, 건드리기 주저하게 됐거든. 웃음기가 하나도 없는데 하나도 찌푸려지지 않은 미간이 신기했다. 음, 마지막으로 미간 보톡스를 맞은 게 언제였더라? 그러면서 한 바퀴를 더 돌려는 차에 사무실 바깥에서 문이 열렸다. 순간 얼었다. 얼었던 몸이 움직였을 때에야 비로소 놀랐다. 새벽에 부모님 몰래 컴퓨터를 하다가 주방에서 냉장고 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어,”
그리고 삐걱거리는 목례. 상대방은 놀라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마침 일을 마친 너 역시 놀라지 않았다.
“어, 왔어?”
“응.”
“간다. 가자.”
너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리고 나에게 차례로 말했다. 나는 여전히 삐그덕거렸다. “응.”
그리고 너는 천연덕스럽게, 아닌가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언 손이 따뜻해졌다.
“2층에서 점프했다던 그 친구야. 책 많이 읽는다던 애. 보통 이 시간에 와서 도와줘.”
“아!”


그 얘기를 왜 했더라, 아무튼 상호명이 당최 기억나지 않았다.
“아- 그게 어디였지. 동네마다 꼭 하나씩 있는 덴데.”
“까투리? 동아리?”
“음,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꼭 아파트 상가에 있어. 슈퍼 옆에.”
이쯤 되면 스무 고개가 아닐까 싶었다. 8차선의 횡단보도를 다 건너는 동안에도 우리는 끙끙거렸다.
“이런 건 검색하면 꼭 지는 기분이야.”
“맞아, 나중에 꼭 생각난다.”
“어디였지.”
그러면서 너는 목적지에 대해서 얘기했다. 정말 맛있는 곳인데, 동네 단골들이 주로 찾는 곳이어서인지 시끌벅적하다고. 대화하기에 그닥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그랬다. 그러면서 너는 그 곳의 무슨 메뉴가 맛있다고 그랬는데 그건 잊었다.
“응, 괜찮아. 나도 목소리 커.”
그리고 만석이었다.
“아쉽다. 저기 진짜 맛있는데.”
“괜찮아. 다음에 가면 되지.”
“그럼 조용한 데로 가자. 거기도 맛있어.”
“그래.”
아- 김치우동이 유명한 곳인데, 어디더라.

‘딸랑’하고 종이 울렸다. 네 말대로 정말 조용한 곳이었다. 오뎅탕이 올려진 버너와 초록색 병 두어 개를 사이에 두고 도란거리는 사람 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느즈막히 주방에서 나오는 앞치마 두른 직원은 조금 어리숙해 보였다.
“나는 오늘 스지 먹고 싶어.”
“스지 맛있지. 탕도 있고 무침도 있네.”
“히레사케도 있다. 마셔 봤어?”
“그게 뭐야?”
태운 복 지느러미 술. 한 10년쯤 전에 한 번 비리게 마셨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어이-’하고 너를 반기는 분이 이 곳 사장님인 듯 보였다. 짙게 담배냄새가 풍기는 사장님은 빨간 양파망을 늘어뜨리게 쥐고 주방으로 곧장 직행했다.
“오랜만에 왔네. 얼굴이 엄청 좋아졌네.”
너는 대답 없이 마냥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던 것 같기도.
10년이 지나 마신 히레사케는 따뜻하고 역시나 비렸다. 앞으로 다시 시도하진 않을 맛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그런데도 너는 볼멘소리 한 번 없었다.
“아, 어디더라.”
“이거 생각해 내면 쾌감 쩔 걸.”
“뇌르가즘.”
“꼬다리… 꼬… 투다리!”
나는 박수쳤고 너는 뿌듯해 했다.

“근처에 생긴지 얼마 안 된 바가 하나 있는데 거기 가 볼까?”
너는 요새 위스키에 재미를 붙인 듯했다. 도착한 곳은 와인과 위스키, 그리고 칵테일까지 모두 즐비한 곳이었다. 나는 홀보다는 바테이블을 더 선호하는데, 항상 마지막 자리는 바테이블이더라. 비주류라서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또 같은 질문, “연애하신지는 얼마나 된 거예요?” 나는 또 얼었다. 너는 눙치며 답했다.
“한- 서너 달 됐어요.”
“저희 바랑 비슷하네요. 저희도 서너 달 전쯤 오픈했어요. 동네 주민이신가요?”
“네, 저는 근처에 살고 여자친구는 아니에요.”
“되게 좋아 보여요. 연애 초기에서 느껴지는 뭐랄까, 그런 기운이 있어요.”
어느 새인지도 모르게 네 허벅지 위에 얹어둔 내 손이 바텐더의 말을 듣고 일시간 꿈지럭거렸다.
“그리고 외투가 같은 색이잖아요. 보통 오래된 커플은 그런 거 잘 안 하더라고요.”
음. 그런가. 그래 보이는 건가, 아니면 상술일까. 생각을 말로 변환시키지는 않았다.
너는 달걀이 들어가는 칵테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너는 내가 고민했던 4가지 중 하나를 골랐는데, 흰 자만 사용하는 칵테일이었다.
“노른자에 핫소스 뿌려 먹으면 굴이랑 되게 비슷해. 굴 알러지 생기고부터 가끔 그렇게 먹어.”
네 표현을 빌리자면 매운 정액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맛있다. 근데 아직까진 버터 리큐르가 1등이야.” 했다.

바람이 찼다. 너는 수염을 안 깎았다며 투정했다. 글쎄,
“너가 고개 움직일 때마다 좋은 냄새 나.”
“응, 톰포드. 뭐더라, 검정색인데.”
“응, 검정색 냄새야. 좋다. 잘 어울려.”
좋은 냄새. 너는 손을 잡는 것만큼이나 내 어깨에 팔을 두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는 그러면 네 등 뒤로 허리를 감거나 아니면 반대로 팔을 네 몸통 앞으로 빼서 네 외투 속 겨드랑이를 파고 들었다.
“여기 찌찌야?”
“응.”
“신음 내 봐.”
나는 외투 속에 손을 숨기고서 네 젖꼭지를 살살 간질였다. 어느 새 윤곽이 도드라져서 손끝에 닿는 감각이 선명해졌다. 길에는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너는 내 어깨를 세게 쥐더니, “아.”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나는 크게 웃었다. “여기서 신음 진짜 크게 내면 미친 사람들로 볼까?”
너는 내 어깨를 아주 세게 쥐었다. “해 볼래?” 그리고 나는 너를 째려보고. 너는 웃었다.
“오늘 하나도 안 취해. 0도.”
“그럼 편의점에서 위스키 사 갈까?”
타코야키까지. 건물에 들어가기 직전, 너는 무언가를 궁리하는 표정이었다.
“왜?”
“아까 너한테 주려고 했던 게 있었는데 뭐였는지 생각이 안 나. 퇴근하면서 챙겨야지 했는데.”
금방 다녀온 네가 챙겨온 건 아몬드버터였다. 하루 한 숟갈씩 먹으면 몸에 좋다고 그랬다. 함께 챙겨온 은색 티스푼이 귀여웠다.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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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24-03-23 01:10:45
별빛하나 찾을수없는 깊은 밤에 아주 조그맣게 속닥거리는 글은 참 좋네요.그녀의 손길에 꼭지가 서는 것만큼 이나 매력적인 글 잘봤습니다^^ 다음 글을 보려면 약국앞에서 긴줄을 서야하는 시간만큼 기다려야할까요?
익명 / 오! 반가운 댓글 고맙습니다 ㅋㅋ 약국 문이 두 번 열리고 닫히기 전까지 풀어내 볼게요
익명 / 약국문을 쾅쾅~~!두드리면. 빨리 여기도 하는 거.....아시죠?
익명 / ㅋㅋ 아직 약국 문을 두드릴 정도로 아파 본 적이 없는 건 다행일까요? ㅎㅎㅎ 조금 루즈해졌었는데 마침 고맙습니다
익명 / 쾅꽝쾅~~~! 약국 문 언제 다시 여시나요?
익명 / 헉 ㅋㅋ 저 방금 약국 다녀왔는데! ㅋㅋ 얼른 마저 써 볼게요 ㅎㅎ 기다려 주셔서 미안하구 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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