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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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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트북>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인생을 사는 목적도 결국 행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사랑도 하고 가정도 꾸민다. 하지만 결혼해서 조금만 지나면 서서히 갈등이 생기고 불화가 반복되다 보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면 삶 자체가 불행한 것이고 행복이란 죽고 나서 천국이나 가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세에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도 행복할 수 없다.
 
삶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현재의 불행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긴다. 자포자기해버렸기 때문이다.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이런 현상을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한다. 셀리그만은 개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서 실험했다.
 
첫 번째 그룹의 개들에게는 전기 자극을 주되, 배전반을 누르면 전기 자극을 멈출 수 있도록 했고 두 번째 그룹의 개들에게는 어떤 방법으로도 전기 자극을 멈출 수 없도록 했다. 세 번째 그룹의 개들에게는 아무런 전기 자극도 주지 않고 대조군(Control Group)으로 남겨두었다.
 
그 다음에 개들을 모두 하나의 울타리 안에 넣고 전기 자극을 주되, 나지막한 장애물을 뛰어넘으면 탈출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러자 전기 자극을 멈출 수 있었던 첫 번째 그룹의 개들과 아무런 전기 자극도 받지 않았던 세 번째 그룹의 개들은 재빨리 장애물을 뛰어넘어서 탈출했다. 하지만 전기 자극을 멈출 수 없었던 두 번째 그룹의 개들은 아예 탈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체념하여 몸을 움츠린 채로 깨갱거리기만 했다. 그 개들은 무기력해지도록 학습된 것이다.
 
우리가 결혼 생활에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성경 구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불행해도 참고 견디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견디다 보면 마치 전기 자극을 멈출 수 없었던 개들처럼 스스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사랑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아 함께 행복해야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잘못된 정의가 우리를 불행 속으로 빠뜨렸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줄 안다. 사랑의 덕목 중에 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참고 견디기만 할 뿐이다. 
 
문제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수많은 학자들이 정의한 행복론을 보면 행복이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법륜스님이 나와서 한 말을 보면 행복이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법륜스님은 “행복이란 기분 좋은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렇다면 “불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불행이란 기분 나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참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답변이다.
 
우리가 하루하루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다. 큰 성공을 하거나 대단한 선물을 받아야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기분이 좋으면 행복한 것이다. 한때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괜히 설레고 들뜨고 콧노래가 나오고 기분이 좋았다. 날아가는 새만 봐도 웃음이 나오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황홀하기만 했다. 그래서 사랑이 행복을 준다고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자체가 바로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신적으로 설레고 들뜨는 일이 없다보니 예전처럼 쉽게 흥분도 되지 않고 쉽게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뭔가 채워지지 않은 불만에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것이다. 함께 있기만 해도 좋았고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그것이 사라지고 나니 오히려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 사람만 보면 기분이 나빠지고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변해서일까?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방법을 이미 알고 있고 열심히 연습했다. 연애를 할 때 두 사람이 만나면 무슨 일을 했는가. 서로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고 몸을 쓰다듬고 머릿결을 만지면서 냄새를 맡고 황홀해 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섹스도 했다. 그때는 자신과 조금 맞지 않아도 양보했고 어떻게 해서라도 파트너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귀찮은 일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섹스를 할지언정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는 것을 어색해한다. 그리고 자신이 싫어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행한 것이다.
 
평소 잦은 접촉으로 항상 흥분된 상태를 유지시킬 수 있다면 비록 ‘정신적인 흥분’이 사라졌다 해도 설레고 들뜬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결혼을 했으니 섹스는 할지언정 신체 접촉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다. 또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양보해야할 순간에 양보도 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우리는 섹스를 불편하게 생각한다. 아니 섹스보다 스킨십을 더 불편하게 생각한다. 예전에는 누가 보더라도 부둥켜안고 키스를 했는데 이제는 그런 행동이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니 설레고 들뜨는 흥분감이 느껴지겠는가. 행복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서로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며 기분 좋게 만들어보라. 기분 좋음이 반복되다보면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해진다. 그러니 설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죽어서도 행복할 수 없다. 행복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실천하라. 그러면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더
부부관계연구소 이사장 / 펜트하우스 고문
탄트라 명상연구회 <仙한 사람> 회장
저서 <이혼했으면 성공하라>, <우리 색다르게 해볼까>, <그래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http://blog.naver.com/arde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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