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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장어는 소울메이트를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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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el 조회수 : 874 좋아요 : 4 클리핑 : 0
연애에 연달아 실패한 후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정돈된 글로 쓸법하다 싶어서요.

후배는 연애를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애를 성취하면 아주 행복해질 것이란 기대를 품고 연애 대상은 소울메이트여야 한다, 대강 이런 입장이죠. 많은 연애 컨텐츠가 그런 기대를 품게 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근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일단 소울메이트를 만나길 바라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라고 봅니다. 소율메이트가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연애 시점에서 이뤄진다고 기대해선 안됩니다.

소울메이트는 뭘까? 잘 모르겠는데 전 이게 영혼이 닮은 짝을 모조한 짝퉁 개념이라고 봅니다. 영혼이 닮은 짝이란 표현이 좀 추상적인데 그냥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럼 뭐가 잘 맞는걸까? 마찰이 없는거죠. 갈등이 없습니다. 관계가 매끄러워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마찰이 없는 관계를 원한다는거죠. 그럴리가???

전 사람은 알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면 우리는 계속 변하거든요. 우리 삶은 시시때때가 경험이고 그것은 내게 영향을 줍니다.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불변하는 나의 본질이 무엇이냐는데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나는 어떤 이상적 피지컬을 얻기 위해 다이어트하고 운동하는 통상 자기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드러눕고싶고 먹고 싶고 특히 고칼로리를 원하고 거기에 술도 퍼마시고 싶습니다. 이상적 피지컬은 건강의 극대화일텐데, 건강하지 않게될 삶을 갈구하면서도 건강을 위해 관리하는 나 자신과의 갈등, 마찰이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과도 갈등합니다. 하물며 타인과 마찰이 없으리라 꿈꾸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봐요.

그러나 간혹 우리는 영혼이 닮은 짝을 볼 때가 있습니다. 영혼이 닮은 짝을 가진 적이 있었을 수도 있지요. 왜일까? 전 그게 특별한 과정에 의해 도달한 모습이라고 봅니다. 내 영혼을 깍아서 관계를 만든거죠. 물론 상대방도 자기 영혼을 깍아야 합니다. 둘이 닮으려면 뭔갈 붙일 수도 있고 깍을 수도 있을겁니다. 전 영혼이 닮은 짝들은 서로 아주 달랐다가 닮아질 때까지 깍고 닮게 자라났다고 봅니다. 추상적으로 이야기했지만 깍는 과정은 서로를 배려하는 과정이고 닮게 자라는 과정은 그 배려의 선을 지키면서 함께 지내온 것이죠.

그래서 소울메이트는 제가 보기엔 그냥 모조품입니다. 처음부터 닮을 수 있다니. 외양의 도플갱어는 현대의학에 의해 어느 정도 만들 수 있겠지만 영혼의 도플갱어가 가능할까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닮은 영혼이 되기 위해 깍아낸 각자의 영혼은 관계를 형성하는데 쓰입니다. 소울메이트를 원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중 일방이 전적으로 맞춰주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관계를 위해 한 쪽이 자기 영혼을 다 깍아바치는거죠. 둘 다 가능합니다. 내가 내 영혼을 전부 바치던가 상대방이 바치길 원하던가. 이 관계는 한 쪽의 영혼이 소진될 때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소울메이트가 나타나길 원하지 마세요. 마찰과 갈등은 관계 형성에 불가피함을 받아들이세요. 서로의 영혼을 깍아내 만든 관계는 그래서 소중해지는겁니다. 말로 표현하여 합의에 이르기는 어려운 개념이지만, 암묵적으로 잘 합의되는 상대를 만나는게 좋습니다. 간혹 보면 얼치기스러운 말로 이런 나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하는 소릴 보기도 하는데, 그렇게 꿈꾸는 바는 결코 이뤄지지 않을겁니다.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은 영혼을 깍아 구도의 여정에 쓰지만, 여러분들은 영혼을 닮은 짝에 이르기 위해 쓰시길 바랍니다.
ru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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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2024-02-27 16:46:46
오 ㅋㅋ 잘 읽었습니다 서로를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이자 결심은 언제쯤 하는 것이 적기일까요? 최초라는 가정에서요 ㅋㅋ
물론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이 혼잣말에 누구라도 지혜로운 답변을 해 주지 않을까 하는 ㅋㅋ 감나무 아래에 입 벌리고 서 있는 심정으로 남기고 가요
russel/ 당신이 결심할 떄가 적기입니다. 어떤 게임 이야기인데,게임의 틀을 쓴 사실상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불사의 저주를 받았는데, 죽어도 깨어나지만 기억을 잃습니다. 죽었다 깨어난 상태로 시작됩니다. 그 과정에서 기억을 잃었지만 죽기 전에 자신이 남긴 흔적이 있었고, 그걸 따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는게 이 게임의 목적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불사의 저주를 건 마법사에 도달합니다. 이 마법사는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주인공은 어떤 답을 해도 답으로 인정합니다-모르겠다 빼고요. 마법사는 주인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답에는 항상 틀렸다고 합니다. 오로지 주인공의 답만을 인정하죠. 이 마법사는 사실 그 주인공의 연인이었습니다. 모르겠다 외에도 무슨 답이건 인정되지만 공식적인 답은 '강한 믿음'입니다. 당신의 어떤 답도 받아들일 상대방이 있을겁니다. 여기서 어떤 답이란 언제까지도 포함합니다. 당신의 답만을 인정하고 타인의 답은 거부하는 그런 상대방이면 됩니다. 어떤 관계에서 우린 그런 것을 충분히 읽게 됩니다. 읽어들여지지 아니할 수 없는 그런 관계가 있지요.
russel/ 아, 방점은 그런 상대방이 아니라 그런 관계입니다. 그런 상대방으로 이해하시면 좋은 사람에 대한 환상이 커지겠죠. 좋은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612/ 뒤집어서 생각하자면 상대방의 그 어떤 답도 강한 믿음이 수반된다면 받아들이지 못 할 이유 또한 없겠네요 ㅋㅋ 조금 맹점은 있는 듯한데 제 이해가 얕아서라고 생각하고요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저한테 달렸겠지요 ㅎㅎ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으뜨뜨 2024-02-26 19:10:18
매우 공감
russel/ 오랬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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