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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 창시자, 휴 헤프너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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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의 공식 SNS는 27일 “미국의 아이콘, 플레이보이 창시자인 휴 헤프너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사진=플레이보이 트위터)

유명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창시자 휴 헤프너가 27일(현지시간)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플레이보이의 공식 SNS는 27일 “미국의 아이콘, 플레이보이 창시자인 휴 헤프너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현 플레이보이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이자 휴 헤프너의 아들인 쿠퍼 헤프너는 28일 성명을 내고 “아버지는 미디어와 문화의 선구자로서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았고, 언론자유와 시민의 권리, 성적 자유권 등을 옹호하는 문화적 운동을 이끌었다”고 강조했다.

명사들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유명 방송인 래리 킹은 트위터에 “휴 헤프너는 출판, 저널리즘, 시민권에 있어 거물이었다”고 적었다. 패리스 힐튼은 “그는 전설이었고, 혁신가면서 독보적인 존재였다”고 평하고 “그와 즐거운 기억이 많다. 그가 그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휴 헤프너는 1953년 27살이 되던 해에 플레이보이를 창간했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여성의 누드를 실으면서 화제가 돼 단숨에 성인잡지의 대명사가 됐다. 첫 번째 표지 모델은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였다. 플레이보이는 1년 만에 20만 부를 팔았고, 5년 만에 100만 부를 돌파했다. 

항상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세븐일레븐 편의점은 수년간 플레이보이를 팔지 않았고, 플레이보이를 판매하는 상점들도 선반 높은 곳에 비치했다. 60년대에는 미국우편사업국이 2급 우편서비스를 거부하기도 했다. 중국, 인도, 사우디 아라비아, 아일랜드 등에서는 검열로 인해 판매가 금지됐다. 1964년에는 외설죄로 기소됐다가 무죄로 풀려나기도 했다. 

그러나 휴 헤프너는 고난을 극복해내고 1970년대에는 7백만 독자를 확보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펜트하우스나 허슬러 같은 모방 잡지도 생겨났지만 여전히 성인잡지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한편, 영국 일간 ‘더 선’은 그의 세 번째 부인인 크리스털 해리스가 4천만 파운드(약 616억 원)에 이르는 휴 헤프너의 유산을 한 푼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더 선에 따르면 해리스는 유산을 상속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혼전 합의서에 서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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